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청 40주년 만에 한국을 '지식재산 5대 强國'으로

    입력 : 2017.05.30 03:05

    특허청

    특허청이 올해로 개청(開廳) 40주년을 맞았다. 1977년 개청 당시 2만5000여건에 그쳤던 산업재산권 출원이 지난해 46만여 건으로 늘어 세계 4위, 국제특허출원(PCT)은 세계 5위(2015년 기준)로 지식재산 역량이 급성장했다. 지식재산 강국 반열에 오르기까지 그 중심에 특허청이 있었다.

    우리나라 특허제도는 1882년 실학자 지석영 선생이 고종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발자취를 찾을 수 있다. 지석영 선생은 산업 발전을 위해 특허권과 저작권 제도 도입을 주장했지만 제대로 시행되지는 못했다. 1910년 경술국치 후에 일본 특허제도가, 1945년 해방 후 미군정 시절엔 특허원이 창설돼 미국 특허제도가 도입됐다. 1948년 정부조직법이 제정돼 특허원의 특허행정은 상공부 특허국으로, 저작권업무는 공보처로 이관됐다. 이후 1950~60년대를 거치면서 특허행정의 기틀을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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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대 특허청 차장(왼쪽에서 세번째)이 지난 4월 독일 뮌헨 유럽특허청 본부에서 열린 ‘세계 5대 특허청(IP5) 차장회의’에 참석해 상호 협력 비전 등을 논의했다./특허청 제공
    1977년 특허청 개청 '지식재산 5대 강국' 견인

    1970년대에 특허출원과 심판청구가 급증하면서 산업재산권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이에 특허행정을 보다 전문화시키기 위해 1977년 3월 상공부 외국이던 특허국을 특허청으로 확대·승격시켰다. 이후 1979년 세계지식재산기구 설립협약, 1980년 파리협약, 2003년 상표법 조약, 2003년 마드리드 의정서 등 국제조약에 연이어 가입하며 특허행정의 세계화가 본격화됐다. 특허청은 1998년 서울에서 정부대전청사로 입주하면서 제2의 부흥을 맞았다. 1999년 세계 최초로 인터넷 기반 전자출원시스템인 '특허넷'을 개통했다. 전국 어디에서나 온라인으로 출원과 등록, 열람서비스가 가능해져 선진 특허행정으로 도약했다.

    한국은 이제 미국, 유럽, 일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지식재산 5대 강국이 됐다. 산업재산권 출원규모는 2016년 46만여 건으로 1977년 개청 당시보다 18배 증가했다. 산업재산권 출원규모는 중국, 미국, 일본에 이어 4위다. 미국 내 특허출원도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인구 100만명당 특허출원 건수는 세계 1위이다. 특허심사처리 기간도 1990년대 39개월이 걸리던 것이 평균 10개월 수준으로 단축돼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우리의 특허넷 시스템은 UAE, 아프리카 등 해외에 수출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미·일·유럽이 주도하던 국제 지식재산권 체제가 한·중이 포함된 5자간 체제로 전환되면서 한국이 명실상부한 지식재산강국으로 도약했다.

    우수한 인력 발판… 선진 특허행정 수출도

    특허청 예산은 개청 당시 5억원에 그쳤던 것이 올해 550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인력은 개청 당시 277명에서 현재 1600여명으로 5배 가까이 늘었다. 직원 중 72%가 5급 이상이다. 박사학위 소지자가 전체의 26%(435명)로 중앙행정기관 중 학력수준이 가장 높다. 특허청 특허심사관이 아랍에미리트(UAE)에 파견돼 현지에서 특허심사를 담당하며 '행정한류'도 이끌고 있다.

    이영대 특허청 차장은 "도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 기업 등의 지식재산권을 적극 보호하고 지식재산강국 위상을 강화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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