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바둑 팬들의 마음을 아릿하게 만들었던 1인자의 눈물은 이제 말라 있었다. '젊은 황제'는 무엇이 그토록 서러웠을까. 오는 8월 만 20세 생일을 앞둔 커제(柯潔)가 제22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출전차 28일 대회장인 경기도 가평 마이다스리조트에 도착했다. 전날 '바둑의 미래 서밋' 최종국서 인공지능 알파고에 3전 전패(全敗)를 기록하고 눈물을 흘린 그는 피로한 모습이었지만 흔쾌히 본지 인터뷰에 응했다.

커제(중국) 9단이 27일‘바둑의 미래 서밋’(중국 저장성 우전시 국제컨벤션센터) 알파고와의 최종 3국 대국 중 사실상 패배가 확정되자 눈물을 흘리는 모습. 209수 만에 불계로 패한 커제는“알파고와의 대국은 극심한 고통이었다”고 했다.

―바둑 대국에서 패한 아쉬움으로 울음을 터뜨리는 건 흔치 않은 광경이다.

"개인적으로도, 인류 전체로도 마지막 대국이라는 생각에 정말 혼신의 각오로 나섰다. 그런데도 좋은 모습을 못 보여주고 완봉패를 당했다는 생각에 너무 괴로워 눈물이 쏟아졌다."

―알파고전에 대비해 얼마큼 준비 했나.

"올해 초 알파고가 세계 고수들을 상대로 60연승을 했던 기보를 닳도록 연구했다. 그 무렵에 이미 알파고는 완벽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삼삼(3三), 패(覇) 등 특수 상황에 대한 공략법을 세워 반복 연습했는데 효과를 보지 못했다."

―27일 알파고의 '은퇴'가 발표됐다. 지난해 이세돌전을 포함해 알파고의 프로 상대 총전적은 68승 1패가 됐다. 이세돌이 기록한 1승(4패)은 인간의 유일한 승점이 됐다. 1승의 가치를 어떻게 보나.

"굉장한 의미를 지닌 승리였다. 내가 상대한 버전에 비해 승률이 50% 정도 낮은 버전이라곤 하지만, 그런 조건을 따지기 앞서 그 1승은 천금의 1승에 해당했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 초능력 고수와 마주 앉아 몇 시간씩 대국한다는 것은 안 해 본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엄청난 고통이다. 그걸 해낸 이세돌은 대단한 기사다."

―은퇴하는 알파고가 한 가지 능력을 물려주겠다고 한다면 어떤 것을 택하겠나.

"알파고는 부분별로 고르게 뛰어난 '완전체'에 가깝다. 모든 부분을 배우고 싶다. 가끔 (인간 눈에) 논리가 없어 보이는 수도 나오는데, 나중에 검토하면 반드시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때마다 두려웠다."

조추첨… 이젠 안울어? - 28일 경기 가평에서 열린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조 추첨식에서 추첨번호 16번을 뽑아든 커제 9단.

[알파고, 바둑판 평정 후… 의료·과학계 넘본다]

―알파고가 인간에게 좌절감만 안겨주고 사라져 간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선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도 그 신비함을 전해준 공로가 매우 크다. 그리고 인간들이 깨닫지 못했던 학습 과제를 제시해줬다. 딥마인드사가 알파고의 기보 등 축적된 자료를 단계적으로 공개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바둑의 지평을 넓혀주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앞으로 인간이 바둑에서 인공지능을 따라잡는 일이 가능할까.

"내 생각엔 비관적이다.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격차가 오히려 갈수록 벌어질 것 같다. 마주 앉아 실전을 겨뤄본 경험자 입장에서 내가 받은 충격이 워낙 크다. 인간들도 노력을 하겠지만 어려울 것이다."

―29일부터 이곳에서 시작되는 제22회 LG배 목표는?

"아직 우승 경험이 없는 대회여서 더욱 집중하려고 한다. 추첨 결과 한국 원성진 9단을 만났는데, 전력투구할 생각이다. 바둑은 즐거운 게임이다. 기계보다는 인간과 둘 때가 훨씬 더 즐겁다."

―어제 최종전 패배 후 커제 9단이 우는 모습을 봤던 많은 팬들이 안부를 궁금해했다.

"오후 6시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해 새벽 3시까지 무려 9시간 동안 계속 마셨다. 평소 술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구리(古力) 등 선배 기사들과 알파고 직원 등 여럿이 어울렸다. 그리고 새벽 6시에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일어났다. 이틀 연속 2시간밖에 못 잤다."

―알파고가 꿈에 나타난 적이 있는가.

"여러 번 나타났다(웃음). 꿈에서도 많이 졌지만, 꿈속에선 이긴 적도 있었는데…. 현실은 전패로 마감해 속 상하다. 앞으로도 알파고 꿈을 자주 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