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추적>朴 전 대통령 재판 방청권 추첨현장, 법원이 들썩였다

    입력 : 2017.05.19 15:50 | 수정 : 2017.05.22 17:13

    “윤석열이 중앙지검장? 이영렬이는 어디로 갔니, 고검으로 발령났다고? 잘됐네.”
    19일 오전 주부 장모(58)씨는 서초동 서울회생법원 1호 법정에서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며 ‘검찰 인사’ 속보 내용을 챙기고 있었다.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 사는 주부’라고 소개한 장씨는 이날 오전 대학 후배인 주부 이모(55·경기 남양주)씨와 23일 시작되는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 방청권을 응모하러 서초동 법원을 찾았다. 장씨는 기분이 무척 좋아보였다. 장씨는 이씨에게 “우리 대통령, 누가 뽑았지? 나 요즘 너무 행복해”라고 말했다.
    19일 오전 서초구 서울회생법원. 박근혜 전 대통령 첫 정식 재판 방청권 추첨을 위해 시민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연합뉴스
    “저기… 앞에 있는 사람 조심하셔요.”
    뒤에서 장씨 이야기를 듣고 있던 20대 청년이 쿡쿡 찌르면서 검지 손가락으로 앞을 가르켰다. 앞 좌석에서 태극기 우산을 손에 쥐고 있던 여성이 뒤돌아서 장씨를 쏘아보고 있던 중이었다. 이 여성은 곧 ‘휙’하고 몸을 틀어 다른 좌석으로 옮겨갔다.

    장씨는 목소리를 낮추며 “저 태극기 여성도 애국자”라며 “방향이 다를 뿐이지 나라 걱정하는 마음은 나와 같을 것”이라고 했다. “작년 상반기까지 전 ‘민정수석’이 뭔지도 몰랐어요. 평범한 주부였던 우리가 이제는 검사장 인사를 논하며 기뻐하고 있네요.”
    박 전 대통령 재판 방청권 추첨 현장. 회생법원 209호 법정은 마치 '로또 추첨' 현장처럼 흥미진진했다. /한경진 기자
    이날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 방청권 추첨 행사에 응모한 사람은 모두 525명. 일반인 배정 좌석은 68석으로, 경쟁률 7.7 대 1을 기록했다. 23일 첫 재판과 25일 재판 방청권을 각각 68석씩 추첨했다. 법원 관계자가 쩌렁쩌렁 울리는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시끌시끌하던 법정 공기가 금세 가라앉았다.

    “전직 대통령 사건 재판 당일에는 보안검색을 한층 강화할 계획입니다. 가끔 재판 방청할 때 보면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오시는 분도 있어요. 생수병이나 스프레이류도 반입이 안 됩니다.”
    기자도 이날 줄을 서서 재판 방청을 응모했다. 오는 25일 방청권이 당첨됐다. /한경진 기자
    대기줄에서 만난 여성 박모(31)씨는 “IT회사에 다니는데, 휴가를 쓰고 재판 방청을 응모하러 나왔다”며 “나라에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졌지만 수습만큼은 상식적으로 되는지 지켜보고 싶어서 방청을 원한다”고 했다. 충남 부여에서 아침 7시에 버스타고 왔다는 미대생 이수정(19)씨는 “작년에는 고3이어서 야간 촛불집회에 나가보질 못했다”며 “오늘 ‘공강일’이어서 혼자서 왔다”고 말했다. 붙잡고 물어본 10여명 모두 ‘생애 첫 재판 방청’이라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어디있는걸까. 지난해 말부터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 현장을 누볐던 한 언론사의 사진기자 동료가 ‘팁’을 알려줬다. “커다란 선글라스 낀 중년 여성들을 찾아. 대부분 박 전 대통령 지지자일거야.” 그의 조언대로 선글라스를 낀 여성 4명에게 살며시 다가가 물었더니, 모두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구속시키고 선거를 치루다니, 말이 됩니까. 문재인이 대통령이라는게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지금 우리나라가 이렇게 되어서 속이 시원한가요? 비참하고, 치졸하고, 졸렬하게 박근혜 대통령에게 그렇게 했어야 하나요?” (48세 여성 허모씨) 그녀는 “법원이 공정하게 하는 ‘척’을 하려고 지금 추첨 쇼를 벌이고 있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 김모씨의 휴대전화. '카톡 프사(프로필 사진)'에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얼굴이 돋보인다. /한경진 기자
    38세 치위생사 김모(서울 강남)씨는 “친언니는 촛불집회·탄핵 찬성론자인데, 나는 정반대”라며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구속까지 갈 사안이 아니었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얼굴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 중이었다. 휴대전화에는 미국 국기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1996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조선일보DB
    1996년에도 전직 대통령 재판으로 법원이 북새통을 이뤘던 적이 있다. 역사적인 재판 현장을 지켜보려는 시민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참 많았다. 당시 조선일보 사회면에 따르면 ‘방청권 암표상’까지 생겨나고, 심부름센터 직원들이 이틀밤을 새서 방청권을 받아내기도 했다고 한다.

    이날 추첨 행사는 오전 11시30분쯤 끝났다. 기자는 23일 방청권은 떨어지고, 25일 재판 방청권이 뽑혔다. 방청권이 당첨된 시민들은 마치 ‘로또’라도 맞은 듯 박수치며 환호했다. 법원 관계자에게 다가가 ‘주최측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하는 시민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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