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미술교사 최규식씨… 20여년 스크랩북에 모은 기사가 1000건

    입력 : 2017.06.24 03:02

    [조선일보 지령 3만호]
    "신문은 읽는 재미+보는 재미 인터넷으론 음미할 수 없죠"

    최규식(60)씨가 조선일보 시사 관련 기사를 모은 스크랩북을 대학생인 딸 수현(19)씨와 함께 보고 있다. 거실 바닥에는 최씨가 20여 년 동안 모아온 조선일보 기사들이 펼쳐져 있다.
    최규식(60)씨가 조선일보 시사 관련 기사를 모은 스크랩북을 대학생인 딸 수현(19)씨와 함께 보고 있다. 거실 바닥에는 최씨가 20여 년 동안 모아온 조선일보 기사들이 펼쳐져 있다. /독자 최규식씨
    "종이로 된 미술관이죠. 음미할 수 있잖아요."

    대구의 한 중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일하는 독자 최규식(60)씨는 '신문 미술관론(論)' 주창자다. 최씨는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던 2000년대 초반부터 이 '신문 미술관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아내가 신문 구독을 끊고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 것이 계기였다. 최씨는 "인터넷 뉴스는 음미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한마디로 '기(氣)'가 느껴지지 않는 거죠. 신문은 바스락거리며 한 장씩 넘길 때 이 정보들이 어떻게 모였고, 종이에 녹아들었는지 느낄 수 있잖아요. 하지만 인터넷 뉴스는 읽는 순서가 없고 광고나 댓글 같은 잡음이 많아 호흡하며 읽기가 힘들어요."

    최씨가 신문의 맛을 즐기는 '미식가'가 된 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이후다. 매일 아침 아버지가 읽던 신문에 호기심이 생겨 펼쳐 들었는데, 단번에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학생 수준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와 단어들이 신문 기사에 종종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최씨가 선택한 방법은 '신문 보기'. 무작정 글을 읽기보다 기사의 그림을 먼저 보고, 기사가 배치된 지면 전체를 보기 시작했다. 최씨는 "전시회에 가서 작품을 멍하니 보고만 있어도 이 작품이 어떤 의미인지 와 닿는 것처럼, 신문 기사도 전체를 응시하고 읽으면 한결 이해하기 쉽다"며 "신문은 읽는 재미도 있지만 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최씨는 신문 미식가인 동시에 신문 수집가이기도 하다. 20여 년 동안 모아온 신문 기사가 어림잡아 1000건에 달한다. 종종 딸 수현(19)씨에게 스크랩북을 자랑하다 보면, 거실이 금세 조선일보 지면으로 꽉 찬다고 한다. 수집한 기사는 미술 관련 기사가 많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미술 선생님이 시류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 미술 기사를 무조건 모으기 시작했다.

    미술 기사 수백 건 중 최씨는 옻칠장인 전용복씨 관련 기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한국인이 옻칠의 나라 일본에서 최고의 칠예가로 인정받은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다. 2008년 실렸던 인터뷰 기사부터 지난해 실린 기사까지 모두 모았다. "가끔씩 전용복씨 기사를 꺼내 읽어봐요. 신문에는 그때 느낀 감동이 박제돼 여전히 남아 있거든요."

    가지고 있지도 않고, 살 마음도 없지만, 조선일보 지면에 자주 등장하는 명품 시계 광고도 꼬박꼬박 오려서 보관한다. 장인들의 손길이 닿은 명품 시계와 그 광고의 디자인이 변하는 것을 보며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씨는 "20여년 동안 모아온 기사 모음이 시중에 나와 있는 어떤 미술책보다 내용이 풍부하다"고 했다.

    수현씨가 고등학생이 된 4년 전부터는 시사와 교육 관련 기사도 모으기 시작했다. 딸이 공부할 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 절반, 신문을 핑계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마음 절반이었다. 지난해 수현씨가 공대로 진학한 이후에 최씨는 과학 관련 기사도 꼼꼼히 스크랩하고 있다고 한다. "신문은 미술관이잖아요. 이제는 딸과 함께 종이 미술관을 거니는 시간을 천천히 즐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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