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

  • 남정욱 '대한민국문화예술인' 공동 대표

    입력 : 2017.05.20 03:01

    [남정욱의 명랑 笑設]
    한국에서 기업은 실업자 고용하고 온갖 성금 내면서 틈틈이 욕먹는 존재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
    우리는 장롱 속 패물로 국난(國難)에 맞선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민족이다. 더해서 상부상조 정신이 혈맥을 타고 흐르는, 이웃 사랑이 체화된 민족이다. 얼마 전 강원도에서 산불로 축구장 500개 면적 산림이 까맣게 타버렸다. 그 즉시 상호 구휼 정신이 작동했다.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KT&G, 현대오일뱅크 등이 산불 피해 이웃돕기에 성금을 보탰다. 그런데 이 명단에 삼성, 현대차, SK, LG 같은 대기업들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국가적으로 큰 재난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란다. 어허, 대기업들이 이러시면 곤란하다. 재난 수습은 결국 큰돈이다. 그리고 국가적으로 큰 재난인지 아닌지 왜 자기들이 판단하나. 재난 상황이면 무조건 지갑부터 여는 게 우리 정서상 대기업의 할 일이다(현재 평창올림픽을 앞두고도 자금이 부족한 모양인데 이것도 같은 맥락에서 대기업의 임무 방기 및 애국심 결여라고 본다).

    삼성이 성금을 안 낸 이유는 아주 구체적이다. 전에는 미래전략실에서 계열사별 분담금을 책정했는데 지금은 그 조직이 없어 그룹 차원의 성금 모금을 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삼성이 미래전략실을 폐지한 게 지난 2월이다. 국정 농단과 관련해서 정치권에 시달린 끝에 60여 개 계열사, 종업원 50만 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사라졌다. 달라진 건 덕분에 계열사들이 독자적으로 자율 경영을 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이제 필요한 부서가 있으면 계열사별로 만들면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같은 일을 하는 조직이 60개 생길 수도 있지만 그깟 비효율이 뭐 중요한가. 계열사의 독자적 자율 경영이라는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새로운 경영 기법이 탄생했는데. 산불 성금도 그렇다.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게 사회 공헌 안 하는 핑계가 될 수는 없다. 그냥 계열사별로 '독자적'으로 내면 된다. 그렇다고 전체 액수를 조율하기 위해 계열사끼리 자주 만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렇게 만나다 보면 저절로 다른 업무도 협의하게 될 것은 불 보듯 빤하다. 그러면 미래전략실 폐지가 무슨 의미가 있나. 앞이 안 보이는 안갯속이라도 독자적으로 자율적으로 계속 가야 한다. 미래전략실이 없어졌다고 미래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지 않은가.

    가끔 보면 한국 사회와 기업은 좀 안 어울리는 거 같다. 기업에 대한 보편적인 이해와 국민 일반의 인식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리에게 기업은 실업자를 고용하고 각종 성금을 내고 틈틈이 욕을 먹는 존재다. 그런가 하면 경영권 방어는 세습과 경영 승계로 이해하고 위험 분산은 문어발 경영이라고 타박한다. 솔직히 소생은 삼성이 한국에서 버티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삼성의 국내 고용률과 글로벌 고용률은 역전된 지 오래다. 삼성전자 매출이 1% 늘 때 국내 3차 협력사의 매출은 겨우 0.005% 증가한다. 게다가 삼성전자의 국내 매출은 전체 매출의 10%에 불과하다. 그러면서도 삼성으로 대표되는 재벌 문제는 항상 계층 갈등의 최전선이다. 대한민국과 삼성 모두에게 결별이 해될 게 별로 없다는 얘기다. 반기업 정서와 정책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다. 국회의원인지 혁명군인지 구분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 그룹 부회장이 모욕의 성찬을 받으면서도 이 땅에 남아있는 이유를 진짜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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