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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느와르' 껍질을 맵시나게 걸친 '남남' 로맨스… 영화 '불한당'

  • 글/구성 : 뉴스콘텐츠팀 이수진

    입력 : 2017.05.19 17:17 | 수정 : 2017.05.19 17:47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삐딱선' 타는 '불한당'의 느와르

    거의 유일하게 '가족애'를 느꼈던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조현수(임시완)가 오열한다. 그 모습을 한재호(설경구)가 애처롭게 바라본다. 영화 '불한당'은 이 장면을 기점으로 그동안 쏟아졌던 한국식 느와르 영화가 갔던 길과는 사뭇 다른 길을 간다. '불한당'은, 한국 느와르의 전형적인 여러 설정이나 이야기들을 미묘하게 파괴하는 영화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 볼수록 '삐딱선'을 타는 '불한당'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영화 '불한당' 메인예고편

    한국영화는 '알탕'영화가 점령했다?

    요즘 한국 영화계에서는 '알탕' 영화라는 말이 심심찮게 쓰인다. 다소 저속한 표현의 이 말은 남자배우들만 우글거리는 요즘 한국영화의 추세를 비하하는 말이다. 그 예를 들면 이런 영화들이다. '범죄와의 전쟁(2011)', '베테랑(2015)', '내부자들(2016)', '아수라(2016)', '마스터(2016)', '더 킹(2016)', '프리즌(2017)' 등 당장 생각나는 것만 적어도 이 정도다. 여배우들 사이에서 출연할 영화가 없다는 하소연이 들리기 시작한 것도 꽤 오래됐다.

    언제부턴가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흐름을 이어갔던 '알탕' 영화들, 다시 말해 한국식 '조폭 느와르'에는 대체로 남자들의 권력다툼, 알력다툼, '가오' 싸움, 주먹 싸움이 가득했다. 각종 폭력의 묘사는 끔찍하고 여성의 묘사는 선정적이었다. 그래도 어찌됐든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좋았고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했으며, 내용 역시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 '아수라'

    흥행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탓에 한국에서 '남자영화'들은 주기적·지속적으로 생산되었고,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배신과 의리, 폭력과 죽음의 서사는 이제 거의 패턴화 될 지경이다. 관객들은 슬슬 지겹고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2016년 가을에 나온 영화 '아수라'의 무자비한 결말은 이러한 '남자영화'들을 멸종시켜버릴 기세였으나 역부족이었는지, 그 이후에도 한국의 '조폭 느와르'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쨌든 흥행을 하기 때문이다.

    '조폭 영화' 앞에 나타난 '로맨스'라는 변수

    영화 '불한당'의 첫인상도 그 수많은 조폭영화들을 자동으로 떠올리게 한다. 제목부터 조폭의 또 다른 말인 '불한당'인 데다가 주연배우 모두 남자다. '불한당'은 느와르 장르에서 즐겨 쓰는 '언더커버(잠입조)'의 설정을 갖고 왔으며 주인공들의 직업을 보면 경찰, 조폭 2인자에 검사도 있다. 안 보고도 어떤 내용인지 벌써 다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라인업'이다. 그런데 '불한당'은 시간이 지날수록 '남자영화'의 전형성을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영황 '불한당' 스틸

    아주 오래 전 부모로부터 이미 철저하게 버림 받은 바 있는 한재호는, 그 덕분에 사람을 믿지 않는다. 사람을 믿지 않는 덕분에 한재호는 조직에서 승승장구하며 1인자인 고병철(이경영)의 위치를 위협할 정도의 힘을 거의 갖췄다. 어쩌면 곧 조직의 수장이 교체될지도 모르는 이 중차대한 시점에, 한재호 앞에 치명적인 '변수'가 나타났다. 조현수는 한재호가 생애 처음으로 믿고 싶은 단 한명의 사람이 되었다.

    변성현 감독은 한재호에게 갑자기 나타난 이 '변수'를 거침없이 '로맨스'라 명명했다. '언더커버'까지 써 가며 마약사업으로 몸통을 키운 어떤 조직을 무너트리려고 그 '난리'를 쳤는데 정작 영화의 핵심은 범죄조직의 파멸 따위가 아닌 두 남자 주인공 사이에 슬그머니 끼어든 '로맨스'에 있었다. 그러니까 알고 보니 영화 '불한당'은 '한국식 조폭 느와르'의 껍질을 스타일리쉬하게 걸쳐 입었으나, 결국 어떤 남자의 순정을 밀도 있게 보여주는 영화였다.

    '불한당' 설경구·임시완… 브로맨스 아니고 사랑 맞습니다
    한재호의 순정은 의외로 영화 끝까지 애틋하다. 너무 늦게 처음으로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갖게 돼버린 대가는 너무 컸다. 영화 '불한당'은 한재호의 최후를 향해 그야말로 '폼 나게' 달려간다. 한재호는 사람을 믿는 대가의 끝이 어떤가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기꺼이 그 끝을 향해 간다. 이 말도 안 되는 폭주를 설득력 있게 해주는 건 조현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한 임시완의 얼굴이다.

    "딸내미처럼 생긴 애가 농담도 잘하네?"

    몹시 고운 얼굴을 갖고 있는 임시완이 '느와르'에 출연하는 게 아직은 어색하기도 하다. 싸움 잘하고 사람도 죽이는 장그래라니. 그런데 임시완은 장그래를 연기했을 때보다 훨씬 더 힘을 빼고 조현수를 천연덕스럽게 연기했다. 힘을 쫙 뺀 목소리와 무표정, 그리고 가끔 흘리는 눈물은 조현수를 무척 매력적으로 만들어준다. 그 정도면 한재호가 목숨을 초개처럼 여길 만한 개연성이 충분하다. 감독 또한 컬러풀한 색감과 만화 같은 액션 그리고 감각적인 카메라 구도 등을 적극 활용해 두 남자의 로맨스를 한껏 가꿔주었다. 수많은 '조폭 느와르'와 차별되는 이 몇 가지 요소 덕분에 영화 '불한당'은 뜻밖에 칸 국제 영화제에 초대되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영화 '불한당' 스틸

    그러나 '느와르'의 공식에서 약간 '삐딱선'을 탔다고 해서 영화 '불한당'이 굉장히 독창적인 결과물을 내놨느냐 하면, 그렇게까지는 아닌 것 같다. '로맨스'만 빼놓으면 한국의 '조폭영화' 패턴을 그래도 대부분 따르고 있으며 잔인하고 극단적인 분위기 역시, 관객들로서는 매우 친숙하게 느낄 것이다.

    '한국식 조폭 느와르'의 대안으로 '불한당'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면 그 기대는 접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직 한국의 조폭영화는 잘 되는 흥행 문법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한국식 '남자 영화'들을 거쳐야 이 흐름이 누그러질까. 한국 남자배우들이 영화 속에서 너무 많이 죽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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