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文 대통령이 간다는 광화문청사는 과연 청와대보다 吉地일까

  •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입력 : 2017.05.20 03:01

    [김두규의 國運風水]

    지금부터 900여 년 전인 1101년, 윤관과 최사추 등이 임금 숙종에게 한 장의 보고서를 올린다. "새로운 도읍지를 물색하라는 명을 받고 노원역(노원구 상계동), 용산(지금의 용산) 등 여러 곳을 살폈습니다. 모두 적당하지 아니하고, 삼각산 북악 남쪽이 산 모양과 수세가 옛글과 부합합니다. 남향으로 하되 지형을 살려 도읍을 건설할 것을 청합니다."

    광화문 청사와 북악산, 경복궁과 청와대 전경.
    광화문 청사와 북악산, 경복궁과 청와대 전경. /김두규
    지금의 경복궁과 청와대 터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후 고려 말과 조선 500년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 민족의 정치 중심지가 되었다. 세종은 이곳에서 한글을 창제하였고, 세조는 문화를 융성시켰다. 해방 후 최빈국에서 10대 경제 대국으로 비상시킨 지도자들이 모두 이곳에서 집무하였다. 문제는 이곳에 거주하였던 왕과 총독 그리고 대통령들의 말로가 불행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풍수상 흉지론이 대두되었다. 국가의 불행이 아닌 지도자의 불행이었다. 그들은 본래 '역사의 하수인'이었다. 헤겔에 따르면 이성(Vernunft)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역사 속에서 실현시키기 위해 자신을 공물로 삼지 않고, 정열(Leidenschaft)과 야망(Interesse)을 지닌 개인을 활용한다. 그들은 때가 지나면 용도 폐기되어 가차없이 버려진다. 알렉산더·시저·나폴레옹 등도 결국 역사의 하수인이었다는 것이 헤겔의 주장이다. 지도자의 운명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광화문 청사 집무'를 이행하기 위한 조치들이 진행되고 있다. 빨라도 2019년에나 집무실 이전이 가능하다. 임기 절반을 보낸 뒤의 일이다. 그다음은 어떻게 될 것인가? 후임 대통령도 광화문청사 집무를 할 것인가, 청와대로 복귀할 것인가, 아니면 개헌을 통해 세종시로 옮길 것인가?

    왜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역대 대선 후보들의 공약이 되었는가? 구중궁궐과 같은 청와대 입지로 국민과의 소통이 불편함을 이유로 내세운다. 그러나 속내는 다르다. 여기에 일본 총독들과 우리 대통령들의 불운이 못내 찜찜하였을 것이다. 풍수상 흉지라는 술사들의 떠벌림이 청와대 터에 누명을 씌웠다. 900년 전 당대 최고 문신 최사추와 문신이자 군인이었던 윤관이 땅을 잘못 보았다는 말인가? 광화문청사가 이보다 더 좋다고 할 수 있을까?

    남송(南宋)의 명장으로 지금까지도 중국인들이 존경하는 악비(岳飛)는 "문신들이 돈을 탐하지 않고 무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천하는 태평해진다"고 했다. 참된 지도자가 되려는 정열과 야망을 가진 이들이 가져야 할 덕목이다. 지도자가 존경받는 이유다. 땅이 두려워 집무실을 옮긴다면 지도자의 운명을 회피하는 것이다.

    조선 초 어효첨이란 신하가 있었다. 아버지 어변갑과 아들(어세겸·어세공) 3대가 태종에서 연산군까지 여덟 임금을 섬겼다. 그 가운데 중심인물이 어효첨이었다. 그는 1444년(세종 26년) '풍수를 논하는 글(論風水疏)'을 올린다. 글을 올린 계기는 개천(청계천) 때문이었다. 명당수 청계천이 오염되면 왕실 운이 흐려진다는 풍수학인 이선로의 주장에 따라 청계천에 쓰레기 투척을 금지한다. 이 과정에서 풍수 논쟁이 일었다. 이때 어효첨은 진정한 풍수란 "천명으로 주맥(主脈)을 삼고 민심으로 안대(案對)를 삼는 것"이라는 글을 올린다.

    천명(시대정신)과 민심에 등을 돌리면 광화문청사도 구중궁궐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무실을 청와대 비서동으로 옮겼다. '대통령궁'을 새로 짓지 않을 바에야 이것으로 충분하다. 비서동 이름을 '여민관(與民館)'으로 바꾼 것도 좋다. 군자(지도자)는 국민과 즐거움을 함께하며(與民同樂), 괴로움도 함께 한다(與民同患). '여민'의 본래 뜻이다. 이보다 더 좋은 풍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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