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야학생 한준

  • 김상규·2017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입력 : 2017.05.19 03:03

    김상규·2017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김상규·2017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장애인 야간학교 교사로 있었을 때의 일이다. 그곳은 학령기를 놓친 성인 중증 장애인을 위한 공간이었다. 한 학년에 1~2명이 다녔지만 배움의 열정은 그 누구보다 강했다. 지적 장애를 가진 야학생 한준은 아직도 잊지 못하는 학생이다. 수업 전 한준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책상과 걸상을 정리했다.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을 짚고 등교하는 학우가 혹여 걸려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한 것이었다. 한준은 늘 그런 학생이었다. 손이 불편한 친구를 위해 책장을 넘겨줬고, 배변이 자유롭지 않은 학우를 위해 화장실까지 휠체어를 밀어줬다.

    한준이 야학에 못 나오게 된 건 세차장에 취직을 하면서부터였다. 나는 "동상 걸리지 말라"며 손난로를 선물했고, 한준은 "첫 월급을 받으면 꼭 찾아오겠다"며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그리고 몇 달 뒤, 우리는 한준의 어머니로부터 한준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차장 살얼음에 미끄러져 엉덩이뼈가 부러졌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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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한준이 입원한 병원을 찾았다. 엎드려 누워 있던 한준은 사람이 온 것도 모르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공책에 적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낸 교과서 시 필사 숙제였다. "선생님 오늘에야 숙제를 다 했어요. 숙제를 빨리 했으면 월급 탄 날 갔을 텐데, 죄송해요." 한준은 숙제를 하지 못해 야학에 찾아오지 못한 것이었다. 공책에 빨간 동그라미 세 개를 크게 그려줬다. 김지하 시인의 '새봄'을 가르치면서 이렇게 말한 것이 생각났다. "금방 지는 벚꽃도 아름답고, 늘 푸른 소나무도 멋진 겁니다. 서로 조화를 이루며 봄을 맞고 있어요."

    한준에게 야학 선생님과 학생들이 손수 쓴 커다란 위문편지를 건넸다. 손이 불편하면 발로, 발이 불편하면 입으로 쓴 그림과 글씨가 도화지에 가득했다. 한준은 도화지 끄트머리에 자기 이름을 여러 번 썼다. 하나의 공간에 여러 이름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와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건강해지기로. 한준은 꼭 그러겠노라며 편지를 소리 내 읽고 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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