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커피 마시는 아침' 빼앗는 지구 온난화

입력 2017.06.27 03:15

아라비카 커피 원산지 에티오피아, 온난화로 재배지 60% 잃을 위기
전 세계 주요 생산국도 같은 사정… 커피 멸종 막으려 각국 행동 나서
아라비카 유전자 지도 해독하고 기업들, 고온 견딜 품종 개발 착수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에티오피아에서는 손님이 방문하면 가장 먼저 커피를 대접한다. 그냥 잔에 커피를 부어 내오는 것이 아니다. 손님 앞에서 커피콩을 직접 볶고 절구에 간 다음 커피를 끓여낸다. 현지어로 '분나 마프라트(Bunna maffrate)', 즉 커피 의식(儀式)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다도(茶道)와 비슷하다.

지구온난화가 에티오피아의 전통적인 커피 문화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영국 왕립 큐 식물원 연구진은 지난 19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식물'에 지구 온난화가 지금처럼 지속되면 2070년쯤 에티오피아의 커피 재배지가 60%까지 사라질 수 있다고 발표했다.

커피는 해발 1000~2000m 고원지대에서만 자란다. 워낙 온도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섭씨 30도를 넘으면 커피나무의 잎이 떨어지고 23도 아래에서는 커피 열매가 너무 빨리 열려 제대로 익지 않는다. 큐 식물원의 에런 데이비스 박사는 기온이 4도 오르면 에티오피아 커피 생산지의 3분의 2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과학자들은 전 세계가 온실가스를 줄이지 못하고 지금처럼 계속 배출하면 이번 세기 말까지 지구 평균기온이 4도 올라갈 것이라고 본다.

에티오피아 커피 농장이 무너지면 전 세계인의 일상도 유지될 수 없다. 에티오피아는 향이 좋은 고급 커피 품종인 아라비카(Arabica)의 원산지이다.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커피의 60~70%가 아라비카 품종이다. 나머지는 인스턴트커피에 쓰이는 로부스타(Robusta) 품종이다. 데이비스 박사는 "에티오피아에서 커피가 사라지는 것은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와인 생산지를 잃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물론 에티오피아 커피가 사라진다고 당장 내일 아침 마실 커피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에티오피아는 2014년 기준으로 커피 생산량 세계 5위이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대학의 세브세베 데미세우 교수는 "에티오피아는 아라비카 커피 품종이 유래한 곳으로 유전적 다양성을 보장하는 자연 보관소와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에티오피아에는 지금도 야생 아라비카가 자란다. 이는 새로운 품종을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유전자원이 된다. 한 해 농사를 망치면 다음 해 다시 지으면 되지만 종자를 잃으면 더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

전 세계 커피가 동시에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 최근 세계 커피 생산량 1, 2위인 브라질과 베트남도 위험하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 간 기후변화 협의체(IPCC)는 브라질의 기온이 3도 오르면 커피 주요 생산지가 75%까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브라질은 최근 몇 년간 극심한 가뭄으로 커피 생산량이 급감했다. 올 초 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해외에서 커피콩을 수입하는 방안을 논의했을 정도다. 국제커피기구는 2050년까지 동남아시아에서 커피 재배에 적합한 농지가 70%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 세계 커피 제조업체들은 커피의 멸종을 막기 위한 행동에 나섰다. 기업들의 지원을 받는 세계커피연구소는 기후 변화에 강한 커피 품종을 개발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이미 2014년 아라비카 커피의 유전자가 완전 해독돼 품종 개량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커피 재배지를 기후 조건이 나은 곳으로 옮기는 방법도 있다. 큐 식물원 연구진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지구 온난화에 강한 품종을 도입하는 등 적극적 개입이 이뤄지면 오히려 에티오피아 커피 생산량이 최악의 시나리오보다 4배 이상 늘 수도 있다고 기대했다.

문제는 시간과 돈이다. 품종 개량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자연에서 가뭄이나 병충해에 강한 야생종을 찾으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유전자를 변형하는 기술이 과거보다 발전했지만 일상 기호품에 적용하기에는 아직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 또 커피 재배지를 옮기면 생산량이 이전처럼 나올 때까지 최소 몇 년간 농민들이 돈을 벌지 못한다. 전 세계에서 커피 농사로 먹고사는 사람은 1억25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농민들이다. 재정 지원이 없으면 재배지 이전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공정무역' 인증을 받은 커피를 소비하자는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농민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생산한 커피를 소비함으로써 커피 재배 농가의 수익을 높이자는 것이다. 주요 커피 브랜드들도 공정무역 인증에 참여하고 있다. 커피 멸종은 농민이나 업체 모두에 피해가 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공정무역 운동은 역시 온난화 직격탄을 맞은 바나나와 차 등으로도 확대됐다. 시장과 연구실의 협력이 과연 커피를 멸종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까.

[키워드정보]
지구 표면 평균 기온이 올라가는 현상인 지구온난화
[나라정보]
아프리카 최대의 커피 생산국, 에티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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