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그 사랑이 눈총 받는 이유

    입력 : 2017.05.20 03:09

    '文, 출발이 좋다' 대체적 분위기… 숙제는 이제부터 풀어야 할 상황
    열렬 지지자들은 '반대 세력 타도' '김정숙 여사'라 안 불렀다 맹폭
    지지하지 않으면 '적'으로 지목
    '지지자만의 대통령' 묶는 건 사랑 아닌 야만적 광신일 뿐

    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
    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

    5월의 어느 오후 조금 늙은 남자와 조금 젊은 남자들이 산책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지난 11일 문재인 대통령과 임종석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 등 청와대 참모진이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청와대에서 걷는 모습을 사진으로 봤다. 종이컵 하나 드는 게 뭐 감탄할 일인가 싶은데도 상쾌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역시 인테리어의 완성은 사람. '청와대'가 프로페셔널한 직업인들이 '통치'라는 직무를 수행하는 곳으로 비치게 했다.

    '특별히 한 일도 없이 쇼만 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런 쇼도 못하는 정부가 많았다. 그 정도 연출 능력이라면 앞으로 기대하겠다는 게 지금 여론인 듯하다. '문재인 후보'는 득표율 41%에 불과했지만 갤럽 여론조사(16~18일)에서는 응답자 1004명 중 87%가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 수행을 잘할 것'이라 전망했다. 국정 수행에 대한 기대치가 득표율의 더블 스코어를 넘었다.

    좋은 날이 아쉬운 건 그런 날이 짧기 때문이다. 잔칫상 치우고 나면 청구서가 날아든다.

    '사드 반품하자'는 얘기가 나오는 걸 보니 안보 이슈로 갈등이 커질 것이다. 내각이 완비되고 공약 실행 단계가 오면 '진보'의 명도와 채도가 급격히 높아질 것이다. 야당들 전당대회가 끝나고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투쟁이 격해지면 '아군이냐 적군이냐' '종북이냐 애국이냐' 패러다임 싸움이 격화될 게 뻔하다. '사방이 싸움터'가 되는 거다.

    정부 관계자들은 "보수 언론과 건강한 긴장 관계를 바란다"는 입장이라 한다. '건강한 긴장 관계'라는 말은 '사랑하기에 헤어진다'와 비슷한 느낌이다. '사랑하기에 떠난다'는 이호철·양정철씨 같은 이들이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아첨 앞에 장사 없고, 비판 앞에 군자 없다'는 말이 공연한 게 아니다. 옆에서 따지고 들면 '나를 왜 흔드느냐' 짜증 내는 게 권력이다. 긴장하는 걸 아닌 척할 필요도 없다. 정부는 정부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임무에 충실하면 된다. 바퀴가 돌아가면 소리가 나기 마련이다.

    사랑이 크기 때문일까. 문재인 열렬 지지자들이 벌써부터 '문재인 지키기'에 나섰다. 김정숙 여사를 '김정숙씨'라고 썼다고, 기사 제목에 '문 대통령'을 '문(文)'이라고 썼다고 진보 언론들이 먼저 융단 폭격을 맞았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들이 어떤 끔찍한 '별칭'으로 불렸는지 떠오른다. 표현의 자유와 권위주의, 한패가 될 수 없는 두 카드를 이들은 동시에 쥐고 내밀었다. '기레기 감시 시스템'을 만든다는 얘기도 있다. 그들 기준으로 '악질 기사·기자'를 선별해 공격한다는 것이다. 행동 요령에는 'A기자를 어느 식당 술집에서 봤습니다' 'B기자가 C여기자와 속초에서 있는 걸 봤습니다. 이분 기혼이죠' 식의 글을 올린다 등의 구절도 있다.

    '사랑에는 다소 광기가 있기 마련이다. 광기에는 다소 이성이 있기 마련이고.'

    철학자 니체의 한 문장을 빌려 상황을 이해해보자. '다소의 광기'는 문재인 대통령을 '악의 무리'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소의 이성'은 노무현 정부가 비극적으로 끝났다는 우려로 추측된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과거와 유사한 비극을 막기 위해 지금 당장 '문재인의 잠재적 위험'을 대신 처단해주겠다는 거다. 이렇게 지지를 표현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는 방식이다.

    문제는 그들이 '적·악'을 자의적으로 지목하고, 마녀 사냥하듯 화형식 집행자로 나선다는 점이다. '문재인 지지자'들의 행태가 논란될 때 국민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추상으로 그려지는 '지지자들'이 아니라 '문재인'이라는 실존 인물이 될 것이다. 지지자들이 광신적 행태를 보이면 그 열기에 대통령이 먼저 화상을 입을지도 모른다.

    '기호 1번'을 찍지 않았던 이들도 대통령의 행보를 미소로 지켜보고 있다. 박장대소하지 않는다고 입을 찢고 손을 자르겠다 덤비는 건 야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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