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어쩌다가 恨 맺히게 찍혔나… 납작 엎드린 검찰

    입력 : 2017.05.20 03:01

    대통령도 민정수석도 "검찰 개혁" 부르짖는데 아무 말 못하는 사연
    단두대서 처분 기다려? 진경준 비리·우병우 전횡 일부 檢 출신들의 일탈
    반박하기 힘든 상황… 상명하복 문화도 옅어져
    노무현과의 악연? 盧 극단적 선택할 당시 오랜 동지이자 비서실장
    대통령 당선되며 戰雲 "검사들 보수 우파 경향 힘 빼자는 것 아니겠냐"
    검찰 독립 가능? 수족으로 부리고 싶은 유혹 뿌리치기 힘들어
    "現정권 인사 수사해도 압력 넣지 않을 수 있나"

    2003년 참여정부 첫 법무장관은 46세의 강금실 변호사였다. 판사 출신이었던 강 장관은 부장검사들과 나이가 비슷했다. 그런 강 장관이 검사장급 간부 인사에서 서열·기수 파괴를 예고하자 검찰은 "현실을 모르는 인사"라고 집단 반발했다. 검란(檢亂)으로 표현할 정도였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검사들과 만나 인사와 개혁 방안을 공개 토론하자고 했다. 정부 출범 13일 만에 세종로청사 19층 대회의실에선 '평검사와의 대화'가 열렸다. 토론회는 아슬아슬하게 진행됐다. 한 검사는 노 대통령이 부산동부지청에 청탁 전화를 건 사실을 공개했고, 대통령은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고 받아쳤다. 당시 토론 현장을 끝까지 지켜봤던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어쩌다가 恨 맺히게 찍혔나… 납작 엎드린 검찰
    14년 뒤 문 대통령도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다. 비(非) 검찰 출신인 조국 서울대 교수를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발탁했고, 검찰이 처리했던 '정윤회 문건 사건'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재조사를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국장이 연루된 '돈 봉투 만찬 사건'에 대한 감찰도 지시했다. 청와대와 정치권에서 연일 검찰은 개혁 대상이라는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지만 검찰에선 아무런 반응이 나오지 않고 있다.

    "단두대에서 처분만 기다리는 꼴"

    한 지방검사장은 현재 검찰을 이렇게 표현했다. "단두대에서 처분만 기다리는 꼴이다. 목이든 손발이든 칼자루 쥔 정권이 어디를 잘라내도 찍소리 못할 것 같다." 그는 검찰이 개혁 대상으로 몰린 것은 자초한 측면이 크다고 했다. 진경준 전 검사장 등 간부들의 잇따른 금품 비리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보여준 전횡이 국민들에게 검찰 이미지를 비정상 조직으로 만들어놨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한 검사는 "대부분 검사가 밤새워 열심히 일하지만 일부 검사의 일탈과 비리를 부정할 수 없기에 적폐로 몰려도 달리 반박할 말이 없다"고도 했다.

    법조계에선 검찰 내부 상황이 과거 위기 때와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우선 상명하복 조직 문화가 상당 부분 사라지고 검사 개인 의견을 존중하는 문화로 바뀌면서 검사들이 조직적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대검의 한 간부는 "법무장관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사표를 내 수개월간 공석으로 있는 데다 총장은 물러나고 핵심 간부는 사표를 던져 구심점마저 찾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외부 상황도 검찰엔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2003년만 해도 당시 거대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검찰 장악 음모 중단하라"며 정부를 비판하고 검찰의 우군 역할을 했으나 지금은 그런 정치권 지원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는 말이다. 정치권 대부분이 검찰권 축소에 찬성하는 입장인 데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도 내분(內紛)으로 지리멸렬한 상태다. 법무부 한 간부는 "검찰이 지금 대응을 한다면 국민 성원이나 정치권 지원도 받기 어렵다"며 "정부 개혁 방안을 지켜보며 그냥 따를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런 점에서 법조계 주변에선 지금이 검찰 개혁의 최적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다만 조국 수석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경기도에 근무하는 한 부장검사는 "(조 수석이) 검찰 수사를 지휘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몇 시간 만에 대통령 지시로 세월호와 국정 농단 사건 재조사 얘기를 하지 않았느냐"면서 "정윤회 문건 사건을 민정수석실에서 재조사한다고 했지만 검찰 수사로도 벅찬 사건을 자체 조사로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의문"이라고 했다. 서울의 한 검사장도 "교수나 시민단체 출신은 말이 앞서는 경향이 있다"며 "수사나 행정은 결과로 말하는 것이지 의욕과 의심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고 했다.

    "검사들에 대한 오랜 불신이 개혁으로"

    검사들은 새 정부가 검찰을 우선 개혁 대상으로 선택한 배경을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많은 검사는 문 대통령의 검사에 대한 오랜 불신 탓인 것 같다고 했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대통령의 오랜 동지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서 수사를 받다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았느냐. 그의 비서실장이 대통령 됐으니 우리를 어떻게 보겠느냐"고 했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아 펴낸 책 '운명'에서 검찰 수사를 강력히 비판한 바 있다. "검찰은 박연차 회장의 말이 진실이라고 뒷받침할 증거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고 밝혔던 문 대통령은 검찰의 억지 수사로 노 전 대통령이 죽음으로 내몰렸다는 시각을 갖고 있었다. 당시 수사팀을 바라보던 문 대통령의 시각은 증오에 가까워 보였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했던 우병우 중수과장에 대해선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고 했고, 이인규 중수부장에 대해선 "겸손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시절 정권이 바뀌더라도 (검찰이)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확실하게 제도화하지 못한 것이 한(恨)으로 남고 아쉬운 부분"이라며 "이번에는 정권 초기부터 국민 염원에 힘입어 (검찰 개혁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겠다"고도 했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 바꾸지 못한 것을 한이 남는다고 말한 것은 결코 가벼운 대목이 아니다"고 했다.

    그렇다 보니 검사들은 현 정부가 검찰을 적대세력으로 보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법무부의 한 부장검사는 "검사들은 기본적으로 보수 우파 성향이 많다"면서 "집권 초반 검찰을 다루는 현 정부의 스탠스를 보면 '어차피 우리 편 아니니 힘이라도 뺏자'는 입장인 것 같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도 "검찰을 정권 시녀라고 봤다면 권력자 입장에선 검찰 힘을 이렇게까지 뺄 이유가 뭐 있겠느냐"면서 "새 정부는 결국 검찰을 함께 갈 조직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정치권 독립 약속에 기대감도

    문 대통령이 수차례 밝힌 '검찰의 정치권 독립' 약속에 대해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과거에도 검사들은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에 찬성해왔지만, 집권 세력과 일부 정치검사들이 유착하면서 검찰 독립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분석이 많았다. 특히 검찰 독립을 위해선 무엇보다 집권세력이 '양보'를 해야 하지만 역대 정권마다 검찰을 수족처럼 부리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것이 현실이었다. 대검의 한 간부는 "검찰총장 인선에 공정을 기하고 임기를 확실히 보장하며 법무부와 검찰을 분리시키려는 개혁 청사진은 참 좋은 방안"이라면서도 "하지만 만일 검찰이 현 정권 인사들을 수사할 때에도 검찰에 압력을 넣지 않을 것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일부 검사들은 검찰 독립은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의 의지 문제라고 했다. 가령 현행법으로 규정된 법무부장관의 검찰 지휘권 행사의 경우도 구두(口頭) 지휘가 아니라 서면(書面) 지휘하라고만 해도 법무부나 청와대의 간섭은 대폭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특수부장을 지낸 한 변호사는 "법무부의 수사지휘권을 앞세워 수사팀에 전화통화 등을 통해 온갖 민원과 압력이 들어온다"면서 "수사지휘를 공문 형식으로 제한해놓으면 부당한 사건 개입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검사들은 검찰권 제한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공수처)에 대해선 더는 반대 명분도 없고 이번 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보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공수처는 장차관, 국회의원, 판검사 등 고위공직자 비리를 수사하는 기관으로 1990년대부터 설치가 추진됐으나 검찰과 정치권 등의 반발로 무산돼왔다. 이번 국회 들어서도 박범계·노회찬 의원 등이 이미 공수처법을 발의해놓았다. 공수처가 만들어지면 검찰 위상을 높여왔던 공직 부패 수사의 상당 부분을 공수처가 담당하게 된다. 하지만 현재 발의된 관련 법안은 공수처가 입법·행정·사법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아 헌법적 근거가 미약하다는 지적이 있고, 다른 수사 기관과 수사 대상이 겹칠 때 공수처로 이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앞으로 구체적인 논의 과정에서 검찰 등의 반발이 예상된다. 벌써부터 일부 검사들은 정부가 검찰의 힘을 빼놓고 자신들이 주도해서 만들 공수처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기도 한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지금은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지만 검찰은 기소독점권 등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면서 "정부가 공약과 달리 검찰 장악을 위해 개혁을 내세운다면 나중에 검찰은 검찰대로 반발하고 개혁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