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살아있는 병풍

  •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입력 : 2017.05.20 03:07

    가슴으로 읽는 한시 일러스트

    살아있는 병풍

    병풍은 남의 솜씨 빌어다가 그릴 필요 없어서
    조화옹이 그린 그림 겹겹이 날로 쳐놓았네.

    늘어선 산은 살아있는 채색 붓을 뽑아놨는가?
    두 줄기 강은 부엌에 쓸 물로 길어가도 좋겠군.

    밀물이 밀려오는 바다처럼 구름이 깔렸고
    마르지 않고 촉촉한 길처럼 안개가 아늑하네.

    사철 내내 활짝 펴서 걷어놓을 때가 없지만
    화창한 봄날 차를 끓이는 화로 곁은 유독 다가오네.

    奉和酉山

    畫屛不願借人模(화병불원차인모)
    千疊生陳造化圖(천첩생진조화도)

    列岳疑抽生彩筆(열악의추생채필)
    雙江可挹灌香廚(쌍강가읍관향주)

    雲舖似海潮方進(운포사해조방진)
    烟澹如塗潤未枯(연담여도윤미고)

    張放四時無捲日(장방사시무권일)
    春晴偏近煮茶爐(춘청편근자다로)


    19세기 전반의 저명한 승려이자 시인인 초의(草衣·1786~1866) 선사가 썼다. 두물머리에 사는 시인 정학연(丁學淵)의 집을 찾아가서 그와 주고받은 시의 하나이다. 한강과 수종사의 풍경이 어우러진 이곳에 와보니 병풍은 필요 없겠다. 조물주가 만들어놓은 천연의 병풍이 있어서다. 무엇 하러 화가를 불러다 가짜 산수를 그리게 하고 그 병풍을 쳐놓겠는가? 이 병풍에는 산과 물, 구름과 안개가 아름다운 풍광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사시사철 어느 날도 걷어서 보관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그 멋이다. 화창한 봄날 차를 끓이는 우리의 화로 곁을 유난히 좋아해 바짝 다가왔다. 차를 마시며 바라보는 살아있는 병풍의 멋을 벗과 함께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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