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서면, 내 잊고 싶은 과거도 저물까

    입력 : 2017.06.19 03:03

    [선유도·월드컵공원… '陰地의 기억' 지운 서울 再生 공간들]

    위험시설이었던 석유비축기지. 7월이면 5개 공연장으로 변신
    매립장 흔적 지운 월드컵공원, 동식물 1500여종 서식지로
    초원 곳곳 거대 조각상은 이국적

    초록빛 청보리가 넘실대는 5만7000평(19만㎡) 언덕 끝자락에 서니 공연장으로 변신 중인 지름 38m짜리 석유탱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14일 오전 마포구 상암동 하늘공원. 여기저기서 새소리와 곤충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소풍을 온 유치원생들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소리를 따라 뛰어다녔다.

    "여러분~. 여기가 예전에 쓰레기장이었다는 거 알고 있나요?"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은 "네? 진짜요?" 하고 되물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포구 상암동 하늘공원엔 ‘하늘을 담은 그릇’이라는 이름의 전망대가 있다. 월드컵공원 5곳 중 가장 높은 곳(해발 98m)에 있는 이곳에선 방문객들이 둥그렇게 둘러서서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저녁 무렵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의 아름다움은 감동을 안긴다.
    마포구 상암동 하늘공원엔 ‘하늘을 담은 그릇’이라는 이름의 전망대가 있다. 월드컵공원 5곳 중 가장 높은 곳(해발 98m)에 있는 이곳에선 방문객들이 둥그렇게 둘러서서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저녁 무렵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의 아름다움은 감동을 안긴다. /마포구

    쓰레기 매립장, 석유비축기지, 수돗물 정수장…. 1970년대 고도성장기부터 수십 년간 서울의 음지(陰地)였던 곳들이 시민을 위한 생태문화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선유도공원에서 양화대교를 건너 월드컵공원, 석유비축기지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으면서 '도시 재생(再生)'의 의미를 실감해보자.

    ◇버려진 석유탱크가 실내 공연장으로

    상암 월드컵경기장 건너편에 있는 마포 석유비축기지는 지금도 인터넷 지도에서 찾아볼 수 없는 '1급 보안 시설'이다. 1973년 1차 석유파동을 겪은 서울시는 3년 뒤 이곳에 높이 15m, 지름 15~38m짜리 석유탱크 5개를 세워 가솔린, 디젤, 벙커시유 등 6907만L를 보관해왔다. 2002년 FIFA(국제축구연맹) 한·일 월드컵을 2년 앞둔 2000년엔 위험 시설로 분류돼 폐쇄됐다. 이후 10년 넘게 출입 금지 구역으로 방치돼 왔다.

    재생을 테마로 삼은 서울의 문화, 생태 공간 지도

    시는 2015년 버려졌던 석유비축기지(14만㎡)를 생태문화공간인 '문화비축기지'로 탈바꿈시키는 공사를 시작했다. 470억원을 들여 5개 탱크를 공연장, 상설 전시장, 다목적 문화 공간으로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지름 38m로 가장 큰 2번 탱크는 공연장이 된다. 1번 탱크는 외벽을 유리로 다시 둘러 다목적 파빌리온으로 만든다. 3번 탱크는 원형대로 보존한다. 탱크 앞 부지는 산책로, 야생화 정원으로 꾸민다. 기지 내 모든 냉난방 시설은 100% 지열로 돌린다. 지하 205m 깊이의 구멍을 뚫어 나오는 지하수의 열에너지를 이용한 친환경 냉난방 시스템이다. 시는 6월 말까지 공사를 마치고, 7월 중 일부 시설을 공개할 예정이다. 정식 개장은 9월.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내려 경기장 서문 쪽을 지나오면 만날 수 있다.

    ◇생태 보고(寶庫)로 변신한 쓰레기 언덕

    노을공원에 있는 높이 8m 조각상 ‘그림자의 그림자’. 보는 위치에 따라 온전한 사람 혹은 반쪽의 형상이 나타난다.
    노을공원에 있는 높이 8m 조각상 ‘그림자의 그림자’. 보는 위치에 따라 온전한 사람 혹은 반쪽의 형상이 나타난다. /마포구

    석유비축기지 맞은편엔 높이 98m, 넓이 270만㎡의 월드컵공원이 있다. 지그재그로 난 291개의 하늘계단을 오르다 보면 드럼통 모양의 매립 가스를 모으는 시설이 군데군데 보인다. 월드컵공원은 1978년부터 1993년까지 서울 시민이 버린 쓰레기를 처리하는 난지도 매립장이었다. 15년간 버려졌던 쓰레기는 높이 98m의 거대한 언덕이 됐다. 2002년 시는 이곳에 하늘공원, 노을공원, 난지천공원, 평화의 공원, 난지 한강공원 등 공원 5곳을 조성했다. 공원 조성 당시 500여 종에 불과했던 동식물이 매년 늘어 멸종위기종 맹꽁이를 비롯해 1500여 종이 사는 생태계 보고로 탈바꿈했다. 하늘공원은 여름엔 청보리, 가을엔 억새로 유명하다. 시야도 탁 트여 맑은 날엔 북한산, 남산, 63빌딩, 한강 그리고 저 멀리 행주산성까지 보인다. 또 다른 쓰레기 산 위의 노을공원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서울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초원 곳곳에 서 있는 거대 조각상들은 이국적인 느낌을 더해준다. 공원까지 걸어 올라가기가 힘든 사람들은 하늘·노을공원 입구에서 맹꽁이 전기차(성인 왕복 3000원)를 타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연인들이 많이 찾는 사진 촬영 명소

    난지, 망원 한강공원 쪽으로 내려와 양화대교 중간까지 1시간 정도 걷다 보면 선유도가 나타난다. 지하철 9호선 선유도역 2번 출구로 나와 선유교를 건너오거나, 당산역에서 603·760·5714번 버스를 타고 양화대교 위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선유도는 원래 1978년부터 2000년까지 매일 수돗물 40만t을 공급하던 정수장이었다. 시는 2002년 이곳을 공원으로 만들면서 버려진 정수장 시설을 재활용했다. 정수장 지붕만 걷어내고 기둥을 그대로 살려놓은 '녹색기둥의 정원'으로 들어서면 마치 고대 문명의 폐허에 온 듯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돈다. 공원 곳곳에선 수로와 시설물이 당귀, 대나무, 이끼 등 다양한 식물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젊은 연인들 사이에선 사진 찍으러 한 번쯤은 가볼 만한 장소로 소문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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