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미술 강국 만든 건 '격의 없는' 강의실"

    입력 : 2017.05.23 03:02

    [서울 에르메스 건물에 新作 선보인 스타 설치미술가 양혜규 인터뷰]

    "獨, 베네치아 비엔날레 휩쓴 건 교수·학생 위계 없는 자유로움"

    퐁피두센터부터 라파예트까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작가
    최근 名門 슈테델슐레 교수 돼 "내 영감의 원천은 천장 보기"

    "독일이 현대미술 강국이 된 비결요? 그건 미대 강의실 풍경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베를린을 중심으로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설치미술가 양혜규(46)와의 인터뷰는 최근 개막한 베네치아 비엔날레 이야기로 시작됐다. 독일 작가 안네 임호프와 프란츠 에르하르트 발터가 단 2개뿐인 황금사자상을 모두 가져간 탓이다. "누가 교수고 누가 학생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죠. 발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강의 듣는 사람, 담배 피우는 사람…. 그곳에 권위나 위계는 없어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작가들이자, 서로에게 가장 무서운 비평가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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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도산대로 메종 에르메스 건물 3층에 설치한‘솔 르윗 뒤집기’와 작가 양혜규. 미니멀리즘의 거장 솔 르윗 원작을 금색·은색·흰색 세 덩어리의 알루미늄 큐브(정육면체)로 확대해 거꾸로 매달았다. /이태경 기자
    양혜규 자신도 그 '콩가루' 강의실에 교수로 막 합류한 터였다.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명문(名門) 슈테델슐레 순수미술학부에 이달 초 정교수로 임용됐다.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날아간 독일에서 그를 세계적 작가로 거듭나게 연마해준 모교이기도 하다. "올해 황금사자상 받은 안네 임호프도 이 학교에 다녔죠. 학교 같지 않고 할리우드 같다고 할까요? 학교 다니면서 베네치아, 뮌스터 비엔날레에 출품하고, 시장에도 내다 팔고요. 교수 입장에서도 학생들 가르치면서 자기 작업도 마음껏 병행할 수 있는 전 세계 몇 안 되는 대학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양혜규는 개인의 기억과 경험을 옷걸이·선풍기·블라인드 같은 일상의 사물을 활용한 조형물에 녹여 전통과 문명, 세계화를 은유하고 풍자하는 작가다.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홍콩 등 현재 동시다발로 진행되고 있는 전시만 해도 10여 개. 연예인만큼 바쁜 그가 서울에 온 건, 최근 리노베이션 작업을 마친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 매장에 자신의 '솔 르윗 뒤집기' 신작(新作)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 거장인 솔 르윗의 큐브 연작을 따라 하면서도 뒤집은 작업이에요.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이 있을까?' '전통과 혁신의 차이는 뭘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죠."

    양혜규는 지난가을에도 프랑스 파리 라파예트 백화점을 자신의 베네시안 블라인드 작품으로 화사하게 물들인 바 있다. 퐁피두센터에서 십자형 블라인드 200여 개로 개인전을 열고 있던 시기였다. "10년 넘게 블라인드를 주재료로 사용하다 보니 너무 능숙해져서 어떤 마찰도, 고민도, 책임도 없어진 느낌이 들었죠. 괴리, 결핍이 있어야 자기를 전장에 던질 수 있는데…. 그 시점에 탄생한 것이 솔 르윗입니다."

    2009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기점으로 세상에서 가장 바쁜 작가 중 하나가 된 양혜규는 "어느 땐 경주마가 된 느낌"이라며 웃었다. "안 하면 안 했지 못 하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거니까요." 럭셔리 상업 공간들과의 협업이 예술가로서 불편하지 않으냐는 질문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양혜규가 에르메스와 작업을 했다'가 아니라 '에르메스와 어떤 작업을 했느냐'가 중요해요. 열악한 것들을 그리워하고 그걸 마치 훈장처럼 차고 있는 건 안 하기로 했어요. 내가 이 자리에 왔으니 여기서 할 수 있는 걸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 '셋을 위한 그림자 없는 목소리' '절대적인 것에 대한 열망이 생성하는 멜랑콜리' 등등 작품 제목이 왜 그리 어렵냐고 딴죽을 걸자 양혜규가 "실은 나도 기억을 잘 못한다"고 해서 웃음이 터졌다. "사회의 모든 부분이 쉽고, 친절하고, 긍정적이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누군가는 도전하고 주장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사유라는 걸 하지요. 제목이 긴 건, 작품의 키워드가 되는 단어들을 넣어 관람객이 작품을 해석하는 데 도움을 드리기 위해서예요. 어려운 가운데 친절한? 하하!"

    작업 없는 날은 집에 틀어박혀 '천장 보기'를 한단다. "제가 바쁜 척하는 건, 저 혼자만의 시간을 절대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예요. 작가에겐 목적 없이 멍하니 보내는 시간이 굉장히 중요하니까요. 안 그러면 망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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