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창] 능력 차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제적 불평등

  •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입력 : 2017.05.17 03:05 | 수정 : 2017.05.17 17:26

    사람들 능력 엇비슷해도 처음의 작은 성공과 실패가 쌓이면 엄청난 차이로 귀결
    격차가 代물림되면 더 커져…
    흙수저가 금수저 못 됐다고 능력 탓만으로 돌릴 수 없어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내 키를 장의사에게 알리지 말라!" 내 유언이 될지도 모를 말이다. 내 키는 아내도 정확히 모르는 기밀사항이다. 내가 작긴 해도, 나보다 두 배 더 큰 사람은 기나긴 인류 진화의 역사상 단 한 명도 없었다. 확실하다. 세계적인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는 100m를 달리는 데 10초도 채 걸리지 않는다. 정말 대단하지만, 그래 봐야 나보다 두 배 빠를 뿐이다. 사람의 타고난 신체 조건이나 능력은 도긴개긴 별반 다르지 않다. 우사인 볼트는 나보다 겨우 10초 빨리 달린다는 이유로 일 년에 수백억을 번다. 신체 능력이 나의 수백 배는 고사하고 딱 내 두 배인데 말이다. 마찬가지다. 2016년 빌 게이츠의 재산은 750억달러였단다. 하지만, 그의 지적 능력이 보통사람의 수십만 배, 수백만 배가 될 리는 없다. 크게 보면 사람들은 다 고만고만하다. 우리 사회에 현존하는 엄청난 경제적 불평등을 개개인의 능력 차이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조선일보 DB
    능력은 별반 다를 것도 없는데, 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어마어마한 경제적 격차를 보일까. 단순 무식한 물리학자의 접근법으로 풀어보자. 자, 한 가상 사회의 모든 사람이 능력이 다 같고, 또 부모로부터 각자 똑같이 1000만원을 물려받았다고 하자. 각자의 1년 생활비도 100만원으로 똑같다. 여유자금에서 생활비를 뺀 금액 일부를 가지고 각자 시작한 사업은 1년 안에 성공하거나 망하는데, 사업 성공의 확률은 또 누구에게나 같다고 가정하자. 처음에는 똑같은 액수의 여유자금으로 시작했어도 시간이 지나면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재수가 없어 사업에 몇 년 연이어 실패한 사람은 생활비가 부족한 빈곤층이 되고, 다른 누군가는 행운의 여신의 도움으로 연이어 사업에 성공해 점점 재산이 늘어난다. 이 가상 사회에서는 한번 빈곤층이 되면 평생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 생활비도 부족해 여유자금이 없으니 사업을 시작할 수 없고, 따라서 앞으로 돈을 벌 기회는 영원히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우연으로라도 몇 번 연이어 사업에 성공해 부자가 된 사람은 망하기가 쉽지 않다. 자산이 일단 몇억원이 되면, 이후 연이어 몇 년 실패하더라도 생활비를 지출하고 남은 돈으로 한동안은 더 투자를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의 통 큰 투자에서 한번 성공하면 다시 더 큰 부자가 될 수도 있다. 사람들 능력이 다 같고, 초기자본이 같더라도, 누군가는 점점 더 부자가 되고, 다른 누군가는 빈곤의 나락에 떨어져 영원히 헤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가능하다. 이는 단순한 사고(思考) 실험이라서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큰 성공을 거둔 현실의 자수성가 기업인은 훌륭한 능력을 가졌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훌륭한 능력이 성공을 보장하는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을 위의 실험은 알려준다. 현실에서는, 성공한 사람은 다 출중하지만, 성공하지 못한 사람 중에도 훌륭한 사람은 많다.

    너무나 단순한 사고실험이지만 우리 사는 현실에 대해 할 수 있는 얘기는 더 있다. 만약 누군가가 부모로부터 큰 재산을 물려받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위의 논의를 따라 생각해본 독자는 이미 사고실험의 답을 안다. 이 사람은 타고난 능력이 다른 이에 비해 탁월하지 않더라도, 빈곤층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없고, 오히려 더 큰 재산을 이후에 가지게 될 수 있다. 만약, 누군가가 부모로부터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했다면 어떨까. 이 사람은 아무리 타고난 능력이 출중하더라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영원한 빈곤층일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의 자손도 말이다. 흙수저가 금수저가 못 되었다고 능력 부족을 탓할 수 없다. 현실에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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