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신호 없는 교차로의 기적

    입력 : 2017.05.20 03:10

    이태훈 문화부 차장
    이태훈 문화부 차장

    "너희 영국 사람들은 어떻게 그래?"

    영국 한 대학 도시에 연수차 머물 때의 일이다. 집 뒤뜰 의자에 앉아 밤하늘을 보는 게 좋았다. 옆집과 사이엔 어른 허리 높이 담장뿐 가끔 이웃집 아저씨 세드릭과 마주쳤다.

    하루는 '순환 교차로'(roundabout)에 대해 물었다. 많게는 대여섯개 출구가 있는 원형 교차로에서 신호등도 없이 차들이 물 흐르듯 움직였다. 먼저 들어선 차에 양보하고, 먼저 빠져나가는 차는 바깥쪽, 나중 차는 안쪽 원을 돈다. 불편해도 참고 융통성 없이 규칙을 지키는 고지식함이 놀라웠다. "신기해. 너희는 어떻게 그렇게 잘 양보하고, 남이 안 봐도 규칙대로 가는 거지?"

    "그건 말야…." IT 기술자에서 요가 강사로 변신한, 1년에 석 달씩 남(南)인도에 다녀오는 세드릭이 말했다. "우리끼리 싸우고 피 흘린 세월이 오래여서일 거야. 그래서 깨달은 거지. 잠시 기다리고 먼저 양보하면 결국 다 같이 빨리 간다는 걸."

    '지킬'과 '하이드' 중에 굳이 따지자면 영국인의 천성은 하이드 쪽에 가까울지 모른다. 켈트, 로마, 앵글, 색슨, 바이킹 후예 노르만…. 그들의 조상은 사나웠고, 나라 안팎에서 끊임없이 창칼을 부딪쳤다. 웨일스 정복 전쟁, 백년 전쟁, 장미 전쟁, 스코틀랜드-잉글랜드 전쟁…. 계속 싸우다간 공멸하고 만다는 이성적 판단에 그 많은 법률과 전통도 태어났을 것이다. 런던의 영국 하원 의회 바닥에 빨간색 두 줄도 그런 전통 중 하나다. 양쪽에서 칼을 휘둘러도 닿지 않는 상징적 거리, 2.5m 너비의 '소드 라인'(sword line)이다.

    순환 교차로에선 일종의 자기 부정이 필요하다. 신호가 없어도, 맘대로 달리고 싶은 욕구를 눌러야 한다. 개봉 중인 영화 '나는 부정한다'를 보며 순환 교차로를 떠올렸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히틀러 숭배자와 홀로코스트 연구 권위자인 유대계 미국인 교수가 영국 법정에서 맞붙은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다. 영국 법률가들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직접 불러내 목소리 높여 비판하지 않는다. 규칙과 절차에 따라 사실을 규명하고 정당성을 쌓아올려 '정의의 승리'를 얻어낸다.

    잉글랜드 스윈든의 6중 순환 교차로에 들어섰을 때의 막막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작은 순환 교차로 5개가 중앙의 큰 순환 교차로와 만나는 다섯 잎 꽃 모양인데, 중앙 부분에선 차량 진행 방향이 거꾸로다. 별명이 '악마의' 혹은 '마법 순환 교차로'다. 그런데 한 조사에 따르면 이 교차로 덕에 교통사고가 4분의 1로 줄었다.

    새 출발의 희망과 우려가 교차하는 요즘이다. 몰아내라는, 바꿔 달라는, 싸워보자는 목소리가 높다. 서로 다른 생각과 결의가 한꺼번에 흘러드는 순환 교차로 같다. 먼저 가고 싶어도 잠시 기다리고, 힘자랑하고 싶어도 한발 물러서야 다 같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악마의 순환 교차로'에서 모두 함께 가려면 그 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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