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대학로 상징 샘터사옥, 매물로 나왔다는데…

조선일보
  • 박돈규 기자
    입력 2017.06.17 03:02 | 수정 2017.06.26 11:07

    1979년 지어진 '붉은 랜드마크'
    40~50代들엔 추억어린 명소

    -서울 문리대 도서관 자리
    시민아파트 세우려던 걸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

    -상속세 부담에 매각 추진
    지난해 말 매물나왔지만 다들 수익률만 보며 접근
    아직 거래는 성사 안돼

    -김성구 대표 "샘터 재출발"
    건물 주인 바뀌어도 역사 공간으로 남았으면

    샘터사옥 지도
    서울 대학로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샘터사옥이 매물로 나왔다. 1979년 지어진 지하 2층~지상 5층의 붉은 벽돌 건물로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 앞에 자리 잡고 있다. 건축가 고(故) 김수근(1931~1986)이 설계했고 1980년 제2회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았다. 40~50대에게는 추억이 서려 있는 공간이고 건축사적으로도 보존 가치가 높다는 평이다.

    샘터사옥에는 교양 월간지 '샘터'를 발행하는 출판사 샘터, 대학로 소극장 시대의 개막을 알린 샘터파랑새극장, 갤러리 등이 있다. 통유리창 너머 대학로 사계(四季)를 민낯으로 즐길 수 있어 명소가 된 '난다랑' '밀다원' 같은 찻집 자리에는 스타벅스가 입점해 있다. 1층 한쪽을 행인들이 지나는 통로로 내준 열린 구조, 건물 바깥으로 노출된 계단도 독특하다. 외벽은 담쟁이덩굴로 덮여 있다.

    샘터사옥이 시장에 나온 시점은 지난해 말. 하지만 거래는 아직 성사되지 않고 있다. 김성구 샘터 대표는 "지난해 아버님(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돌아가신 뒤 상속세 부담이 컸다. 가업(家業)인 출판을 지키려면 사옥을 처분하는 길밖에 없었다"며 "역사적 의미와 문화적 가치를 무시하고 수익률만 따지는 사람에게는 팔 뜻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의 '머리'에 해당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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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부터 서울 대학로 1번지 역할을 해온 샘터사옥. 담쟁이덩굴로 덮인 이 건물이 매물로 나왔다./샘터
    1970년대까지 이곳에는 서울대 문리대 도서관이 있었다. 지력(地歷)으로 보면 책이나 출판과 어울린다. 그 시절 좁지 않은 폭의 개천이 청계천으로 흐르면서 동쪽 낙산 방향에는 본부, 문리대, 법대가 있었고 서쪽인 창경궁 방향에는 의대, 약대, 음대, 의대부속병원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문리대 도서관 앞으로 흐르는 개천은 '센강', 거기 놓인 다리는 '미라보 다리'로 불렸다.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곳은 경성제국대학 도서관 자리였다. 서울을 풍수로 보면 낙산이 좌청룡, 인왕산이 우백호에 해당한다. 이토 히로부미가 데려온 지관(地官)은 당초 조선총독부 자리로 이곳을 추천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토는 경복궁 앞을 틀어막아 총독부를 세웠고 이쪽에는 '조선의 머리를 잡자'며 경성제대를 앉힌 것이다.

    서울대가 관악산 기슭으로 옮겨갈 때 양택식 서울시장은 이 자리에 시민아파트를 세우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김재순이 김수근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을 찾아 설득한 끝에 문화공간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해서 샘터사옥, 문예회관(아르코예술극장), 아르코미술관 등 대학로를 상징하는 붉은 벽돌 건물들이 이 주변에 들어섰다. 김성구 대표는 "재미있는 게 이쪽은 3차까지 분양이 안 됐다. 결국 제안한 사람들이 책임지고 맡은 셈"이라며 "당시에는 혼잡하고 시끄러운 대로변보다는 낙산에 가까운 쪽이 땅값이 더 비싸고 인기였다"고 했다.

    샘터사옥에 들어선 찻집(난다랑·밀다원)은 1980년대 조선호텔 커피숍, 코리아나호텔 커피숍과 더불어 서울에서 청춘 남녀가 선을 보는 장소 베스트3 가운데 하나였다. 처음부터 통유리가 있었다. 저물녘 여기 앉아 책을 읽으면 통유리에 적힌 밀다원이라는 글씨가 그림자가 돼 찻집 안으로 쏟아져 내렸다.

    김수근 건축의 특징은 소통과 여백으로 요약된다. 사통오달 구조를 가지고 있고 천장은 마감을 하지 않은 것처럼 돌출 콘크리트로 그냥 남겨 둔다. 김 대표는 "한 건물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싫증을 주는 시점이 8년부터 12년 사이라고 한다"며 "샘터사옥은 미완성으로 남겨둔 여백을 찾는 재미가 있었다"고 했다. 파랑새극장 2관도 원래 보일러실과 전기실이 있던 자리였다. 그것을 옥상으로 옮기고 극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거래가 안되는 까닭은

    김재순 전 국회의장은 YS 집권 직후 정계를 떠날 때 인용한 고사성어 '토사구팽(兎死狗烹·토끼 사냥이 끝나자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으로 유명하다. 그는 수익보다 공공을 위해 샘터사옥을 활용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자녀들도 선친의 뜻을 따르고 싶었지만 상속세 부담이 커 불가피하게 매각을 추진했다.

    상속세와 건물을 팔 경우 발생하는 양도소득세를 합치면 200억원이 넘는 규모다. 샘터사옥은 평당 1억4000만원(총액 약 300억원)에 시장에 나왔다. 주변 시세는 평당 1억5000만원 정도다. 그런데 이런저런 트집을 잡으며 가격을 후려치려는 사람들만 접근해왔다. 그들은 1층에 통로 등 터진 공간이 있어 임대 수익률이 떨어진다느니, 서울미래유산에 등록돼 8~9층으로 신축이나 증축이 어렵다느니 주장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김 대표는 "터진 공간이 수익률을 깎아먹는다는 건 건축적 가치를 무시하는 셈법이고 서울미래유산은 재산권 행사에 아무 제약을 주지 않는다"며 "오해를 막기 위해 서울미래유산은 지난 3월 자진 철회했다"고 밝혔다. 제의는 많지만 계산기만 두드리는 사람 말고 역사적 의미와 문화적 가치를 읽을 줄 아는 매수자가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샘터는 1970년 태어났다. 월간지 샘터는 물론 법정 스님, 피천득, 최인호, 이해인, 장영희, 정채봉 등의 수필과 소설로 독자에게 기억된다. 우리 사회의 교양 기반을 크게 넓혔다. '노란 손수건' 'TV동화 행복한 세상' '길 없는 길' 등 밀리언셀러도 여럿 나왔다. 하지만 요즘 출판은 좀처럼 흑자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 대표는 "그래도 허튼 책은 만들지 않겠다는 게 아버님과의 약속이자 독자와의 약속이다. 내 분신(分身) 같은 샘터사옥을 팔고 나가더라도 이 가업만은 지켜낼 것"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이곳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공간의 샘터가 아니라 정신의 샘터로 새 출발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건물주가 바뀌어도 역사와 추억이 있는 문화적인 공간으로 남았으면 하는 게 간곡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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