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장 안 남긴 향곡 스님 '진면목'을 담다

    입력 : 2017.06.30 03:04

    향곡 스님 일화 정리한 책 '봉암사의 큰 웃음' 낸 법념 스님
    "성철스님과 '봉암사 결사' 추진… 속옷까지 직접 기워 입던 분"

    "법념아, 문 열고 닫는 거 지대로 하는 사람이 참 없니라. 니 오늘 내 방에 앉아 들어오고 가는 사람들 단디(단단히) 치다보거레이."

    어느 날 향곡(香谷·1912~1979) 스님은 시봉하던 법념(72) 스님에게 이렇게 일렀다. 법념 스님이 관찰해보니 과연 미닫이문을 가운데에 딱 맞춰 닫는 이가 없었다. 참선 공부는 일상생활 그대로가 공부여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법념 스님은 20대 후반에 3년간 시봉했던 향곡 스님을 알리기 위해 글쓰기 공부를 해서 책을 썼다.
    법념 스님은 20대 후반에 3년간 시봉했던 향곡 스님을 알리기 위해 글쓰기 공부를 해서 책을 썼다. /이진한 기자
    향곡 스님의 알려지지 않은 생전 일화를 정리한 책 '봉암사의 큰 웃음'(도서출판 답게)이 출간됐다. 저자는 경주 흥륜사의 노비구니 법념 스님. 1972년 출가 직후부터 3년간 부산 기장군 월내 묘관음사에서 향곡 스님을 모셨던 기억을 더듬어 70편의 일화를 수록했다. 법념 스님이 책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 향곡 스님에 대해 너무도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안타까워 경주 동리목월문학관에서 수필 수업을 들어가면서 쓴 글이다.

    향곡 스님은 성철 스님의 '절친'이자 현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의 스승. 경허-혜월-운봉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물려받았고, 성철·자운·청담 스님 등과 함께 1940년대 후반 '봉암사 결사'를 했다. 성철 스님과 서로 "밥값 내놓으라"며 몸싸움 벌인 일화도 유명하다. 그러나 성철 스님의 생애는 제자 원택 스님의 베스트셀러 '성철 스님 시봉이야기'(장경각)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데 반해 향곡 스님에 관한 저술은 거의 없었다. "나는 죽으마 사리를 안 남길끼다"고 한 말씀처럼 사리는 물론 변변한 사진 한 장 없어 입적 후 영정 사진을 꾸밀 때도 제자들이 고생했을 정도였다.

    성철(오른쪽) 청담(왼쪽) 스님과 함께한 향곡 스님.
    성철(오른쪽) 청담(왼쪽) 스님과 함께한 향곡 스님. 향곡 스님은 변변한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다. /백련불교문화재단
    책에서는 향곡 스님의 인간미가 물씬 풍긴다. 신도들이 시주한 러닝셔츠, 양말 등을 다락방에 아껴 모아뒀다가 계절에 한 번씩 창고 대방출하고, 치수가 '105'는 돼야 하는 거구였지만 '95'짜리 러닝셔츠가 시주로 들어와도 그냥 입고, 속옷과 양말은 직접 기워 입고 신었다. 동네 촌로(村老)들과는 스스럼없이 어울리면서도 관공서 사람은 순경만 와도 "없다 해라"고 외면했다.

    향곡 스님이 흥분하는 때가 가끔 있었다. 수행자가 깨달음을 점검받으러 올 때다. 이럴 때 스님의 방 근처는 출입 엄금. 울타리 너머로 큰 소리 몇 번 들리고 찾아온 이가 떠난 후 향곡 스님은 "안즉(아직) 멀었어. 공부가 어렵긴 어려운 모양이라. 쉽기로 말하면 세수하다 코 만지는 것보다 쉬운데…"라며 안타까워했다.

    법념 스님은 향곡 스님의 '너그러움'을 잊지 못했다. "누가 어떤 잘못을 해도 일단 참회하면 다시는 그 이야기를 꺼내는 법이 없으셨지요. 쉬운 일 같지만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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