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우리 건너 법당… 스님은 포클레인 운전 중

    입력 : 2017.06.23 03:01

    [신도들과 함께 법당 짓는 충북 음성 법화선사 덕현 스님]

    법정스님 제자로 길상사 주지 지내… 6년 전 길상사 떠나 경북 봉화로

    "함께 수행하자" 신도들 찾아와 수행 공동체 '법화림' 창립
    내일 새 불상 점안법회 열어

    "우우웅~."

    지난 12일 오후 충북 음성 법화선사(法華禪寺) 마당에 굴착기 엔진 소리가 우렁찼다. 전남 장흥에서 도착한 석불(石佛) 3점을 법당으로 옮기는 중이었다. '백제의 미소'라는 서산 마애불을 모델로 한 불상이다. 굴착기 운전석엔 흰 반팔 티셔츠에 핫바지, 밀짚모자를 쓴 이가 앉아있다. 덕현(54) 스님. 법정(法頂·1932~2010) 스님의 제자로 지난 2011년 2월 서울 성북동 길상사 주지 임기를 2년여 남겨두고 홀연히 떠났던 스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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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현 스님이 직접 굴착기를 운전해 석불(石佛)을 옮기고 있다. 스님과 신도가 합심해 1년 반째 공사 중인 충북 음성 법화선사 법당 공사에서 덕현 스님은 으뜸가는‘일꾼’이다. /김한수 기자
    법화선사는 아직 공사 중인 '개척 사찰'이다. 입구부터 남다르다. 내비게이션 안내대로 도착하면 '종돈장(種豚場)' 입구다. '설마…' 하는 선입견은 금물, 종돈장을 통과해야 절에 이른다. 종돈장을 운영하던 노보살이 시주한 사택(社宅)이 절의 시작이었다. 삼존불은 공사 중인 새 법당 '자성천불전(自性千佛殿)'으로 옮겨졌다. 법당엔 이미 설치미술가이자 이 사찰 신도 전수천(70)씨가 만든 천불(千佛)이 모셔져 있다. 199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특별상 수상 작가인 전씨는 석굴암 본존불을 모델로 한 높이 19㎝짜리 대리석 석불 1000점을 지난달 부처님오신날에 맞춰 설치했다.

    덕현 스님이 길상사를 떠났을 때 많은 이가 궁금해했다. 그에게 사연을 들었다. 서울대 법대 82학번인 스님은 1989년 송광사로 출가했다. 백양사 운문암을 비롯한 전국 선방(禪房)을 돌며 수행하다 2009년 병중(病中)의 은사 뜻에 따라 길상사 주지를 맡았다. 혼자 수행하는 것과 큰 사찰 운영을 책임지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주지를 맡기 전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이 있어 심신이 힘들었다.

    길상사를 떠난 그는 경북 봉화로 향했다. 도반(道伴) 몇몇과 네 명 정도 수행할 수 있는 암자를 짓던 중 길상사 시절 신도들이 찾아와 함께 수행하고 싶다고 했다. 스님과 신도 구분 없이 함께 수행하다 2012년 수행 공동체 '법화림(法華林)'을 창립했다. "부처님이 소승·대승불교 경전을 모두 말씀하시고 마지막에 설(說)하신 최고 가르침이 법화경입니다. 그 가르침처럼 모든 구성원이 숲의 나무들처럼 모여 공부하자는 뜻에서 법화림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법정 스님도 "수행이 먼저, 절[寺]은 나중"이란 게 지론이었다.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 이후에 길상사를 창건했다.

    충북 음성 법화선사 법당에서 덕현(오른쪽) 스님이 전수천(왼쪽) 작가가 만든 천불(千佛) 중 한 점을 손 위에 들고 있다.
    충북 음성 법화선사 법당에서 덕현(오른쪽) 스님이 전수천(왼쪽) 작가가 만든 천불(千佛) 중 한 점을 손 위에 들고 있다.
    법화림 공동체는 서울 용산의 작은 상가 건물 3층과 충북 음성에도 수행 공간을 만들었다. 스님은 매월 음력 초하루 법회는 음성, 매월 넷째 일요일 법회는 서울, 하안거·동안거 기간엔 봉화 등을 오가며 신도들과 함께 수행하고 있다. 지금 신도는 150여 명.

    '자성천불전'을 짓게 된 것은 신도가 늘면서 법당으로 쓰던 사택이 비좁아져서다. 신도들이 앞장섰다. 작년 초 동안거 끝 무렵 신도들은 종잣돈을 모아 법당을 짓자고 스님께 제안했다. 그다음 '일'은 스님 몫이었다. 대학 때부터 건설 현장 막노동으로 단련된 스님은 직접 굴착기 운전뿐 아니라 나무 다듬기, 벽돌 쌓기 등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전체 60평 남짓한 건물 공사에 1년 반이 걸린 이유는 공사비 모인 만큼씩 진도가 나갔기 때문. 자성천불전은 멀리서 보면 번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곳곳에서 '아마추어티'가 난다. 기와도 플라스틱이다. 이유는 두 가지. 싼 게 먼저이고, 둘째는 지붕 자재가 흙과 기와를 올리기엔 약해서다. 한 여성 신도는 "비록 허름해도 하나씩 우리 스스로 이뤄간다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다. 법화선사는 24일 오전 새 불상 점안 법회를 갖는다.

    덕현 스님은 최근 에세이집 '행복해라, 나 이 생에도 그대를 만났네'(도서출판 법화) 개정 증보판을 펴냈다. 직접 출판사 등록을 하고 펴낸 이 책의 1부 130여 쪽은 새로 썼다. 은사 법정 스님의 글이 연상될 정도로 글맛이 살아있다. 법정 스님의 칼칼한 성격을 잘 보여주는 직접 겪은 일화도 풍부하다. 책 날개의 저자 사진도 평범하지 않다. 스님한테 묻자 "휴대폰 셀카로 찍은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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