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 칼럼] 미국은 이런 한국을 이해할까

조선일보
입력 2017.06.14 03:17

오키나와 기지 갈등 때 일본 하토야마 정부는 美와 대립하고 中에 다가서
중국은 그 틈을 파고들어 센카쿠를 때렸다… 미국은 방관했다

선우정 사회부장
선우정 사회부장

오키나와에 처음 간 건 20년 전이다. 감상적 호기심에 이끌렸다. 태평양전쟁 말기 본토 대신 전쟁터가 된 오키나와는 주민 5분의 1이 목숨을 잃었다. 전후 27년 동안 미군 지배도 받았다. 지금도 주일 미군 75%가 오키나와에 몰려 있다. 거대한 기지가 섬의 물류 흐름을 끊고 있다. 사건도 끝없다. 첫 방문 때도 미군이 일본 초등학생을 납치해 집단 성폭행한 사건, 음주 미군이 일가족 3명을 차로 깔아 죽인 사건 때문에 민심이 들끓었다.

오키나와는 일본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고 민족적 정체성까지 잃은 곳이다. 일제 강점기를 겪은 한국인은 오키나와에 흐릿한 감정적 유대를 느낀다. 그 후 오키나와를 세 번 더 취재했다. 그런데 돌아볼수록 오키나와를 향한 시선이 냉정해졌다. 오키나와의 민족적 아픔보다 안보적 가치가 더 선명하게 부각됐기 때문이다.

한·일은 역사 문제로 대립하지만 안보 이익을 공유하는 나라다. 함께 미국 편에서 북한과 중국과 맞서고 있다. 북핵(北核) 공포를 현실로 느끼는 지구상 두 나라다. 오키나와는 일본의 가장 중요한 전방 기지인 동시에 한국의 가장 중요한 후방 기지다. 후텐마 공군기지의 미 36해병 항공군의 임무는 한반도 유사시 오키나와 주둔 해병대를 한반도에 투입하는 일이다. 가데나 공군기지의 전투기와 공중 경계·관제기 역시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하고 있다. 동정을 앞세울 일이 아니다. 국가 지도자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 문제를 감정적으로 대한 일본 총리가 있다. 하토야마 총리다. 훗날 서대문형무소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해 우리에겐 '일본의 양심' 소리를 듣지만 일본에선 '전후 최악의 총리'로 꼽힌다. 이전 자민당 정권은 오키나와 도심 한가운데 있는 후텐마 기지를 북동쪽 산호초 해안으로 옮기기로 미국과 약속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집권 후 이걸 뒤집었다. 산호초를 덮은 미군 기지를 "자연에 대한 모독"이라고 했다. 그 발언이 동맹에 대한 모독이었다. 그는 대체 후보지로 오키나와 최서단 낙도를 내세웠다. 활주로만 깔린 사실상 무인도였다. 일본 내에서조차 "미군은 사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미국은 속내를 바로 드러내지 않는다. 레토릭에 진심을 숨기는 경우가 있다. 이때 미 정부에서 이런 코멘트가 나왔다. "동맹의 의미는 특정 기지의 장소를 둘러싼 문제보다 크다."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기지 문제가 심각해도 동맹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특정 기지의 지엽적인 문제로 동맹을 흔들어선 안 된다는 경고로도 읽힐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일본 정부가 틀렸다. 미국의 진의를 읽은 하토야마 총리는 허겁지겁 이전 합의안으로 유턴했으나 금이 간 미·일 관계는 봉합되지 않았다.

하토야마는 미국과 대립하면서 중국에 다가갔다. 중국은 하토야마가 일으킨 미·일 불협화음을 교향곡처럼 들었을 것이다. 당시 일본에서 이 문제를 취재하면서 중국의 무서운 본성을 알았다. 친중(親中)이고 뭐고 없다. 미·일 관계가 악화된 틈을 비집고 들어가 센카쿠열도에서 일본 기득권을 흔들어버린 것이다. 민간 어선으로 일본 공권력에 도전한 다음 이를 외교 갈등으로 끌어올려 이곳을 분쟁 지역으로 만들었다. 미·일 사이에 틈이 생긴 순간 바로 치고 들어가 주도면밀하게 국익(國益)을 챙겼다. 그게 2010년이다. 7년 동안 중국의 본성이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미국의 본성은 무엇이었을까. 중국에 공격당한 일본은 황급히 동맹에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센카쿠 국유화로 2012년 중국에 또 한방 얻어맞았을 때조차 미국은 "주권 분쟁에서 누구 편도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일본에서 민주당 정권이 무너지고 자민당이 재집권했다. 그때부터 일본은 친미(親美) 일변도였다. 일본 방위상은 미 국방장관에게 비굴하게 굽실거린다. 미국 정권이 바뀌자 총리가 가장 먼저 달려가 돈주머니를 풀었다. 일본이 이럴 때마다 미국이 엄청난 선물처럼 집어주는 것이 "센카쿠는 미국의 보호 대상"이란 구두 약속이다. 미국의 이 약속 때문에 센카쿠가 현상 유지라도 하는 것이다. 뜨거운 맛을 보고서야 일본은 현실을 알았다.

얼마 전 지금 우리 성주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이 2010년 오키나와와 비슷하다는 기사가 본지에 실렸다. 오키나와 현장을 본 입장에서 공감한다. 그런데 그런 현상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그 현상을 바라보는 미국과 중국의 시선이다. 미국은 정말 한국의 사정을 이해할까. 우리가 그들의 발언을 우리 식대로 곡해하는 게 아닐까. 중국은 한국을 응원하고 있을까 아니면 한·미 관계의 틈새에 들어가 무언가 따먹으려 하고 있을까. 미국도, 중국도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모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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