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하고 미비하니까 재보고 챙겨야 하는 정보가 있다. 스마트폰 화면 위의 표지(標識)는 배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측정해서 보여준다. 옆에서는 전파 세기도 측정되고 있다. 불안도 안심도 측정되니까 생기는 감정이다. 배터리가 바닥나고 네트워크가 버벅대면 나만 손해다.
불완전하고 미비하기로 치자면 우리 몸만 한 것이 없다. 우리 몸은 한계상황에 달했어도 좀처럼 하소연하지 않는다. 건강검진을 권하는 이유는 당뇨나 고혈압 등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사회 전체에 부담을 안기는 질병이 자각 증상을 수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디 1~2년에 한 번만이라도 측정해서 경고창을 띄워 주자는 것이다. 스마트폰조차 알아서 배터리 부족 경고를 내보내고 절약 모드로 들어가는 마당이니, 인간의 연약한 하드웨어에도 이제는 그런 얼개가 필요하지 싶다.
이런 고민은 자기 계량(Quantified Self)이라는 트렌드를 만들어 냈다. 스마트폰을 만보계 삼아 하루 얼마나 걸었는지 앱에 기록하는 일이 대표적이다. 더 나아가 애플 워치나 삼성 기어로 측정 가능한 심박수나, 핏비트·자브라·가민 등 본격적 웨어러블 기기로 측정 가능한 최대산소섭취량(VO2 Max) 등은 운동 좀 한다는 스포츠 애호가들이라면 챙기고 싶은 개인 정보가 되었다. 내 몸을 극한까지 활용하려면 나를 알아야 한다. 측정할 수 있어야 개선할 수 있다는 자기 계발 원칙에 충실한 유행이다.
그런데 애호가 인구만으로는 스마트폰 이후를 끌고 갈 웨어러블 시장은 열릴 수 없다. 배터리 잔량처럼 삶과 죽음의 생체 리듬을 다루는 의료·헬스케어. IT가 나아가고 싶은 영역이다.
애플 CEO 팀 쿡은 이미 혈당측정 스트랩이 달린 애플 워치를 차고 일하고 있다는 풍문이 돈다. 그 덕에 식생활 등 일과가 어떻게 혈당치에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고 명예박사 수여 기념 강연에서 직접 자랑하기도 했다. 애플의 혈당 측정 장비는 상처를 내지 않고 빛을 피부에 비쳐 혈액 내의 포도당 수치를 측정하는 비침습(非侵襲)식이라 한다. 작년에 화제가 된 심전도를 측정하는 스트랩과 비슷한 모양인가 보다. 이 연구 영역은 고(故) 스티브 잡스의 유지(遺志)이기도 했는데, 경쟁자는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이다. 콘택트렌즈형 혈당 측정기를 뽐내기도 했던 알파벳의 자회사 베릴리(Verily)는 헬스케어용 스마트워치를 양산하기도 했다. 애플은 내친김에 수면의 질을 측정하는 핀란드의 하드웨어 및 앱 개발 업체를 이달 초 인수했다. 건강을 둘러싼 모든 정보에 모두 배가 고프다.
이미 2014년부터 구글 피트나 애플 헬스키트 등 IT 플랫폼이 마련되었고 내 정보가 측정되어 흐르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나 IT로 내 몸의 신호를 지켜볼 수 있다면 경고도 없이 배터리가 툭 끊기듯 이 세상을 갑작스레 뜨는 허망한 일은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피트니스 수준을 넘어 의료에 발을 디딘다면, 그곳은 대표적인 규제 산업이다. 의료 데이터의 수집·관리는 물론, 그 정보를 통한 예방·진단을 어디까지 기업에 맡길지에 대한 문제에 각 사회는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다. 애플의 혈당 체크 기능이 시계 몸통이 아닌 스트랩에 달릴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도 FDA 등 규제로부터 제품 본체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설도 있다. 지금은 풀렸지만, 갤럭시의 산소포화도 측정 기능도 국내 출시 당시 비활성화된 채 출시되며 의료법의 눈치를 봤다.
특히 국내의 경우 이 분야는 의료법 및 개인정보보호법 등 관련 규제와 뒤엉켜 10년 넘게 표류 중이다. 아무리 혹하는 신제품이라도 의료와 관련되는 순간 대부분 불법이 될 판이니, 당분간 내 몸은 배터리 잔량 표시 없는 채로 더 써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