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北의 핵·미사일에 韓·美 무릎 꿇나?

조선일보
  • 김대중 고문
    입력 2017.06.06 03:12 | 수정 2017.06.06 03:47

    새 정부 들어 방한 미 의원들 "원하지 않으면 미국 떠난다"
    이념·지정학적 블록化 깨지고 美조차 各自圖生 길 선택하면
    북한을 머리에 인 대한민국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김대중 고문
    김대중 고문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국·미국·중국 간의 갈등은 현 추세대로라면 궁극적으로 주한 미군의 철수와 한·미 동맹의 와해로까지 발전할 소지가 크다. 결국 미국의 아시아 방어선은 일본 열도를 경계로 하는 '애치슨' 라인으로 후퇴하고 한반도는 중국 대륙권에 편입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세계의 비난과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과 미사일에 올인한 북한의 전략과 중국의 이중 플레이 앞에 한·미가 무릎 꿇는 꼴이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나 '동맹 비용 청구' 명목을 내세워 미국과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나토에 방위비 분담을 요구하는 한편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는 등 기존 동맹·우호·협조의 틀을 깨고 있다. 미국 언론은 그가 '역사를 모독하고 있다'고 했고 민주당은 그가 미국을 '세계의 조롱거리'로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미국에 의존하는 시대는 끝났다"며 "유럽인의 운명은 우리 손으로 개척해야 한다"고 선언하는 데 이르렀다.

    트럼프가 유럽과 틀어지는 그 순간 당선된 지 20일도 안 되는 한국의 문재인 정부는 사드 발사대 6기 중 4기 반입이 보고에서 누락됐다며 '충격'을 드러냈다. 이어 절차적 정당성을 내세워 '조사'를 명령하는 등 시간 끌기 작전에 돌입했다. 대선 기간 사드 문제에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였던 문 대통령은 트럼프의 대(對)나토 '헛발질'을 기회로 사드 배치 반대 기운을 노골화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좌파 세력은 트럼프의 재임 중 주한 미군 철수, 한·미 동맹 파기, 미·북 관계 정상화, 남북한 교류를 몰아붙이려는 기세다. 이들은 메르켈을 본떠 '한국이 미국에 의존하는 시대는 끝났다. 아시아(특히 동북아시아)의 운명은 우리 손으로'를 외치고 싶은 것이다.

    중국은 한국이 미국과 균열 조짐을 보이자 재빨리 한국과 미국이 사드 배치를 중단하고 취소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뒷북을 쳐댔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해설 기사에서 "중국은 문재인씨가 한국 대통령으로 있을 때 특히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있을 때 한·미 관계에 쐐기를 박아두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한·미 관계의 운명은 트럼프에 못지않게 미국의 여론과 정치권에 달려 있다. 미국의 정치권과 국방 전략가들은 한국, 구체적으로는 문재인 정부의 대미 관계 의지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한국은 과연 우리를 필요로 하고 있나?' '방어용인 사드 하나 지켜내지 못하는 나라를 지킬 가치가 있나?' '미국 영토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노출되면서까지 미군을 남겨 둘 이유가 무엇인가?'

    지난 31일자 뉴욕타임스 국제판 1면에 특별 기고문(제목 North Korea and the new unthinkable)이 실렸다. 문제는 이 신문이 기고문을 1면에 실었다는 점이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벨퍼국제연구소 소장 그레이엄 앨리슨은 이 기고문에서 북한이 샌프란시스코 또는 LA를 공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전제로 트럼프가 북한과 '양보 대(對) 양보' 협상을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는 1962년 미국의 쿠바 미사일 위기를 상기시키고 시진핑이 지난 4월 마러라고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ICBM 발사를 중단하는 대가로 미국의 한국 내 군사적 활동(아마도 사드 등)을 동결할 것을 제의했다면서 미국과 중국의 협력을 촉구했다. "만일 중국이 김정은 정권을 제거하고 비핵화를 달성하는 책임을 떠안는다면 미국도 미군 기지를 철수하고 한·미 군사 동맹을 파기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한 것이다. 사실이라면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연상시키는 '마러라고 밀약'이다.

    문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을 방문했던 미국의 여야 의원들은 표현은 다르지만 '한국이 원하지 않으면 미국은 떠난다'고 시사했다. 이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한국을 지켜 아시아의 교두보로 삼는 지정학적 가치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는다는 미국 조야의 관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미국을 비롯해 세계가 2차 세계대전 후 유지해왔던 이념적·지정학적·자원적 블록화(化)를 깨고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음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니면 기존 블록을 깨고 새로운 블록화로 새로운 친구 맺기를 시작하는 중국식(式) 질서의 태동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질서'는 북한이라는 불량 국가를 머리에 이고 있는 대한민국에는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핵과 미사일 전략이 성공했다고 믿는 북한은 기고만장할 것이다. 미국이 철수하면 북한은 한국을 통째로 집어삼키려 할 것이다. 한국의 경제는 중국에 귀속될 것이다. 미군이라는 '인질'이 없는 상황에서는 미국은 어떤 북한의 도발도 과감히 무력 응징할 것이다. 한국의 금융시장은 혼란스럽거나 붕괴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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