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서울로'에서 만난 함박꽃나무

    입력 : 2017.06.01 03:12

    '공중 수목원' 삭막하고 좁아… 식물도 땡볕에 시들어가 실망
    물푸레나무 등 반가운 나무 많고 형제 식물 나란히 보는 재미도
    기본 틀은 매력적… 화분 치우고 자체 생태계 이루도록 유도하길

    김민철 사회정책부장
    김민철 사회정책부장
    40대 여성들이 이름표를 가린 치렁치렁한 아이비 덩굴을 조심스럽게 들추었다. 작은 잎들이 깃털 모양으로 나란히 달린 특이한 나무 이름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러더니 "쉬땅나무네"라며 박장대소했다. 곧 나올 꽃망울이 진주알처럼 예쁜 나무다.

    서울역 나선형 계단으로 '서울로7017'에 올랐을 때 첫 느낌은 실망이었다. 폭 10.3m, 길이 1024m 콘크리트 위에 228종의 꽃과 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그런데 나무들은 작고 추레해서 '애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듣던 대로 원형 화분이 공간을 차지하고 사람은 많아 비좁았다. 무엇보다 방금 옮겨 심은 듯한 나무와 꽃들이 땡볕에 시들어가고 있었다. 정원 같은 싱그러움이 전혀 없었다. 깊은 산 등 다양한 생태에 적응한 식물들을 도심 한가운데 획일적인 환경에 옮겨 놓으니 생기가 있을 리 없었다. 얼마나 버틸까 걱정인 식물이 한둘이 아니었다. 콘크리트 화분을 가리키며 "나무를 이런 데다 심어놓고…, 너무 불쌍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식물 학대 아니냐'는 말이 괜히 나온 것 같지 않다.

    네덜란드 출신의 설계자 비니 마스는 서울로를 '공중 수목원' 개념으로 설계했다. 회현동 쪽 가짓과에서 만리동 쪽 회양목과까지 식물들을 과(科) 이름 가나다순으로 배열하고 이름표를 달았다. 그러나 꽃 피는 시기나 생태를 감안하지 않고 가나다순으로 배열한 것은 행정적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그나마 학명 알파벳 순서로 배열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생각했다.

    그런데 좀 돌아다녀 보니 뜻밖의 즐거움이 있었다. 목련광장 근처에서 깊은 산에서나 볼 수 있는 함박꽃나무를 만났다. 몇 년 전 설악산 등선대 코스에서 만나 그윽한 꽃향기에 반한 나무였다. 자연 상태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서울 시내에서 그것도 17m 고가 위에서 함박꽃나무를 볼 수 있다니…. 갑자기 서울로가 긍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팥색 꽃이 인상적인 팥꽃나무도 남쪽이나 서해안에 가야 볼 수 있는 나무이고, 수피가 미끈한 노각나무도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니다. 산에서 볼 수 있는 물푸레나무 무리는 건강해서, 특징인 수피의 흰무늬가 선명했다.

    [김민철의 꽃이야기] '서울로'에서 만난 함박꽃나무
    /이철원 기자
    식물을 책으로 아는 것과 현장에서 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책에서 보면 두 식물 차이를 알 것 같은데 막상 현장에 나가보면 헷갈릴 때가 허다하다. 그런데 서울로를 걷다 보니 한 곳에서 비슷한 식물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었다. 식물을 과별로 형제끼리 배열한 데서 오는 효과였다. 이를테면 억새와 갈대를 나란히 심어놓았다. 억새는 주로 산에, 갈대는 물가에 많아 같이 있는 것을 보기 힘들다.

    압권은 참나무 무리를 모두 모아놓은 코너였다. 상수리, 굴참, 졸참, 갈참, 신갈, 떡갈나무 등 참나무 6형제에다 가로수인 대왕참나무까지 심어놓아 한곳에서 잎 모양 등 차이를 살필 수 있게 했다. 대표적인 들국화인 쑥부쟁이·구절초·벌개미취도 구분이 쉽지 않은데, 나란히 심어놓으니 잎부터 차이가 확연했다. 목련과 백목련, 자목련도 나란히 심어 놓았다. 우리가 흔히 보는 것은 중국 원산인 백목련이고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그냥 목련은 오히려 드물다. 앞으로 서울로를 자주 찾아 눈여겨보는 시민들은 둘의 차이를 금방 알 수 있을 것 같다. 메타세쿼이아와 낙우송도 나란히 있으니 각각 마주나기와 어긋나기인 잎 차이가 선명했다. 이 밖에도 연꽃과 수련, 모란과 작약, 음나무와 두릅나무, 쪽동백나무와 때죽나무도 나란히 있었다. 몇 년 지나면 서울시민의 식물 친화력이 확 올라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옥에 티도 적지 않았다. 큰금계국을 금계국이라 써놓은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불두화를 백당나무, 굴참나무를 떡갈나무라고 써놓은 것은 좀 심했다. 갈매나뭇과 코너에 대추나무만 심어놓았는데, 갈매나무도 심고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 나오는 나무라고 알리는 센스를 발휘하면 좋겠다. 식물 선정도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이게 왜 있나 싶은 게 적지 않고, 반대로 제비꽃 코너에 서울 시내에 흔한 서울제비꽃이 없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우선 식물끼리 단절시키고 공간만 차지하는 원형 화분 대신 화단 형태로 설계를 바꾸면 통로도 넓어지고 식물들끼리 생태계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은 실망스럽지만 서울로의 기본 윤곽은 매력적이었다. 잘 가꾸면 한자리에서 다양한 꽃과 나무를, 그것도 계절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시민에게 살아있는 식물도감을 제공하는 것이다. 필자도 서울로가 자연 상태에 가까워지기를 기대하면서 자주 찾아볼 생각이다.

    ▲ 쉬땅나무

    ▲ 함박꽃나무

    ▲ 팥꽃나무
    ▲ 노각나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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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갈대와 억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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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연꽃과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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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불두화와 백당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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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목련과 백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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