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순교자 24位 그림… 평양교구청에 걸 그날은

    입력 : 2017.06.30 03:04

    ['평양교구 하느님의 종 24위' 전시하는 장긍선 신부]

    6·25때 신자들과 남아 있다가 北에서 순교한 사제·수녀 담아
    평양교구 90년 기념해 8개월 작업

    작은할아버지 사제, 누나 셋 수녀 "평양교구는 '우리 가족 이야기'"

    "통일되면 평양교구청이나 평양교구 주교좌성당에 이 작품을 걸고 싶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장 장긍선(54) 신부는 지난 28일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 지하 갤러리 1898에 걸린 '평양교구 하느님의 종 24위(位)'(134×104㎝)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7월 3일까지 열리는 이콘연구소 10회 회원전시회 '영혼의 빛을 따라서' 출품작 중 한 점으로 전시되는 이 작품은 지금은 '침묵의 교회'인 천주교 평양교구 수난사를 보여준다. 화면 중앙엔 공산당의 박해와 탄압에도 양(羊)들과 함께하다 순교한 평양교구장 홍용호 주교와 초대 평양교구장 미국인 패트릭 번 주교를 중심으로 사제 12명, 신학생 1명, 수녀 2명과 평신도들을 그렸다. 현재 성인(聖人)의 바로 아래 단계인 복자(福者)로 추대하는 절차가 추진 중인 순교자들이다. 이들의 머리 위 오른쪽엔 관후리주교좌성당, 왼쪽엔 평양의 상징 대동문이 그려졌다. 발아래로는 무궁화 24송이와 깨진 종(鐘)이 배치됐다.

    장 신부는 성화, 이콘(Icon) 전문가다. 이콘은 주로 동방정교회에서 발달한 성화 양식.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성인 등을 전통 양식으로 그린다. 1997년부터 4년 반 동안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신학교에 유학해 이콘을 공부하고 서울대교구에 이콘연구소를 개설해 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올해 자신의 사제 서품 25주년 은경축(銀慶祝)과 평양교구 설정 90주년을 기념해 이 작품을 8개월에 걸쳐 제작했다. 전문가임에도 이번 작업은 쉽지 않았다. 생존했던 순교자를 기리는 작품이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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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당시 평양교구에서 공산당에 희생된 순교자를 그린 작품(오른쪽)을 전시 중인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장 장긍선 신부. 실향민 자녀인 그는“어릴때부터 수없이 들어온 이야기여서 꼭 그리고 싶었던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사진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온갖 기록을 동원했다. 순교자 가족들의 사진을 보면서 유추해서 그리기도 했고, 자료를 바탕으로 키와 체중을 떠올리며 그렸다. 수녀회에 따른 복식(服飾) 차이도 고증해 당시의 모습대로 그렸다. 화면 아래쪽엔 소총과 권총도 보인다. 장 신부는 "성화에는 보통 순교자들에게 고통을 준 도구를 그린다"고 했다. 곁에서 작품을 보던 평양교구장 서리 대리 황인국 몬시뇰은 "따발총도 그렸어야지~"라며 웃었다. 장 신부는 "제 딴에는 없는 자료를 동원해 유추해서 그렸는데 당시를 기억하는 노(老)수녀님들이 보시곤 한 분 한 분 구분하셔서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어쩌면 '평양교구 하느님의 종 24위'는 장 신부를 위해 남겨졌던 숙제였는지 모른다. 장 신부에게 평양교구 이야기는 바로 '가족 이야기'이다. 평안북도 의주 출신인 그의 집안에선 작은할아버지 장선흥 신부, 작은아버지 장대익 신부가 사제이고, 누나 셋이 수녀다. 그가 어릴 때부터 가족들은 모이면 '평양교구 최후의 장면'을 이야기했다. 특히 6·25 당시 부제(副祭) 직전의 차부제(次副祭) 신분이었던 장선흥 신부는 평양교구 모든 사제가 납치됐을 때 평양 주교관을 지키다 보위부에 연금을 당하면서도 "나도 신자들과 남겠다"며 버티려 했다. 그러나 신자들이 "어서 남으로 내려가 사제품을 받아서 오시라"고 등을 떠밀어 월남했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하마터면 장선흥 신부도 이 그림 속에 등장할 뻔한 것이다. 장선흥 신부는 월남 후 '붉어진 땅의 십자탑'이란 저서를 통해 당시 풍경을 기록했다. 이번에 장 신부가 제작한 작품은 이런 증언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평양교구 사무국 실무 책임을 맡고 있기도 한 장 신부는 "집안 어른들을 비롯해 당시 평양교구 신자들은 당시에 이미 '주교, 신부님들은 순교자이자 성인이 될 분들'이라 믿었다"며 "현재 서울대교구에서 희생된 순교자를 그리고 있는데 앞으로 6·25 때 순교해 시복 추진 중인 모든 분을 계속 그리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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