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토박이인 천샤오위(陳筱瑜·26·여)씨는 4개월 전 대만 남부 타이난(臺南)으로 이민을 가 조그만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홍콩에서 바리스타, 보습학원 강사 등으로 일했던 천씨가 이민을 결심한 계기는 2014년 '우산 혁명'이었다. 행정장관(홍콩의 최고지도자) 직선제를 요구하며 청년들이 79일간 홍콩 도심을 점령했던 그 현장에 천씨도 있었다. 하지만 직선제는 수용되지 않았고 '혁명'은 좌절됐다. 천씨는 BBC 인터뷰에서 "우산 혁명이 끝난 뒤 나의 미래를 고민하다 이민을 결심했다"고 했다.
대만 내정부(內政部) 통계를 보면 천씨 같은 홍콩인들이 적지 않다. 우산 혁명이 일어났던 2014년 대만 거류 자격을 신청한 홍콩·마카오인들은 7506명으로, 전년인 2013년 4574명보다 60% 넘게 폭증했다.
오는 7월 1일 중국 반환 20년,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20년을 앞둔 홍콩은 대대적인 기념행사 준비로 떠들썩하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사회주의 중국의 지붕 아래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실험을 해온 홍콩 사회의 한편에선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고민이 더 커지고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과거 20년과 마찬가지로 다가오는 미래에도 홍콩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할 수 없는 조연에 머물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고도의 자치를 허용한다는 중국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홍콩 사람들이 앞다퉈 영국 등 서방국가 여권을 얻으려 애쓰고 있다"고 했다.
일국양제 20년 동안 홍콩은 표면적으로 자유를 누려왔다. 중국에선 금지된 파룬궁이 활동하고, 언론 출판의 자유도 폭넓게 허용됐다. 그럼에도 홍콩 정치 문화가 점점 '대륙화(mainlandisation)'되고 있는 흐름은 뚜렷하다. 홍콩 정부 구성에 중국 정부가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렇게 구성된 홍콩 정부가 중국 정부 앞에서 제 목소리를 못 내는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2013년 시진핑(習近平) 주석 취임 이후 이 같은 경향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2015년 중국 권력층 비리를 다룬 책을 낸 한 출판업자가 홍콩에서 납치돼 중국으로 끌려가는 일이 일어났고, 올 초에는 중국의 한 재벌이 홍콩 호텔에서 중국 요원들에 의해 연행됐다. 과거 홍콩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반환 초기 중국은 중국 공산당에 정면으로 도전하지 않는 한 홍콩 정치에 간섭하지 않았다. 반환 초기에는 홍콩 정부 고위 공무원들이 중국 공산당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 관계자들을 만날 일도 없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홍콩 주재 중국 공산당 연락판공실이 "(홍콩 정부의) 그림자 정부 역할을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입김이 세졌다. 20년 전 중국 경제 규모의 20%에 가까웠던 홍콩 경제가 이젠 중국 국민총생산(GDP)의 3%도 채 안 되는 수준으로 떨어지고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홍콩을 대하는 중국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홍콩의 젊은 세대들은 반중(反中) 감정이 커지고 있다. 스스로를 중국인이 아닌 홍콩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홍콩대가 홍콩의 18~29세 청년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청년들의 비율이 올 상반기 3.1%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20년 전에는 긍정적인 답변이 31%로 10배나 됐다.
홍콩 민주화나 독립 주장에 더 익숙한 젊은 세대들은 2012년 홍콩 정부가 중국식 '국민 교육'을 도입하려 하자 '세뇌 교육'이라며 들고 일어나 무산시켰고 2년 뒤엔 우산 혁명으로 홍콩을 뒤흔들었다. 우산 혁명을 이끈 주역인 조슈아 웡(黃之鋒·21)은 26일 "지난 20년간 권위적 정권의 강경 통치를 상징한다"며 주권 반환 상징물인 골든 바우히니아 상에 검은 천을 씌우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바우히니아는 홍콩을 상징하는 꽃으로, 중국은 1997년 홍콩 주권 반환을 기념해 골든 바우히니아 상을 만들어 홍콩에 선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