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칼럼] "左든 右든 상관없으니 제발 유능했으면"

  • 양상훈 주필

    입력 : 2017.05.18 03:11

    나라가 산을 오를 때도 頂上으로 가는 길은 하나일 수만은 없다
    중요한 건 올라가느냐는 것… 무능 우파 덕 집권한 文
    어느 길로든 올라야 한다는 호소 새겨들어야 한다

    양상훈 주필
    양상훈 주필

    선거 직전에 한 기업인이 이렇게 말했다. "좌파 정권이든 우파 정권이든 유능하기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도 큰 기업인인 이상 보수 성향으로 보였지만 무능한 우파보다는 유능한 좌파가 낫다는 생각이 절실한 듯했다. 유능한 우파를 꼽으라면 단연 박정희 대통령일 것이다. 필자는 그가 18년 동안 이룩한 변화를 '인류 역사의 기적'이라고 써왔다. 실제 인류 역사에서 아무 밑천 없이 거지 신세 국가에서 중화학공업 대국으로 일어선 사례가 없다.

    박정희는 수출 주도 성장 전략, 외자 유치 전략, 중화학공업 육성 전략을 밀어붙였다. 지금으로선 당연한 듯 보이는 전략이지만 당시엔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다. 외채 때문에 망한다, 중화학 때문에 망한다, 수출 통계 엉터리다, 황새가 뱁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박정희의 3대 전략은 모두 성공해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 어려운 재정 여건에서도 학교를 짓고 사학을 독려해 전 국민을 교육한 것, 건강보험의 첫발을 내디딘 것, 국가 R&D를 시작한 것도 혜안이었다. 지금 신록으로 푸른 산을 볼 때면 산림녹화를 전쟁처럼 벌인 박정희가 없었다면 지금 저 산들이 북한의 산들과 얼마나 다를까를 생각한다.

    박정희로 인해 우리 국민의 인식에서 '우파는 독재했고 부패하지만 유능하다'는 관념이 자리 잡게 됐다. 실제 그 후 이어진 우파 정권에선 비록 많은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유능한 우파'라는 인식만은 그럭저럭 유지돼 왔다. 이 인식이 우파 정권들의 정당성이자 정체성이기도 했다. 그러다 역설적이게도 박근혜 정부에서 '유능한 우파'는 붕괴하고 말았다. '은둔형 외톨이'처럼 사는 사람이 마치 소꿉장난 같은 국정을 하다가 국민의 버림을 받았다. '좌든 우든 유능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사람은 박근혜 정부의 무능에 한숨 쉰 수많은 기업인 중 한 명이었다. 한국의 우파에게 이 충격파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 암(癌) 덩어리가 될 여지마저 보인다. 좀처럼 씻기지 않을 상처다.

    미안한 말이지만 박 전 대통령이 없었으면 문재인 대통령도 없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 전 대통령이 아집·오만으로 작년 국회의원 총선을 어이없게 망치지 않았다면 문 대통령은 선거 참패 여파로 정치를 떠나야 했을지도 모른다. 최순실 사태가 없었으면 과연 문 대통령이 야권의 대표 주자가 됐을지 여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세간에선 문 대통령의 진짜 선대위원장은 박근혜라고 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본다. '무능한 우파' 덕에 대통령이 된 문 대통령은 '좌든 우든 상관없으니 제발 유능했으면 좋겠다'는 이 기업인의 심정을 제대로 헤아렸으면 한다.

    문 대통령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정말 운이 좋다. 올해 들어 경기(景氣)가 살아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도움 아닌 도움을 끊임없이 받은 것부터 경기 회생까지 시쳇말로 아무도 못 당한다는 '운장'(운 좋은 장수)이다. 대통령이 운이 좋으면 나라와 국민도 운이 좋다. 문 대통령은 비서실장으로서 청와대를 경험하고 대통령이 된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를 체결하고 제주 해군기지를 결정할 때 대통령 옆에서 모든 것을 보았다. 청와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안다. 지금 청와대 사진기자들은 세세한 것까지 알아서 해주는 '문재인팀' 덕에 불편한 게 없을 지경이라고 한다.

    문 대통령이 인천공항공사에서 도를 넘는 민노총 측을 향해 "한꺼번에 다 달라고 하지 말라"고 일침을 가한 것은 좋은 조짐으로 보인다. 북핵과 사드 등 안보 문제에서도 이념만이 아니라 현실도 보는 듯한 움직임이 있는 것도 다행이다. 이 방향으로 잘 가면 문재인 정부는 '유능한 좌파'로 기록될 수 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자신이 했던 한·미 FTA와 제주 해군기지를 나중에 반대했다. 노무현 정부가 연금 개혁을 할 때 같이 고생해놓고도 박근혜 정부의 공무원연금 개혁은 발목을 잡았다. 중국이 사드에 반대한다고 같이 반대했다. 중국 일본처럼 규제를 풀어야 하는데 좌파적 피해망상으로 다 가로막는 쪽에 섰다. 이 길은 '무능한 좌파'로 가는 길이다.

    좌파나 우파나 고지(高地)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 국리민복(國利民福)이다. 다만 그 고지로 올라가는 길이 다를 뿐이다. 이제 우리 국민은 어느 길 하나만 옳다는 도그마에서 벗어나고 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존재 자체가 이런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유능하다는 것은 어느 길이든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좌든 우든 유능하면 고지 위에 올라 국민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수 있다. 무능하면 숲만 헤매다 내려와야 한다. 고지를 향해 출발할 때는 누구나 박수를 받는다. 이제 얼마 안 있어 '박수 기간'은 끝나고 이해 충돌의 현실 문제들이 닥쳐온다. 문재인 정부는 '유능한 정부'여야 한다. 무능한 우파를 무능한 좌파가 대체했다는 말만은 정말 나오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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