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재 "도종환, 7차례 방북…통일부는 방북 자료제출 거부"…도종환 "국보법 폐지 무조건 찬성하지 않는다"

입력 2017.06.14 15:56 | 수정 2017.06.14 17:12

이은재 "도종환 방북 자료 통일부에 요청했으나 거부당해"
방북기 미화 의혹에 대해 "평양은 죽음의 도시 같았다"
농지법 위반 의혹에는 "실제로 농사지으며 살았다" 해명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14일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에 대해 “무조건 찬성하지 않는다. 국가보안법은 지난 정권에서도 굉장히 논란이 많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 후보자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자유한국당 이장우 의원이 “장관 후보자 입장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이같이 답했다.

도 후보자는 또 소설 ‘임꺽정’의 저자 홍명희씨와 관련, 이 의원이 “해방 이후 북한에서 내각 부주석을 지낸 인사인데, 후보자가 홍명희 문학제를 추진한 것은 문제 아니냐”고 지적하자 “그분은 소설가로, 임꺽정은 드라마로도 방영됐다. ‘임꺽정’과 관련한 학술 행사, 문학 행사를 한 것”이라고 답했다.

도 후보자는 또 이 의원이 “2005년 6·15 공동 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문학작가대회에서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가 ‘6·25 전쟁은 민족 해방 전쟁’이라고 말해 파문이 일었는데, 당시 강 전 교수를 지지하는 성명을 내지 않았느냐”고 묻자 “모르겠다”고 했다. 도 후보자는 이어 강 전 교수의 당시 발언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도 후보자는 한국당 김석기 의원이 도 후보자가 2004년 평양에 가서 쓴 방문기 내용을 언급하며 “(도 후보자가) 방문기에서 ‘서울이 욕망의 빛깔, 온갖 현란함과 어지러운 빛깔, 유혹과 타락과 탐욕이 뒤섞인 빛이라면 평양의 빛은 그것들을 털어버리고 담백한 자존심으로 서 있는 승복의 빛’이라고 했다”고 지적하자, “밤에 거기(평양)는 불이 안 들어오는 깜깜한 도시였다. 우리(서울)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있지만, 거기(평양)는 죽음의 도시 같았다”고 했다.

도 후보자는 “당시에 왜 이 같은 글을 썼느냐”는 거듭된 한국당 의원들의 질문에 “실제로 가 보라. 잿빛이다. 승복이 회색 아니냐”라고 했다.

김 의원은 “도 후보자가 방북 당시 당국의 지침을 어기고 북한의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을 방문했다는 증언이 있다”고 지적했고, 이에 도 후보자는 “가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한국당 한선교 의원이 “사실이 아니라면 직을 물러나겠느냐”고 묻자 도 후보자는 “책임지겠다”고 했다.

자유한국당 이은재 의원은 이날 청문회에서 “도 후보자가 2001년부터 2007년 사이에 7차례 방북했다”며 “통일부에 후보자의 방북 관련 자료를 요구했으나 공공기관 정보 보호 등으로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2001년 민족통일대축전 참가 이후로 당국 지침과 본인이 작성한 각서를 어기고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을 방문하는 등 방북행적에 문제가 많다”며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는 국민 알권리 보장 위해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방북 행적을 알 수 있는 자료 제출을 거부한 것은 인사청문회를 무력화시키는 행태”라고 했다.

이에 도 후보자는 “제가 제출할 것은 다 제출했다”고 했다. 교문위 유성엽 위원장은 “통일부에 유선으로 확인해보니 축전의 성격 참가 일정, 방북보고서 사본, 행적보고서 등 계획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개인정보보 보호를 이유로 어느 경우든 공개하지 않았다고 한다”며 “형평성 문제가 있어서 도 후보자와 관련해 제출하기 어렵다는 게 통일부의 입장”이라고 했다.

도 후보자는 또 이은재 의원이 도 후보자가 2005년 충북 보은군의 한 주택과 함께 구입한 농경지(약 117.8㎡)를 실제로는 마당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에 대해 “(위법을) 인정한다. 하지만 농사지을 땅은 안 쪽에 만힝 있었고, 실제로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다. 힘에 부칠 정도로 밭농사를 지었다”고 해명했다.

도 후보자는 “제가 거기서 살기 전에 살던 사람이 암 치료를 받다 사망했는데, 논으로 돼 있는 곳은 그 사람이 죽고 방치돼 자연스럽게 풀씨가 날아오고 나무가 자라면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이 됐다”고 했다.

도 후보자는 “흙집에 들어간 것이 실제로 2003년이다. 몸이 아파서 농사를 지으면서 요양하며 살다가 그 집을 구입하게 됐다”며 “(사는 동안) 주로 밭농사를 지었다. 직장이 없어서 거기서 나는 걸로 몇 년 먹고 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농사 지은 것은 여러 자료로 제출할 수 있다”고 했다.

도 후보자는 이어 농경지 일부가 마당으로 사용된 데 대해서는 “이번에 그 사실을 알았다. 제가 살 때는 밭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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