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전날 고려대생 피습, 육영수 여사 피격, 4000억 비자금… 역사의 현장마다 특종이 빛났다

    입력 : 2017.06.24 03:02

    [조선일보 지령 3만호]
    손기정 금메달 국제전화 인터뷰 기자 10명 월급 맞먹은 첨단취재
    김구·김일성 협상 기사 들고 평양서 목숨 걸고 38선 넘어
    한밤에 걸려온 의문의 제보전화 조폭들 '서진 룸살롱 살인' 특종
    88올림픽 세계新 금메달 벤 존슨 약물 복용 잡아내 세계가 충격

    지령 1호~20000호까지

    신문의 꽃은 특종이다. 기사 한 건이 세상을 뒤흔들고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는다. 지령 3만호를 발행하기까지 97년 성상(星霜)을 헤쳐 온 조선일보에는 기나긴 역사만큼이나 빛나는 특종도 많았다.

    이미지 크게보기
    1960년 4월 18일 고려대생 피습 사건:1960년 4월 19일 자에 폭력배들이 고려대생을 습격한 사진을 정범태 기자가 촬영, 특종 보도해 4·19의 기폭제 중 하나가 됐다.

    조선일보는 1923년 3월 26일 2면에 '박열 사건 재판'을 보도했다. 일본 왕세자 히로히토(裕仁) 암살을 계획했던 독립운동가 박열이 일본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모습을 현장 취재한 것이다. 당시 일본 신문들이 '박열이 재판장에게 욕설을 퍼부었다'고 왜곡 보도했던 것과는 달리 조선일보 특파원 이석은 "사형선고를 받은 박열이 판결을 듣고서 돌연 만세를 고창(高唱)했다"고 보도했다. 2017년 6월 말 개봉을 앞둔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에는 '조선일보만 만세 불렀다고 제대로 썼다'는 등장인물의 대사가 등장한다. 조선일보는 1930년까지 박열 관련 소식을 70여 차례 보도했다.

    1936년 8월 11일 조선일보 2면은 '손기정 국제전화 인터뷰'를 실었다.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다음 날인 1936년 8월 10일, 김동진 동경지국장이 국제전화로 손 선수와 단독 인터뷰해 대서특필한 것이다. '세계 제패한 영웅의 가슴도/ 뜨거운 흥분 식자 쓸쓸한 애수(哀愁)/ 마침내 우승은 햇으나 웬일인지 울고만 싶소'란 제목으로 우승의 감격과 겨레의 비애를 담았다. 기사에는 '왜 손기정이 울고 싶었는지' 그 이유를 쓰지 않았으나 그것이 나라 잃은 청년의 슬픔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조선 독자는 거의 없었다.

    기사는 수화기 너머 손 선수가 "네! 손기정이오"라고 한마디하고는 한참 그냥 흐느껴 울었다고 전해 독자의 심금을 울렸다. 이보다 앞서 경기 전날인 8일 이뤄졌던 전화 인터뷰에서 손 선수는 "조선서 보내주신 고추장과 마늘장선(장아찌)을 아주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김치만 있더라면 아주 제법이겠는데요"라며 웃었고, 동경지국장은 "도에 넘치게 긴장하지 말라"는 충고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두 차례 국제전화료로 '조선일보 기자 10명 월급이 한꺼번에 날아갔다'는 말이 있을 만큼 당시로서는 첨단 취재였다.

    1937년 4월 13일 호외로 보도한 '백백교 사건'은 백백교가 신도 350여 명을 살해한 전대미문의 사건을 가장 먼저 알린 특종이었다. 경성 동대문경찰서는 이해 2월 17일부터 3월 말에 걸쳐 백백교 간부 남자 150명과 여자 50명을 검거했다. 교주 전용해는 경찰의 추격을 받으며 쫓기다가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에서 4월 7일 시체로 발견됐다. 조선일보는 보도관제가 풀린 13일 단독 입수한 교주의 사진과 그동안 자세히 취재한 내용을 담아 호외를 발행해 타지를 압도했다. 이후 지면에선 사이비 종교의 폐해를 경고하고, 조선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결국 무지몽매에서 오는 것이므로 문맹 퇴치와 교육 확대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광복 후인 1948년 4월 29일 1면에는 '김구·김일성 남북협상' 특종 보도가 실렸다. 남북협상 당시 김구 주석의 북행에는 조선일보 이동수·최성복 기자가 "알아서 재량껏 취재해 보라"는 사회부장의 지시를 받고 특파됐다. 이들은 원고지 장수까지 기록하는 소련군의 철저한 보안 검색을 받은 뒤 입북했고, 황해도 신평의 한 여관에서 사흘 동안 조사를 받은 뒤에야 평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남북협상 본회의 일정이 끝난 뒤 북한 측이 남한 기자들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산업 시찰 등 단체 행동을 계속 시켜 본사에 기사를 보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신참인 이동수가 최성복이 쓴 기사와 자료를 들고 먼저 남행을 결심했다. 그는 38선 이북 강원도 통천이 고향이어서 몇 번 남북 경계선을 넘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동수는 목숨을 걸고 38선을 넘어 평양을 떠난 지 하루 만에 신문사에 나타났다. 조선일보는 이미 만들어 놓은 29일자 지면에서 1면 광고와 사설까지 모두 들어내고 완벽한 특종으로 지면을 다시 제작했다.

    1967년 1월 19일 해군 당포호 격침 해군 경비함 당포호가 동해안에서 북한 의 포격으로 침몰하는 사진을 윤병해 기자가 단독 입수해 보도한 1967년 1월 21일 자 사진.
    1967년 1월 19일 해군 당포호 격침 해군 경비함 당포호가 동해안에서 북한 의 포격으로 침몰하는 사진을 윤병해 기자가 단독 입수해 보도한 1967년 1월 21일 자 사진.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피격 북한 지령을 받은 재일 교포 문세광이 서울 국립극장에서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현장을 임희순 기자가 단독 촬영, 1974년 8월 21일 자에 공개했다. 박정희 대통령을 에워싼 채 권총을 뽑아 든 경호원들과 총을 맞고 쓰러진 육 여사 모습이 보인다. 선우휘 주필이 위기의 순간 고관들의 행태를 비판한 시론 ‘단상(壇上)에 인영(人影·사람 그림자)이 불견(不見·보이지 않음)’이 사진과 함께 실렸다.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피격 북한 지령을 받은 재일 교포 문세광이 서울 국립극장에서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현장을 임희순 기자가 단독 촬영, 1974년 8월 21일 자에 공개했다. 박정희 대통령을 에워싼 채 권총을 뽑아 든 경호원들과 총을 맞고 쓰러진 육 여사 모습이 보인다. 선우휘 주필이 위기의 순간 고관들의 행태를 비판한 시론 ‘단상(壇上)에 인영(人影·사람 그림자)이 불견(不見·보이지 않음)’이 사진과 함께 실렸다.
    '공무원 득표 공작 분담'(1960년 1월 7일 석간 1면) 기사는 이승만 정부 말기 3·15 부정선거의 기미를 두 달 앞서 알아차린 특종 보도였다. 선거를 앞두고 자유당이 공무원들에게 일찌감치 '득표 공작을 분담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알린 것으로, 일반 공무원이 제1선, 경찰은 3선을 담당하고 방별(坊別)로 순회 좌담회를 열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조선일보는 3월 17일 자 논설위원 최석채가 쓴 사설 '호헌(護憲) 구국운동 이외의 다른 방도는 없다'로 국민의 궐기를 촉구했고, 4월 19일 아침에 '고려대생 습격 사건'의 처참한 현장을 사진으로 보도해 4·19의 기폭제를 이루게 된다.

    '잔비(殘匪), 일가(一家) 4명을 참살(慘殺)'이란 제목으로 게재된 1968년 12월 11일 3면의 '이승복 사건' 역시 조선일보 단독 기사였다. 이해 12월 9일 북한 무장공비가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계방산 기슭 민가에서 일가족 4명을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사회부 기자 강인원은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가 공비들에게 입이 찢겨 살해당한 이승복 소년의 기사를 특종 보도했다. 이 사건은 국민들에게 대공 경각심을 일깨웠고, 강원도 평창에 이승복 기념관이 세워졌으며 교과서에도 실렸다. 2000년대 들어 일각에서 이 보도가 오보라는 억지 주장이 제기됐으나 2006년과 2009년 대법원은 '조선일보 보도는 사실'이라고 확정 판결했다.

    1970년 11월 22일 주간조선에 실린 '전태일 수기'는 분신자살한 노동자 전태일의 일기장을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이상현이 영안실에서 단독 입수해 게재한 특종이었다. "대통령 각하, 저희들은 근로기준법의 혜택을 조금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전 종업원의 90% 이상이 평균 18세 여성입니다. 하루 15시간의 작업은 너무 과중합니다"라고 적힌 일기장 내용은 논리 정연한 문장으로 노동 현장의 상황을 고발하고 있었다. 당초 사회면에 단신으로 실렸던 사건사고를 한국 노동운동의 불씨가 되도록 했던 역사적인 특종이었다.

    '고려 금속활자 세계 최초 공인'(1972년 5월 28일 1면)은 조선일보가 역사 교과서를 다시 쓰게 한 대표적인 기사였다. 유네스코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개최한 '책의 역사' 전시회에서 고려 시대인 1377년에 간행된 서적 '직지심경(直指心經·직지심체요절)'을 공개 전시함으로써 고려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 활자보다 75년 앞선 세계 최초 활자로 공인됐다는 내용이었다. 소장자인 파리 국립도서관이 1911년 파리의 두루오 경매장에서 구입했다는 것과 왜 뒤늦게 이 책이 세계 최고 활자로 공인받게 됐는지 상세히 보도했다.

    1976년 1월 9일 1면에는 '주은래 사망' 기사가 크게 실렸다. 주은래(周恩來·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전날 암으로 사망한 사실을 국내 일간지 중 처음으로 보도한 것이다. 9일 오전 4시 4분 일본의 중국 통신이 신화사 통신을 인용해 타전한 것을 포착하고, 이미 시내판 신문을 인쇄하고 있던 시각에 윤전기를 세운 결과였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국내 매체 중에서 유일하게 이뤄낸 특종의 충격은 무척 컸고 "10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대특종"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1976년 8월 22일 1면 '김일성의 사과 메시지'도 의미가 큰 특종이었다. 북한군이 미군 경비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한 8·18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직후인 8월 21일 북한 측 수석대표와 유엔 측 수석대표 사이의 이례적인 단독 회담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김일성이 미국 측에 유감을 표시하는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내용을 단독 보도한 것이다. 세계 4대 통신사가 모두 조선일보 기사를 인용함으로써 세계적인 특종이 됐고, 다음 날 미국 정부가 "김일성 명의의 사과문이 유엔군 총사령관 스틸웰에게 전달됐다"고 공식 확인했다.

    조선일보 지령1호~30000호까지
    20001호~30000호까지

    1986년 8월 15일 새벽 1시, 조선일보 사회부로 독자 전화가 걸려왔다. "사당동 정형외과에 흉기로 난도질당한 시체 4구가 널려 있다는데 구체적인 정황을 알 수 있겠습니까?" 황당한 내용의 전화에 여러 차례 속아본 사회부 기자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점차 '제보자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야근자를 삐삐로 호출해 현장 확인을 시킨 뒤 안에선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리며 취재를 시작했다.

    "병원에서 신고가 들어와 조사하러 나갔다"는 경찰 측 확인을 듣고 기사 초고를 완성한 1시 45분, 병원에 도착한 기자에게 걸려온 전화 속 목소리는 화급했다. "선배, 보통 사건이 아닙니다. 정말 지옥 같은 현장입니다!" 이날 사회면 톱기사인 '서진 룸살롱 살인 사건' 특종 보도가 나오는 순간이었다. '한밤 네 청년 살해 병원 유기' '검은색 승용차로 시신 운반'이란 제목이 달린 이 기사는 조직폭력배들이 유흥가에서 유혈 난투극을 벌인 뒤 4명을 살해해 병원에 시체를 버리고 도주한 사건의 1보였다. 이후 조폭 세계를 심층 해부하는 기사가 이어졌다.

    1987년에 접어들면서 직선제 개헌으로, 대통령을 국민 손으로 직접 뽑자는 민주화 열망이 커졌다. 1월 14일 경찰 조사를 받던 서울대생 박종철이 사망한 사건은 이후 '87년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20일 아침 조선일보는 그가 물고문을 당하던 중 질식해 사망했다는 사실을 보도하고 '고문은 없어져야 한다'는 사설을 실었다. 1월 24일 11면 '박종철 고문 경관 없이 현장 검증' 기사는 그 전날 사건 현장인 서울 용산구 갈월동 치안본부 대공수사 조사실에서 실시한 현장 검증 상황을 단독 보도했다. 뜻밖에도 정작 가해자인 두 고문 경관이 나타나지 않은 채 검찰과 경찰 관계자만 참석해 40분 동안 비공개로 '시설물 점검'만 했다는 내용이었다. 당국이 사건의 은폐·축소에만 급급했다는 것을 시사한 이 기사는 독자들의 공분을 샀고, 철저한 진상 조사 요구로 이어지게 됐다.

    올림픽의 해인 1988년에는 지구촌 이목을 조선일보로 쏠리게 한 '세계적 특종'이 탄생했다. 1988년 9월 27일 1면에 실린 '벤 존슨 약물 복용' 기사였다. 사흘 전인 24일 열린 올림픽 육상 100m 경기에서 캐나다 벤 존슨이 9초79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서울올림픽 최대 관심사였던 벤 존슨과 칼 루이스의 대결에서 벤 존슨이 승리하며 세계인을 열광시킨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특종 기사는 벤 존슨이 약물 복용으로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조사를 받았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보도 전날인 26일 이 사실을 제보받은 조선일보는 확인 취재를 통해 IOC가 이날 밤 10시에 벤 존슨과 팀닥터, 캐나다 IOC 위원 등을 소환하는 의무분과위원회 청문회를 연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종을 유지하기 위해 보안에 신중을 기했고, 1면 톱기사와 5면 해설 기사를 준비하면서도 27일 자 가판에는 이 기사를 싣지 않았다. 그날 밤엔 신라호텔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관계자들의 현장 사진까지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다음 날 아침 신문이 발행되자 세계 언론사들은 조선일보를 인용해 황급히 뉴스를 송고하면서 조선일보의 취재 경위를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미국 UPI통신과 일본 마이니치신문 등은 조선일보가 단독 촬영한 스케치 사진을 얻을 수 없겠느냐는 전화를 걸어 왔다. 벤 존슨은 금메달을 박탈당하고 이후 2년간 출전 금지 조치를 받았다.

    1990년 1월 18일 1면에선 '민정 민주 공화 3당 합당' 기사를 단독 보도했다. 6공화국 초, 당시 관심이 집중되고 있던 정계 개편 구도가 정치 연합이나 정당 통합 방식이 아니라 '개헌 가능한 3분의 2 의석을 확보할 수 있는 3당 통합 방식이 될 것'임을 최초로 적시한 특종 기사였다. 1992년 내각제 개헌을 추진할 것이라는 내용도 포함,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민주당 총재 간의 막후 교섭 내용까지 정확히 취재한 기사였다. 3당 합당은 일요일인 1월 21일 발표됐고, 조선일보는 면밀한 준비 끝에 이 내용을 담은 호외를 22일 자로 발행했다.

    1993년 8월 18일 고구려 무용총 벽화 한국언론 첫 촬영:중국 지안(集安)에 있는 무용총 등 고구려 고분 8기 내부 벽화를 조선일보 특별취재반의 김주호 기자가 한국 언론 최초로 촬영해 공개했다.
    1993년 8월 18일 고구려 무용총 벽화 한국언론 첫 촬영:중국 지안(集安)에 있는 무용총 등 고구려 고분 8기 내부 벽화를 조선일보 특별취재반의 김주호 기자가 한국 언론 최초로 촬영해 공개했다.
    2016년 11월 6일 웃으며 검찰 조사 받는 우병우 前 수석: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팔짱을 낀 채 검찰 조사를 받는 모습을 고운호 기자가 330m 떨어진 건물 옥상에서 망원렌즈로 촬영해 단독 보도했다.
    2016년 11월 6일 웃으며 검찰 조사 받는 우병우 前 수석: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팔짱을 낀 채 검찰 조사를 받는 모습을 고운호 기자가 330m 떨어진 건물 옥상에서 망원렌즈로 촬영해 단독 보도했다.

    1992년 6월 25일 사회면에는 '예비역 합참 간부 50억대 토지 사기'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정보사 토지 사기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특종이었다. 이 기사는 예비역 대령인 합참 고위 군무원이 '서초동 정보사 부지 불하를 알선해 주겠다'며 민간인들에게 50여 억원을 받아 챙긴 뒤 군 수사기관의 조사가 시작되자 홍콩으로 도주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7월 5일 '정보사 부지 사기 관련, 제일생명 230억 사취당해' 등, 이 사건 후속 보도에서 조선일보는 주도권을 잡고 1면과 사회면 머리기사로 연속 특종을 터뜨렸다.

    김영삼 정부 정국의 흐름을 뒤바꿔놓은 특종 '전직 대통령 비자금' 보도는 1995년 8월 3일 1면에 실렸다. 하루 전 서석재 총무처 장관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직 대통령 중 한 사람이 수천억원의 가명 계좌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 내용을 단독 보도한 것이다. 보도 이후 야권은 진상 조사와 국정 조사권을 요구했고, 서석재 장관은 4일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정부가 '4000억원 계좌 진상 조사를 하겠다'는 내용이 6일자 조선일보에 보도되면서 이 사건은 진정되는 듯했지만, 2개월 뒤 '서석재 발언'의 실체는 본격 폭로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4000억원이며 40개 차명계좌에 예치돼 있다는 내용이었다. 검찰은 6공 비자금 전면 수사에 착수했고,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를 받은 뒤 뇌물 수수와 정치 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한국 전직 대통령의 역사상 첫 구속이었다.

    1996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으로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들떠 있던 한국은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 금융 사태로 급격한 추락을 맞았다. 이 사태 와중에서 조선일보는 1997년 12월 8일 1면에 'IMF 한국 경제 극비 보고서' 특종 기사를 실었다. IMF 협상단이 이사들에게만 제출한 이 보고서는 "10월 말에 이미 외환시장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지만 한국 정부는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외환 보유액과 금융부실 상태를 잘못 파악해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한국이 금융 개혁과 재벌 개혁 등 IMF 경제 프로그램을 제대로 실행하면, 구제금융 전액을 모두 인출하기 전에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위기 극복을 다짐하는 국민들에게 용기를 주는 기사였다.

    김대중 정부에서 각종 '게이트'가 터져 나오던 시기인 2002년 4월 10일 1면에는 '김홍걸씨에 9억원 줬다' 특종 보도가 실렸다. 이번엔 대통령의 아들이 연루됐다는 뉴스였다. 정부 초기 인수위에서 일했던 최규선씨를 단독으로 인터뷰해 "김 대통령의 3남 김홍걸씨에게 벤처 투자 자금 명목으로 5억원, 주택·차량 구입비 4억원 등 모두 9억원을 줬다"는 진술을 받았다. 결국 김홍걸씨는 '최규선 게이트'와 관련해 구속 수감됐다.

    2005년 7월 21일 1면은 '안기부 불법 도청' 특종이 장식했다. 안기부가 YS 정부 때 정계·재계·언론계 인사들의 대화를 불법 도청하는 비밀 조직 '미림팀'을 운영했다는 내용을 단독 보도한 것이다. 정보기관의 전화 도·감청이 논란이 된 적은 있었으나 술집이나 식당에 출장 나가 이뤄지는 '현장 도청'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유례없는 일이었다. 기사는 미림팀이 안기부 내 핵심 수뇌부 한두 명에게만 보고하는 특수도청팀으로, 요정이나 한정식집, 룸살롱 등 현장에서 직접 도청기를 꽂고 도청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천안함 폭침 사건이 일어난 뒤인 2010년 4월 15일 1면에는 '합참의장, 49분 지나 첫 보고 받았다' 특종 기사를 냈다. 천안함이 폭침당할 당시 군의 보고·지휘체계에 큰 결함이 있었다는 이 기사는 나라의 안보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다는 경보음과도 같았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