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보면… 美·日동맹 뒤흔든 '후텐마 기지 사태' 떠오른다는데

    입력 : 2017.06.07 03:22 | 수정 : 2017.06.07 09:16

    [정권교체후 '美軍기지 이전 합의' 뒤집었던 일본, 국론 분열 겪어]

    - 주민 설득에만 10년 걸렸는데…
    민주당, 자민당 누르고 집권하자 "기지 이전 결정과정 검증하겠다"
    여론 나뉘고 美 반발… '원래대로'

    - 지자체장 바뀔 때마다 또 뒤집어
    매립공사 승인했다가 취소 '혼란', 산호초 파괴 등 환경논리에도 발목
    20년간 표류하다 올해 공사 재개

    "미국과의 동맹이 우리 외교의 토대임은 분명하지만, 일본의 정체성도 잊지 말아야 한다." 2009년 8월 총선에서 민주당 정권 시대를 연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당시 일본 총리는 취임 전부터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썼다.

    취임 이후에는 미국과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려 애썼지만,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 문제'가 양국 관계의 발목을 잡았다. 미·일 과거 정부가 10년 넘게 주민들을 설득해 간신히 기지 이전 합의를 이끌어냈는데, 하토야마가 선거에서 그 합의를 뒤엎겠다고 공약했고, 실제 이행에 나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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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5년 일본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 기지의 모습. 미군 헬기와 항공기가 매일 이착륙하는 비행장과 주거 지역이 바로 붙어 있다. 미 해군은 1945년 6월 오키나와를 점령한 직후 이 비행장을 만들어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그로 인해 일본은 극심한 국론 분열에 시달렸고, 미·일 관계도 최악이 됐다. 사드 이행 문제를 놓고 한·미 간에 논란이 일면서 이런 일본의 사례를 복기해봐야 한다는 지적이 한·일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후텐마, 왜 뜨거운 감자가 됐나

    후텐마 비행장은 민가 근처에 있어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1995년에는 미군이 현지 소녀를 성폭행한 사건까지 벌어져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미·일 양국은 이듬해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미국이 일본에 후텐마 기지를 반환하고, 대신 일본은 미국에 새로운 기지 터를 찾아주기로 합의했다. 일본 정부는 후텐마 기지에서 북쪽으로 52㎞ 떨어진 헤노코(野古) 해안을 점찍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오키나와 외부로 옮기라"고 반발했다.

    일본 정부가 그들을 설득해 활주로 건설 합의를 끌어내는 데 꼬박 10년이 걸렸다. 자민당 출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때였다. 3년간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2009년 착공한다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자민당 정권 자체가 무너졌다.

    정권 교체 후 오락가락한 일본 정부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갈등
    하토야마 총리는 총선 당시 "후텐마 비행장을 오키나와 밖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집권 후에는 오키나와에 가서 "(기지 이전 공사는) 자연에 대한 모독"이라며 미국과 한 합의를 뒤집었다. "기지 이전 결정 과정을 검증하겠다"고 나섰고, 일본 내 다른 지역 여러 곳을 새 후보지로 검토했다.

    하지만 이런 행보는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새로 거론되는 지역이 모두 반발하고 나서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오키나와 앞바다에 인공섬을 만들자'는 실현 불가능한 방안까지 나왔다.

    미·일 관계는 악화됐다. 일본이 뚜렷한 대안을 못 내자, 미국은 재협상 자체를 거부했다. 미국 내에서는 "주일 미군이 미국을 지키는 군대냐"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2010년 4월 핵안보정상회의 때는 정상회담 시간을 못 잡아 전체 만찬 때 10분짜리 초미니 비공식 회담을 가졌다. 그 10분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믿어달라고 하더니 아무것도 진전된 게 없지 않으냐"고 하토야마 총리를 압박했다. 결국 하토야마 정권은 출범 8개월 만인 2010년 5월 공약 이행을 포기하고 원안대로 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그 결과 하토야마 총리 지지율은 취임 초 75%에서 19%로 급락했다. 지지자도 반대자도 모두 등을 돌렸다. 정권 초기엔 일본 국민의 71%가 '기지 문제가 미·일 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했지만, 5개월 뒤인 2010년 2월엔 국민 68%가 '미·일 관계가 불안하다'고 했다(요미우리신문 조사). 하토야마 총리는 결국 이 문제로 출범 9개월 만에 사임했다.

    이후 민주당 정권이 2년 더 지속됐지만, 기지 이전은 진전되지 못했다. 중국이 센카쿠 열도에 군함을 보내 본격적인 '무력시위'에 나서자 일본 국민의 안보 불안만 깊어갔다.

    최고재판소 판결로 올 2월 공사 재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재집권한 뒤 변화의 실마리가 잡혔다. 나카이마 히로카즈 당시 오키나와 지사가 헤노코 연안 매립 공사를 승인한 것이다. 하지만 불과 1년 뒤, '공사 반대' 공약을 내건 오나가 다케시 지사가 당선됐고, 그는 2015년 3월 "산호초가 파괴된다"는 등의 환경 논리를 내세워 공사 승인을 취소했다.

    중앙정부는 이 조치가 위법이라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작년 12월 "정부의 명령이 합리적이고 적법하다면 지자체가 따라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일본 정부는 올해 2월 공사를 재개했다. 정권에 따라 정부 결정이 오락가락하고, 주민 반발까지 겹쳐 7년 이상 사업 전체가 표류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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