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찍혀서 못살겠다

    입력 : 2017.05.19 03:03

    ['1인 방송국 3000개 시대' 그늘… 가정집서 촬영 늘어 이웃과 갈등]

    - 시끄러워… 허락 안 받아…
    스튜디오 빌릴 돈 없어 대여료 싼 원룸서 유튜브·인터넷용 2~3분짜리 영상제작
    집주인 "남의 집 망쳐… 차라리 방빼"

    -초상권·저작권 분쟁
    인터뷰 위해 무턱대고 카메라 들이대
    동영상 편집 때 이미지 등 무단 사용
    길가다 찍힌 사람 등 신고·문의 잇따라

    "도대체 누구 허락 맡고 여기서 촬영하는 거야? 당장 나가!"

    지난달 서울 마포구의 한 빌라 복도에서 한바탕 소동이 났다. 소규모 영상 제작사에서 일하는 김성화(가명·28)씨는 단편영화를 찍을 장소로 이 빌라 3층의 원룸을 7시간 동안 8만원에 빌렸다. 그런데 주민들이 "영화를 촬영한다며 복도에 발전기를 돌려대니 윙윙거리는 소리가 시끄러워 살 수가 없다" "촬영 장비 소리에 아기가 깼다"며 항의를 쏟아낸 것이다. 김씨는 "돈 내고 장소를 빌렸으니 그만둘 수 없다"고 맞서면서 계속 촬영했다. 참다못한 주민들은 경찰을 불렀고, 김씨는 결국 3시간 만에 촬영을 접어야 했다.

    [핫 코너] 찍혀서 못살겠다
    /박상훈 기자
    주부 전모(39)씨는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는 한 남성으로부터 '지난 대선에 누구를 찍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전씨는 얼떨결에 '○번' 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전씨는 곧 후회했다. 자신의 인터뷰가 어떤식으로 나갈지 몰라 불안했으나 그 남성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유튜브 등을 기반으로 한 1인 방송 제작자(1인 미디어), 소규모 콘텐츠 제작사들이 2~3분짜리 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이로 인한 분쟁이 급증하고 있다. 원룸이나 가정집을 촬영 장소로 섭외하다보니 다른 주민들과 소음·조명으로 인한 갈등도 빚고 있다. 개인 영상 제작자들의 이익 단체인 '한국1인미디어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에 영상을 인터넷 등에 올리고 광고료 같은 수익을 얻는 1인 방송 제작자만 3000명이 넘는다.

    5년 전만 해도 인터넷에 올라오는 영상 대부분은 대형 미디어 사업자들이 조명·소품 등이 갖춰진 전문 스튜디오에서 찍은 것들이었다. 소규모 제작사들은 시간당 비용 4만~5만원이 드는 스튜디오를 빌릴 여유가 없어 대여료가 싼 가정집을 촬영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영상 커뮤니티인 필름메이커스에는 '집을 대여해주겠다'는 글이 1000건 정도 떠 있다.

    세입자가 용돈 벌이로 소규모 영상 제작사에 집을 빌려줬다가 집주인과 다투는 일도 벌어진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옥탑방에 사는 홍모(29)씨는 하루 15만원을 받고 촬영 장소로 옥탑 방을 빌려줬다가 쫓겨날 뻔했다. 집주인은 "허락도 없이 남의 집을 빌려주고 돈벌이를 하느냐"며 "촬영 장비 때문에 마룻바닥이 다 긁히고 주민들도 싫어한다. 이런 식으로 할 거면 나가 달라"고 화를 냈다.

    1인 미디어로 인한 초상권 갈등이나 저작권 분쟁 역시 늘고 있다. 서울 흑석동의 한 편의점에서 일하는 조모(23)씨는 "최근 어떤 사람이 갑자기 편의점으로 들어오더니 '라이브 방송 중인데 한마디 해 달 라'며 수 분간 카메라를 들이대 불쾌했다"며 "수 천 명이 보는 방송에 내 얼굴이 그대로 나온다기 에 깜짝 놀라 '찍지 말라'고 했더니 키득키득 웃 으며 도망가더라"고 했다. 최근 인터넷에는 '얼떨결에 1인 미디어에 인터뷰를 당했는데, 초상권 침해로 신고할 방법이 없느냐' 등의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

    1인 미디어 제작자들이 동영상을 편집할 때 이미지나 배경음악, 글꼴 등을 무단 삽입하는 것도 문제다. 최재용 한국1인미디어산업협 회장은 "저작권이 있는 사진이나 글꼴을 영상에 썼다가 소송을 당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했다. 조창환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요즘은 누구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시대이므로 촬영 윤리를 지키고, 저작권에 대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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