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1만명 뽑는데 22만 몰렸다

    입력 : 2017.06.19 03:15

    40代이상도 1만5000명 응시… "자리 느는 이번 정부가 기회"
    24일 치르는 서울시 9급 공채엔 1514명 뽑는데 12만명 지원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 문제가 점점 산으로 간다" 불만 폭발

    - 이런 公試… shrimp는 슈림프? 쉬림프?
    장광설의 '설'은 舌? 說?… 이런걸 잘 맞히면 좋은 공무원 되나요
    총 5개 과목 객관식 100문제로 사실상 합격 여부 판가름
    변별력 높이려 지엽적 지식 물어… 9급 공무원은 민원 등 실무 담당
    "지식 암기 실력으로 뽑기보다 공직 적격성 평가 등 도입해야"

    17일 오전 10시 서울을 제외한 7개 시(市)와 9개 도(道)의 9급 지방공무원을 뽑는 공채 시험이 치러졌다. 지방공무원 1만315명을 뽑는 이날 시험에 지원 서류를 낸 지망생의 숫자는 22만501명. 역대 9급 지방공무원 공채 시험 지원자 중 가장 많은 숫자였다. 평균 경쟁률은 지난해 18.8대1을 훌쩍 뛰어넘은 21.4대1을 기록했다. 오는 24일 별도로 치러질 서울시 9급 공무원 공채 시험의 경우 1514명을 뽑는데 12만4954명이 몰려 평균 82.5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오전 9시 20분이 되자 전국 342개 학교 고사장에는 응시생들이 들어찼다. 9급 행정·기술직 공무원 695명을 뽑는 충남도엔 응시생 1만1319명이 몰렸다. 이날 오전 7시 22분쯤 서울 용산역 무궁화호 철로에서 50대 남성이 투신하는 사고 때문에 천안으로 가던 열차가 연착해 응시생 19명이 순찰차를 타고 시험장에 입실하기도 했다. 고사장 곳곳에는 중년의 응시생들도 눈에 띄었다. 올해 40대 이상 공무원 시험 지원자는 처음으로 1만5000명을 넘어섰다.

    “이번엔 될까” 무거운 발걸음 - 2017년도 9급 지방공무원 채용시험이 치러진 17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성일고에서 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이 교문 밖을 나서고 있다. 서울을 제외한 전국 16개 시·도에서 1만315명을 뽑는 이번 시험에는 22만501명이 몰려 평균 경쟁률이 지난해(18.8대1)보다 높은 21.4대1을 기록했다.
    “이번엔 될까” 무거운 발걸음 - 2017년도 9급 지방공무원 채용시험이 치러진 17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성일고에서 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이 교문 밖을 나서고 있다. 서울을 제외한 전국 16개 시·도에서 1만315명을 뽑는 이번 시험에는 22만501명이 몰려 평균 경쟁률이 지난해(18.8대1)보다 높은 21.4대1을 기록했다. /고운호 기자

    문재인 정부가 소방·경찰·사회복지 전담 등 공무원 채용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고, 최근 11조원에 이르는 일자리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2년째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조모(28)씨는 "정부가 공무원 채용을 늘리면 합격할 가능성도 커지지 않겠느냐"면서 "한때 공시(公試)를 포기할까 고민했는데, 이젠 계속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워낙 많은 지원자가 몰리다 보니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시험 문제가 어려워진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7일 시험이 끝나자 공무원 응시생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예년에 비해 국어·영어·한국사 등 공통 과목의 난도가 올라갔다'며 응시생들이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들은 "9급 공무원 시험은 사지선다 문제 100개로 응시자 십수만명을 떨어뜨려야 하다 보니 일부 문제는 지나치게 지엽적"이라며 "9급 공무원 일과 무관한 지식을 쌓느라 시간을 허비한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날 지방공무원 필기시험을 치른 김모(27)씨는 "장광설(長廣舌)의 설이라는 한자가 舌(혀 설)인지, 說(말씀 설)인지 묻는 국어 문제를 보고 당황했다"며 "이걸 맞히면 훌륭한 공무원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최근 청년 실업률이 10%에 육박하고, 민간 기업의 고용 지속성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9급 공무원으로 취업 준비생들이 몰리고 있다. 매년 공무원 시험 응시자가 늘어나고, 경쟁률이 치열해진다. 올해 상반기에 치러졌거나 치러질 예정인 9급 공무원 시험(국가직·지방직·서울시 공채, 사회복지전문직 등)의 지원자 수(중복지원 포함)는 61만명으로 작년 수능시험 지원자(60만5900여명)보다 많다. 하지만 공시생들은 시험 문제가 지나치게 지엽적이라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공무원에게 필요한 자질을 갖춘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과 무관한 지식으로 응시자 절대다수를 떨어뜨리려고 한다는 지적이다.

    ◇공무원 자질보다 지엽적 지식 따져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국가직·지방직 9급 공무원의 초임 연봉은 기본급과 수당 등을 고려하면 2500만~2600만원 수준으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조사한 4년제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평균 4350만원)에 비하면 적지만, 300인 미만 중소기업의 기간제 초임(2223만원)보다는 많다. 여기에 육아휴직·연금 등을 고려하면 9급 공무원의 장점은 더욱 커진다.

    지방직 공무원 응시자 숫자 및 경쟁률 그래프

    9급 공무원 시험은 공통 과목 국어·영어·한국사와 선택 과목 2개 등 총 5개 과목의 사지선다형 객관식 문제 100문항을 100분 안에 푸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노량진 학원가 관계자는 "시험 변별력을 확보해 점수 차이가 나게 하려면 학생들에게 생소한 어휘·지문·자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광주광역시에서 시험을 본 박모(27)씨는 "국사에서 처음 보는 사료(史料)가 제시돼 당황했다는 수험생이 많았다"고 했다. 유명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번 시험은 상세한 내용을 암기하지 않으면 맞히기 힘든 고난도 문제가 여럿 출제됐다'며 '(응시생들이) 처음 보는 사료가 나온 5번 문항이 가장 어려웠다'고 평가했다.

    ◇"업무와 무관한 공부로 허송세월"

    응시생들의 불만은 근본적으로 '공무원 시험을 위한 공부가 실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데에서 나온다. 서울 구로구 고시원에서 3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최모(28)씨는 "영어 단어 shrimp(새우)의 외래어 표기법이 '쉬림프'가 아닌 '슈림프'라는 기출문제를 외우는 것이 9급 공무원 일을 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느냐"면서 "가끔은 '내가 이런 공부를 하느라 몇 년을 허비하는 게 맞는가' 하는 회의가 든다"고 했다.

    9급 공무원은 서기·지방서기(8급)의 아래인 모든 공무원을 통칭하는 말이다. 일반직 공무원의 가장 말단으로, 민원 업무 등 실무를 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려운 한자어나 고유어, 역사적 인물의 저서 목록 등 단편적인 지식을 외우지 않아도 업무를 수행하기엔 아무 지장이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공무원 시험 출제 방식을 공직자의 자질·소양을 쌓는 데 도움이 되도록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창기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시생들의 지식 암기 중심의 공부 부담을 줄여주면서 역량 중심 평가를 하려면 9급 공무원 시험에 공직 적격성 평가(PSAT)를 도입하거나, 필기시험 배점을 줄이고 면접 비중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기관정보]
    공무원 인사 등의 사무를 관장하는 인사지원처
    청춘의 또 다른 이름, 공시생 구성=뉴스큐레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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