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오향리(里) 개 화장터 죽기로 반대한다!'

지난 24일 경기 광주시 곤지암사거리 주변엔 '개 화장터 설치에 반대한다'는 대형 현수막 10여 개가 붙어 있었다. 지난해 한 외지인이 마을 땅을 매입해 '애완동물 테마파크'를 짓겠다고 했는데, 여기에 동물 장례(葬禮) 시설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업체 측은 "소각(燒却)하는 것이 아니라 사체를 건조시키는 방식이기 때문에 악취나 유해 물질이 나오지 않는다"며 주민을 설득 중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지난 3월 말 광주시에 탄원서를 내고 "장묘업 등록을 내주지 마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주민 조모씨는 "개 장례 시설이 들어서면 땅값 떨어지는 게 뻔하지 않으냐"고 말했다.

'동물 장례 시설'을 둘러싼 갈등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1000만명을 넘어서며 동물 사체 처리 시설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주민들이 "유해 시설"이라며 설치에 반대하고 있다. 사업 인허가권을 가진 기초자치단체들도 주민 여론에 떠밀려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서, 업체와 소송까지 벌어지고 있다.

경기 포천시는 지난 3월 10일 한 업체가 신청한 132㎡ 규모 동물 화장 시설에 대해 '국도로부터 300m 안에는 동물 화장장을 설치할 수 없다'는 내부 지침을 만들어 인가를 내주지 않았다. 건축법상 문제가 없으나, 주민 반대가 워낙 심해 내부 지침까지 만든 것이다. 업체는 포천시의 결정이 부당하다며 경기도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작년 1월 파주시에선 동물 장례업체가 허가를 받지 못하자 시를 대상으로 행정심판을 제기해 승소했다. 그러자 파주시는 건축물에 문제가 있다며 다시 불허했다. 업체는 두 번째 행정심판을 제기했다가 기각되자, 행정소송을 걸어 최근 승소했다. 시가 다시 항소하면서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경기 양주시는 이미 내줬던 허가를 주민 반대로 취소했다가 행정심판에서 패소해 올해 1월 재허가를 내주는 일도 벌어졌다.

이렇다 보니 행정기관의 정식 허가를 받지 않은 무허가 동물 장례 시설도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정식 허가받은 동물 장례 시설은 19곳이지만, 무허가 시설도 17곳에 이른다. 무허가 업체들은 단속에 걸려도 벌금을 내면서 운영을 강행하고 있다. 한 동물 장례 업체 관계자는 "무허가 업체의 경우 오염물질 배출 기준을 제대로 지키는지 알 수 없어, 환경오염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동물 장례 시설 부족으로 사체를 불법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해마다 죽는 개·고양이 등 애완동물은 15만마리 정도로 추산된다. 그 가운데 장례 시설에서 처리되는 경우는 2만마리 정도밖에 안 된다.

지난 3월 12년째 키우던 애완견 '몰티즈'가 죽은 정모(29)씨는 "집 근처에 애견 화장터가 없어 불법인 걸 알면서도 인근 산에 묻어주고 왔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동물 사체를 개인이 소각하거나 땅에 묻는 건 불법이다. 장례 시설을 이용하지 않을 경우 주인은 동물 사체를 쓰레기 봉투에 담아서 버려야 한다. 민법상 반려동물은 '물건'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동물병원에 위탁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각종 폐기물과 함께 소각된다. 정씨는 "오래 키운 강아지를 쓰레기처럼 버릴 수는 없지 않으냐"고 했다.

제주도에 사는 이모(52)씨는 키우던 강아지가 죽자, 사체를 처리할 곳이 없어 부패를 막기 위해 냉장고 냉동실에 한동안 넣어뒀다. 이씨는 "사흘 동안 동물 장례 시설을 찾았지만 결국 못 찾고 야산에 묻었다"고 말했다. 현재 제주에는 동물 장례 시설이 없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은 "아직은 동물 장례 시설을 '공익 시설'로 볼 정도의 사회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아 갈등이 생기는 것"이라며 "당분간 애완동물과 관련된 사회적 갈등이 더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