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창조센터, 간판은 바꿔도 유지하는 게 박수받을 일

    입력 : 2017.05.18 03:03 | 수정 : 2017.05.18 17:37

    박건형 산업2부 기자
    박건형 산업2부 기자

    "우리는 정치인이 아닙니다. 그저 스타트업(초기 창업기업) 지원을 위해 불철주야 뛰고 고민할 뿐입니다."

    17일 오전 미래창조과학부 출입기자들에게 백세현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대외협력팀장이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 백 팀장은 '현장 실무자들의 목소리'라는 제목의 편지에서 "창조센터와 직원들은 적폐 세력이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에서 만들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센터를 폐쇄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수시로 나온다"면서 "우리가 무슨 죄가 있어 매도당하고 욕을 들어야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창조센터는 박근혜 정부가 지방자치단체, 대기업과 함께 전국 17곳에 세운 벤처 지원시설이다. 하지만 창조센터는 지난해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도마 위에 올랐다. 최순실과 연결 지을 뚜렷한 근거도 없는데도 지자체와 기업들이 잇따라 지원을 중단하고 정치권에서도 센터를 닫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래서 본지 기자들도 지난 연말 전국 7곳의 창조센터를 둘러봤다. 인천·광주 등 일부 센터는 운영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경기·대전·대구 등의 창조센터는 인근 기업·대학·연구소들과 연계해 나름대로 새로운 창업 모델을 만들고 있었다. 대전센터에서는 소형 프로젝터 개발업체 크레모텍이 1000만달러(약 120억원) 납품 계약을 성사시킨 것을 비롯해 30여 곳이 사업화에 성공하거나 수십억원대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미래부에 따르면 전체 창조센터가 지원한 스타트업이 3700곳이 넘는다. 백 팀장은 본지 통화에서 "센터가 지금까지 한 일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고 문을 닫자고만 한다. 직원들이 불안감과 수치심을 호소한다"고 억울해했다.

    2016년 12월 20일 경기도 판교에 있는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의 공동 업무 공간에서 창업자들이 모여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다.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는 사물인터넷부터 교육용 앱, 사이버 보안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 20곳 이상이 입주해 활기찬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선일보 DB
    벤처 창업 지원은 과거 김대중 정부 때부터 본격화됐다. IMF 외환위기로 대기업이 줄줄이 부도를 맞고 실업률이 치솟자 벤처 창업으로 돌파구를 찾은 것이다. 네이버·넷마블 같은 한국 대표 인터넷·게임업체들도 그때 탄생했다. 노무현 정부 역시 중소기업 규제 완화와 창업 지원 정책을 펼쳤다. 창업 지원은 박근혜 정부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정부가 해왔던 일이다. 창조센터라는 간판만 다를 뿐이다.

    스타트업 지원은 대기업 중심의 고용 없는 성장이 고착화되는 상황에서 국가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도 하다. 미국·중국·유럽 등 다른 나라들도 체제와 상관없이 스타트업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스타트업 지원의 경우 새 정부가 모든 것을 뒤집는 것보다는 이미 뿌려진 씨앗을 잘 키우는 게 오히려 박수받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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