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의 개인이 모여 한 사회를 이루잖아요. 만화도 그렇죠.”
만화가 선우훈(28)씨는 일종의 점(點)쟁이다. 점을 찍어서 만화를 그린다. 작은 픽셀(pixel)이 모자이크처럼 모여 완성하는 '보글보글' 같은 오락실 게임을 떠올리면 쉽다. "부모님이 전북 정읍에서 문방구를 하셨는데 게임기도 몇 대 있었어요. 킹오브파이터즈·메탈슬러그…. 2D 게임이 펼쳐놓는 픽셀의 아름다움에 눈뜬 거죠." 2014년부터 꾸준히 점을 찍어대던 그는 지난 30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기획전 세 명의 한국 초청작가 중 최연소로 낙점됐다. 영화감독 박찬욱·박찬경 형제, 설치미술가 이불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메르스·세월호·탄핵 등 근래에 한국 사회를 휩쓴 열병을 하나의 긴 웹툰 화면으로 재현해, 전시장에 비치된 마우스로 스크롤을 내리며 청와대와 광화문과 한강과 각종 집회의 풍속화를 볼 수 있도록 했다. 3개월에 걸쳐 포토샵으로 가로 1080개, 세로 1만8000개의 점을 찍었다. "가장 한국적인 현상을 가장 한국적인 매체인 웹툰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스마트폰과 미술관이라는 두 점을 이어보고도 싶었고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웹툰이 세상에 나왔다. "웹툰이 비주류에서 주류가 돼 가는 걸 나날이 지켜보며 자란 세대죠."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서울대 조소과에 입학했고, 대학신문에서 삽화기자로 활동하다 끝내 만화가가 되기로 한다. 좀비에게 고립된 군부대를 점묘법으로 그려낸 데뷔작 웹툰 '데미지 오버 타임'(DOT·'점')으로 2015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주목할 작가상'을 받았다. "만화가 오락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오히려 예술에 가깝죠."
2015년 만화비평 사이트 '크리틱M' 신인 공모전을 통해 만화 평론가로도 데뷔해, 지난해부터 웹툰 비평 매체 '유어마나' 편집장을 맡고 있다. '라이브 드로잉쇼'로 유명한 만화가 김정기(42)씨를 '차력사'에 비유하는 등 독설로 세간을 시끄럽게 하기도 했다. 그는 "요새 웹툰엔 맥락이 없고 그림만 남았다"며 "영화도 드라마도 아닌 예능으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1000만 관객 영화처럼 어느새 웹툰에도 인기 공식이 생기면서 조회 수에만 집착하고 있죠. 초창기 철저한 복선과 완결성은 사라지고 말초적인 개별의 '컷'만 남은 것 같아요."
그의 꿈은 만화의 미술화. 수제 과자 전시회 ‘과자전(展)’을 개최하는 디자인회사 워크스와 의기투합해 지난달 만화가 10명과 과자를 주제로 한 가로 8㎝, 세로 8㎝ 크기의 올 컬러 만화책을 냈다. 인터넷 선주문으로만 700만원어치를 팔았다. “소유욕을 자극하는 만화를 그려야 해요. 그래야 더 상업적이고 더 예술적인 시도가 가능하죠. 거기에 점 하나를 찍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