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오른다리 곧추세우고 정면 응시한 첫 관음보살

    입력 : 2017.06.19 03:02 | 수정 : 2017.06.19 09:50

    [기존 '수월관음도' 공식 깬 고려불화]

    정우택 동국대박물관장 발견
    상단엔 세 구의 화불 그려 넣고 하단엔 수해·도적떼 만난 사람들
    관음보살 찾는 모습 자세히 묘사… 고려 말 혼란했던 사회 반영

    관음보살의 눈이 정면을 응시한다. 반가부좌였던 다리는 곧추세웠다.

    파격적 구도의 고려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가 일본의 한 개인 소장자 집에서 발견됐다. 고려 불화 권위자인 정우택 동국대박물관장은 "지난 3월 동국대 개교 111주년 기념사업회 후원으로 일본 지역 한국 불교 미술품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를 발견했다"고 18일 밝혔다. "한쪽 다리는 곧추세우고 다른 한쪽 다리는 아래로 내려뜨린 유희좌(遊戱座)를 하고 있는 첫 수월관음도로, 기존 상식을 깨트리는 도상(圖像)"이라고 설명했다.

    수월관음도는 달빛 아래 바위에 앉은 관음보살을 그린 그림으로 160여 점 현전하는 고려 불화 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국내에서 대부분 유출됐고, 현재는 세계적으로 40여 점이 남아 있다.

    파격적 형식… 고려 불화 다양성 보여줘

    지금까지 알려진 고려 수월관음도는 대부분 일정한 '공식'을 따랐다. 관음이 오른쪽 위에 반(半)가부좌를 틀고 앉아 왼쪽 아래에 있는 선재동자(善財童子)를 바라보는 구도다. 관음보살 오른편에 버드나무 가지가 꽂힌 정병이 놓여 있는 것도 특징.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수월관음도(보물 1426호·오른쪽 사진) 이런 양식을 잘 보여준다.

    일본에서 발견된 14세기 중반의 고려 ‘수월관음도’(왼쪽 사진). 관음보살의 자세도 독특하지만 불화 하단에 호환(虎患), 수해, 도적 떼를 만나 관음보살을 찾는 이들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복식사 연구에 도움이 될 정도. 정우택 관장은 “고려 말 사회 혼란 속에서 관음 신앙이 힘을 얻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발견된 14세기 중반의 고려 ‘수월관음도’(왼쪽 사진). 관음보살의 자세도 독특하지만 불화 하단에 호환(虎患), 수해, 도적 떼를 만나 관음보살을 찾는 이들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복식사 연구에 도움이 될 정도. 정우택 관장은 “고려 말 사회 혼란 속에서 관음 신앙이 힘을 얻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정우택 교수 제공·문화재청
    이번 불화(세로 123.5㎝×가로 60.5㎝)의 관음보살은 다르다. 오른쪽 다리는 세우고 왼쪽 다리는 아래로 늘어뜨린 채 정면을 바라본다. 버드나무 가지 꽂힌 정병도 왼편에 놓였고 오른편에는 꽃을 담은 쟁반을 그려넣었다.

    그림 상단과 하단도 기존 수월관음도와는 다르다. 상단에는 화불(化佛)로 짐작되는 세 구의 여래상을 그려넣었고, 하단에는 관음보살이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를 담은 변상도(變相圖·불경 내용을 표현한 그림)를 비중 있게 그렸다. 정우택 관장은 "세 구의 화불이 고려 수월관음도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금니(金泥·금가루)로 몸체를 칠하고 붉은 치마에 국화 무늬를 넣은 채색 기법, 관음보살의 표정, 정병의 형태 등을 봤을 때 기존 고려 불화를 변형한 새로운 형식"이라며 "고려 불화의 다양성을 보여준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고려 말 사회 혼란 반영

    '관음 신앙'은 관음보살의 힘으로 현세의 고난에서 구제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불교 경전 '법화경'에는 "관음보살의 이름을 마음에 간직하고 염불하면 큰불도 능히 태우지 못하고, 홍수에도 떠내려가지 않으며, 모든 악귀도 괴롭힐 수 없다"고 적혀 있다. 그림 하단에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 호환을 당한 사람 등을 묘사한 변상도는 이 내용을 담았다. 정 관장은 "당시 혼란했던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주 수요층이었던 고려 지배계급이 고려 말 원나라의 몰락과 홍건적의 침입을 겪으며 느낀 사회 혼란 속에 관음보살을 통한 구제를 바랐다는 의미. 박은경 동아대 교수(고고미술사학과)는 "다른 고려 불화에 비해 내용이 훨씬 풍부하고 등장인물도 많다"며 "현실 세계에서 관음을 외치면 구제받으리라는 믿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발견은 정우택 관장이 지난 3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고려 불화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했다가 단서를 얻었다. 일본 도쿄예술대 교수가 "개인 소장자 한 명이 고려 불화인 듯한 그림을 갖고 있다"고 귀띔한 것. 정 관장은 곧바로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고, 적외선 촬영 등 비파괴 조사를 진행해 고려 불화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불화는 현 소장자의 아버지(1931년 사망)가 고미술품을 수집하다가 일본 규슈에서 사들였다고 한다. 정 관장은 "색상이 부드럽고 깊이가 있다"며 "정병 등에서 일부 안료가 떨어져 나갔지만 전체적인 완성도는 고려 불화를 대표할 만하다"고 했다. 그는 24일 동국대에서 열리는 동악미술사학회에서 이번에 발굴한 수월관음도를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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