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 칼럼] 문재인의 '6·10 항쟁'과 전두환의 '6·29 선언'

    입력 : 2017.06.30 03:17

    "역사에 남을 발표를 각하께서 해야지 왜 노태우에게 줍니까
    몇 달 뒤 청와대 떠나는데 결정적인 기회를 왜 스스로 포기합니까"

    최보식 선임기자
    최보식 선임기자

    어제는 '6·29 선언' 30주년이었다. 20일 전 서울광장에서 문재인 대통령 내외까지 참석하는 떠들썩한 '6·10 항쟁 30주년' 같은 기념식은 열리지 않았다. 대통령이 방미(訪美) 중이니 그냥 지나쳤을까. 아마 국내에 있어도 문 대통령의 이런 감격 어린 연설은 듣기 어려웠을 것이다.

    "30년 전 6월, 우리는 국민이 승리하는 역사를 경험했다.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을 권리, 국민이 정부를 선택할 권리를 되찾았다. 바위에 계란 치기 같았던 저항들이 끝내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낸 너무도 위대하고 감격스러운 역사였다…."

    기념사의 중반부터 "촛불혁명은 6·10 항쟁이 당당하게 피운 꽃. 6월 항쟁의 정신 위에 문재인 정부는 서 있다"라며 흘러갈 때 문 대통령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이해가 됐다. 대통령은 참석자들과 함께 그 시절 애창했던 운동권 가요 '광야에서'를 불렀다. 6월 항쟁이 '군부독재'를 굴복시켜 그 전리품으로 대통령 직선제와 민주화 조치를 얻어냈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해석은 자유(自由)이지만, 사실 관계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 당시 상대는 전두환이었다. 전국적으로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 5공(共) 체제의 위기를 맞았지만, 통치자에게는 이를 강제 진압할 수단도 갖고 있었다는 점을 잊고 있다. 전두환은 부산 지역에 위수령(衛戍令)을 발동해 군(軍)을 출동시킬 수 있는 준비 태세를 갖추라고 지시했다가 다음 날 유보했다. 야당과 재야 및 학생 지도부는 군이 다시 나올지 모른다고 긴장했던 게 사실이다.


    노태우 13대 대통령이 1988년 2월25일 오전 국회의사당앞 뜰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만약 전두환이 계엄(戒嚴)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면 그 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됐을까를 돌아봐야 한다. 헌정 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부 이양과 단임(單任) 실천은 물 건너갔을 것이다. 지금 문 대통령이 6월 항쟁에 헌사한 '승리의 역사'도 결코 없었을지 모른다. 이 때문에 당시 전두환의 결단과 역할을 애써 폄하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모든 현상에는 양과 음, 보이는 면과 숨겨진 면이 있다. 둘을 함께 봐야 그나마 전체적 진실에 가깝다.

    몇 달 전 출간된 '전두환 회고록'을 보면 "5공(共)의 경제적 성공이 중산층을 두텁게 한 것이 실질적 민주화에 기여했다. 국민의 70%가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다. 내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아보고 싶다는 염원은 그 중산층의 요구였다. 이들이 시민사회 여론을 주도해 5공 정부를 압박하는 형국이 됐다. 시위 소요가 확대되고 격렬했지만 박정희 정권 시절처럼 군대를 동원하는 일은 끝까지 피하고 싶었다"고 전두환은 술회하고 있다.

    회고록에는 그가 노태우 민정당 대표를 불러 "국민의 뜻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직선제 대책을 세워라"며 설득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뒤 노태우가 "제가 직선제 수용을 포함한 민주화 조치를 건의 드리면 각하께서 크게 노해서 호통치는 모습을 보여달라"며 선언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조건을 제시한다. 이를 고민한 전두환은 "세상에 비밀이 없는데 나중에 진실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라며 거절한다. 6·29 전날 청와대 참모들은 "역사에 남을 발표를 각하께서 해야지, 왜 노태우에게 줍니까. 몇 달 뒤 청와대를 떠나야 하는데 국민의 가슴 속에 남아있는 앙금을 말끔히 씻어버릴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왜 스스로 포기합니까"라고 진언한다.

    1987년 6월 29일 아침 9시. 민정당 중앙당사 회의실에서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국민 대화합과 위대한 국가로의 전진을 위한 특별 선언'을 했다. 대통령 직선제, 김대중 사면·복권, 자유 언론 등 8개 항을 담았다. 그날 술집과 커피숍 중에는 '오늘은 기쁜 날'이라며 돈을 받지 않은 곳도 있었다. 외신은 "한국 국민은 위대한 국민", 김영삼은 "정치적 기적", 김대중은 "인간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고 평가했다. 이런 '6·29 선언'은 잊히고 '6·10 항쟁'만 정부 차원에서 부각되는 장면을 봤다. 과연 역사는 '현재 권력 쥔 자들'의 기록인 것이다.

    어떤 관점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전두환은 가장 고립된 약자다. 그만큼 일방적으로 공격받고, 그에 반해 한 줌 변호를 받지 못하는 인물도 드물 것이다. 역대 대통령 중 전두환 평가는 공(功) 0: 과(過) 10일 것이다. 균형 감각을 갖춘 언론인들과 학문적 양심을 존중하는 지식인들도 전두환 문제 앞에서는 입을 다물어왔다.

    전두환은 집권 과정과 권위주의 통치, 인권침해, 비자금 형성 등에서 비판받을 게 수두룩하다. 하지만 5공은 세계 1위의 고도 경제성장을 이뤘다. 국민소득은 그전보다 두 배 이상 늘었고 물가는 안정됐다. 한국이 인터넷과 전자 산업의 강국이 된 것은 당시 광대역 통신망 설치 등에서 출발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도 그때 준비됐다. 무엇보다 그전까지 한 번도 경험 못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이런 사실을 말하는 것조차 사회적으로 뭇매를 맞는 분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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