"장진호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 철수 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8일(현지 시각) 방미(訪美) 첫 일정으로 버지니아주 콴티코의 국립 해병대 박물관에 있는 장진호(長津湖) 전투 기념비를 찾아 헌화한 뒤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고마움을 세상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느냐. 존경과 감사라는 말로는 너무나 부족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현지 시각) 방미 첫 일정으로 미 버지니아주 콴티코의 미 해병대 국립박물관을 방문해‘장진호 전투 기념비’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한·미 동맹은 전쟁의 포화 속에 피로 맺어졌다”며‘혈맹(血盟)’을 강조했다.

함경남도 흥남 출신인 문 대통령의 부모는 1950년 12월 흥남철수 작전 때 흥남을 탈출했고, 2년여 후 문 대통령이 태어났다. 흥남철수는 장진호 전투에서 미 해병 1사단이 큰 희생을 치르며 중공군의 진출을 지연시켰기에 가능했다. 문 대통령은 "67년 전인 1950년, 미 해병들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치렀다"며 "그들이 한국전쟁에서 치렀던 가장 영웅적인 전투가 장진호 전투"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그 급박한 순간에 그 많은 피란민을 북한에서 탈출시켜준 미군의 인류애에 깊은 감동을 느낀다"며 "한미 동맹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로 맺어졌다. 몇 장의 종이 위에 서명으로 맺어진 약속이 아니다"고 했다.

문 대통령 발언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첫 방미 때 했던 말이 이날 다시 화제가 됐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는 "사진 찍으러 미국에 가지 않겠다"고 했었지만, 취임 후 첫 방미 때는 "(6·25 전쟁 때) 미국이 한국을 도와주지 않았으면 나는 지금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장진호 전투 상징하듯 '겨울王 나무' 식수 - 문재인 대통령이 로버트 넬러(왼쪽) 미 해병대 사령관, 스티븐 옴스테드(오른쪽) 예비역 해병대 중장과 함께 장진호 전투 기념비 옆에 '산사나무'를 기념 식수(植樹) 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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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장진호 전투 기념비 헌화 기념사]

이날 행사에서 문 대통령은 이등병으로 장진호 전투에 참전한 스티븐 옴스테드 예비역 미 해병대 중장에게 허리를 90도 굽혀 인사했다. 옴스테드 중장은 기념 배지를 선물했다. 흥남철수에 투입된 상선(商船)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일등 항해사였던 로버트 루니 제독은 당시 직접 촬영한 빅토리호 사진을 선물했다. 문 대통령은 "제게는 정말 소중한 선물"이라며 "장진호 전투 생존자들이 이제 50분도 남지 않았다는데 부디 오래 사셔서 통일된 한국을 꼭 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라며 "제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빅토리호) 항해 도중인 12월 24일, 미군들이 피란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사탕을 한 알씩 나눠줬다고 한다"고 했다. 이어 "비록 사탕 한 알이지만 그 참혹한 전쟁통에 그 많은 피란민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눠준 따뜻한 마음씨가 늘 고마웠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로버트 넬러 미 해병대 사령관은 문 대통령에게 "장진호 전투에 관한 위대한 전설은 불가능을 극복한 최고의 일화로 남아있다"며 "참전 용사를 추모하는 이 자리에 대통령님과 함께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넬러 사령관은 "같이 갑시다"를 한국어로 말했고 문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 대통령은 '숭고한 희생으로 맺어진 동맹.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이라는 띠가 매어진 화환을 장진호 전투 기념비 앞에 헌화한 이후 로버트 넬러 미 해병대 사령관 등과 함께 장진호 전투 기념비 오른쪽에 산사나무 한 그루를 기념 식수했다. 산사나무의 별명은 '겨울 왕(Winter King)'으로 혹한을 이겨낸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들의 용기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