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학계 "文정부 일방적 脫원전은 제왕적 조치"

입력 2017.06.02 03:11

[노후 화력발전8기 셧다운한 날, 23개大 에너지전공 교수 230명 성명]

- "원전기술 공든 탑 무너져"
"정부, 전문가 배제하고 속전속결… 원자력 발전의 모델인 한국, 스스로 수출 길 닫자는 건가"

- "이대로면 전기료 30~40% 올라"
석탄화력·원전이 전력 70% 공급… LNG·신재생에너지로 감당 안돼
"유사시 전력안보 위협 가능성도"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경제2분과 이개호 위원장이 1일 오전 미래창조과학부 업무 보고에 앞선 모두 발언에서 "원전 제로화 공약은 반드시 실천한다"고 새정부의 탈(脫)원전 방침을 재확인한 가운데, 원자력학계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전공 대학교수 230명이 성명을 내고 "전문가가 배제된 채 추진되는 일방통행식 탈원전 정책에 반대한다"고 밝혀 파장이 예상된다. 대학교수들이 정권 초기에 정부 핵심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교수들이 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고“원전산업의 궤도 수정은 무엇보다 국민 공론화와 관련 전문가의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교수들이 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고“원전산업의 궤도 수정은 무엇보다 국민 공론화와 관련 전문가의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줄 왼쪽부터 김명현(경희대)·성풍현(KAIST)·주한규(서울대) 교수. /이진한 기자
대학교수들이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은 원전 중단에 대한 대안도 없이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날은 30년 이상 된 노후 석탄화력발전기 8기가 새벽 0시부터 한 달 동안 가동을 멈추면서 경제성보다 환경에 무게를 둔 문 대통령의 에너지 정책이 구현되는 첫 신호탄을 쏜 날이기도 하다.

"전문가 배제된 제왕적 조치"

서울대·KAIST·부산대 등 전국 23개 대학 에너지 전공 교수 230명은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성명을 통해 "소수 비전문가가 속전속결식으로 진행하는 제왕적 조치는 원자력계 모두의 사기와 공든 탑을 허물고 나아가 국가 안전을 해칠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새 정부의 정책 수립에 원전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참여하지 않았다"면서 "이번 성명은 원전에 편견을 가진 정책 추진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성명서를 낭독한 성풍현 KAIST (한국과학기술원)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유럽은 전력망이 다 연결돼 있어 독일이 원전을 닫더라도 프랑스 원전이 생산한 전기를 구매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전력망이 고립돼 있어 유사시 전력 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우리나라는 전력 생산용 대형 원전과 연구용 원전, 차세대 소형 원전을 모두 수출한 유일한 나라"라며 "다른 나라에는 우리가 원자력발전의 모델인데 우리 스스로 수출 길을 닫자는 셈"이라고 말했다.

1일 울산 울주군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전경
1일 울산 울주군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전경. 오른쪽이 신고리 원전 3호기, 그 옆이 4호기다. 뒤쪽으로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현재 공정률 28%인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김종호 기자
주한규 교수는 "탈원전이 전 세계 조류라고 하나 독일·스위스·벨기에·타이완 4개국뿐"이라며 "미국과 유럽, 중국 등 대다수 원전 이용 국가는 원전 건설과 운영을 계속하고 있고 과거 탈원전을 추진하던 영국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원전 건설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원전 발전 주는 만큼 LNG와 재생 에너지로 충당할 수 있나 논란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전력 공급의 70%는 석탄 화력발전과 원전이 맡고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 공약에 따라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중단하고 신규 원전과 석탄화력 건설을 전면 중단한다면 오는 2030년 원전과 석탄을 합친 전력 공급 비율은 43%로 떨어지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비중이 37%로 높아진다. 신재생 에너지 비중도 현재 4.7%에서 20%로 올라간다.

하지만 에너지 전문가들은 전체 전기 설비 용량이 대폭 줄어들어 전력 수급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크다고 지적한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원전 설비용량은 20.7GW(기가와트), 석탄화력발전은 6.8GW(기가와트)가 줄어들지만 현실적으로 이만큼의 설비용량을 LNG 발전과 신재생 에너지로 보완하기 힘들다는 것. 한 전문가는 "석탄화력과 원전 건설을 중단할 경우 2029년까지 국내에 확보하기로 한 전체 발전설비용량의 20% 이상이 줄어든다"면서 "부지 확보 등 여러 문제로 신재생 에너지와 LNG 발전소를 늘리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원전 발전 비중을 줄일 경우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점도 짚고 넘어갈 문제다. 작년말 기준 시간당 발전 단가는 원전(68원)이 가장 싸고 이어 석탄화력(74원), LNG(101원)·신재생 에너지(157원) 순서다. 교수들은 정부 정책대로 하면 전기요금이 30~40%는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문 대통령 선거대책위원회에서 환경에너지팀장을 맡았던 김좌관 부산가톨릭대 교수도 "2030년까지 에너지 분야 공약이 계획대로 이행될 경우 전기요금이 지금보다 25% 안팎 인상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현재 5만5080원인 4인 가구 월 전기요금(350㎾h 사용 기준)이 1만3770원 정도 오르는 셈이다. 김 교수는 다만 "원전이나 석탄발전에 따른 각종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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