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able] 물·맥아·홉·효모의 마법 '소맥'이 생각 안나는 진짜 생맥주 완성

    입력 : 2017.05.17 03:05

    [남자의 연장] 수제 맥주 만들기
    네종류 맥아, 김장 속처럼 버무린 뒤 분쇄… 물 부어 맥즙 추출
    효모 넣고 일주일 발효… 설탕 넣고 일주일 더 보관하면 완성

    수제맥주
    날마다 '소맥' 마시며 회포 푸는 신문사 회식 자리에서 맥주란 소주와 격렬히 몸을 섞어야만 진가(眞價)를 발휘하는 것이었다. 삼겹살 익어가는 불판 옆에서 잔에 맥주만 따르면 누군가 득달같이 달려와 "소주가 빠졌다"며 그 투명한 독극물을 콸콸 붓고 가버렸다. 기어코 '소맥'이 된 그것은 달갑지 않은 '이른 취기'와 '늦은 귀가'를 선사했다. 입맛이 길들어서인지 소맥을 마시다가 국산 맥주만 따로 마시면 '싱겁다'는 느낌을 받아 조건반사적으로 소주를 주문하기도 했다.

    이것은 일종의 야합(野合)이다. 부부 아닌 남녀가 정(情)을 통하는 격이다. 애초 맥주는 소주와 몸을 섞으라고 만들어진 술이 아니다. 잘못된 만남인 것이다. 유독 한국에선 맥주를 맥주대로 즐기지 못하고 구태여 소주를 섞어 독주로 마신다. 원인은 맥주라는 술 자체가 아니라 지독히 맛없는 '국산 맥주'에 있다.

    2년 전 수입 맥주에 매기던 주세가 급전직하해 편의점마다 '수입 맥주 4캔에 1만원'이라는 문구가 나붙었을 때부터 사람들은 맥주 고유의 맛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맥주의 진가(眞假)를 알아버린 것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맥주의 수입 규모는 연평균 26%씩 성장했고, 국내 대형마트에서 판매된 국산·수입 맥주 간 판매량 비중은 2013년 7(국산) 대 3(수입)에서 2016년 6 대 4까지 좁혀졌다. 주로 캔으로 소비되는 수입 맥주가 병째로 일반 음식점에 진출한다면 이런 회식 자리 풍경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모님! 소주 한 병에 맥주 두 병이요!"

    하지만 캔당 2500원에 소비하는 수입 맥주도 사실 비싼 값 치르고 마시는 술이다. 맥주엔 출고가의 72%가 주세(酒稅)로 붙고, 교육세 30%도 붙는다. 세금을 감안해 맥줏값을 역으로 산출해보면 시중에 판매되는 맥주가 2100원일 경우 주세 720원, 교육세 216원, '출고가+주세+교육세의 10%'인 부가가치세 193원을 제한 공장 출고가는 1000원 남짓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삶이 팍팍해서 술을 마셨더니 의문의 '성실 납세자'가 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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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산 맥주가 싱거운 건 몰트 함유량이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독일과 일본은 각각 맥주 내 맥아 함유량을 100%, 66.7%로 잡지만, 한국은 고작 10%다. 맥주 공방 ‘비어랩협동조합’ 구충섭 대표(왼쪽)와 박상현 기자가 입맛에 맞게 고른 여러 몰트를 섞고 있다. 맥주 특유의 구수한 곡식 향은 여기서 나온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물보다 맥주를 더 많이 마시게 될 여름철을 앞두고 '세금 없는 맥주'를 손수 만들어보기로 했다. 연장은 20만원 주고 산 비어머신사(社)의 가정용 '맥주 키트'. '맥즙 통조림' 500mL로 맥주 23L를 만들면 잔당 가격은 1000원 남짓이다. 이 연장을 본격 구동하기 전 서울 양재동의 맥주 공방 '비어랩협동조합' 구충섭 대표에게 정석대로 수제 맥주 제조법을 배워봤다. '맥주 키트'는 이 과정을 간소화한 것. 술통 모양 키트에 '맥즙 통조림'을 넣고 물을 섞으면 수제 맥주 제조 과정〈아래쪽〉 중 ①~④를 생략할 수 있다.

    집에서 만드는 500mL '1000원'짜리 맥주

    수제 맥주 제조법은 두 가지다. 흔히 맥아(麥芽)라고 부르는 '몰트'(malt)를 입맛에 맞게 골라 만드는 '완전 곡물법'과 이 과정을 생략하고 맥즙 통조림을 사용하는 '부분 곡물법'이 있다. 연장으로 구입한 '맥주 키트'는 통조림을 이용해 2시간 내로 맥주 제조를 마치는 방식. 이날은 몰트부터 직접 고르는 '완전 곡물법'으로 벨기에 남부에서 여름철 즐긴다는 맥주 '세종(saison)'을 만들기로 했다.

    맥주는 물, 몰트, 홉, 효모를 섞어 만든 술이다. 발효주이기 때문에 일정 온도로 술을 발효시킬 '발효조'와 재료만 갖추면 생각보다 제조 과정은 간단하다. 맥주의 기본인 몰트는 보리·밀 등에 물을 부어 싹을 틔운 것. 식혜 만들 때 쓰는 '엿기름'과 같은 것이다. '세종'엔 바탕 맛인 '필스터 몰트' 4.5㎏, 산미를 주는 '산성 몰트' 200g, 단맛을 내는 '비엔나 몰트' 1㎏, 거품을 풍성하게 만드는 '카라헬 몰트' 400g 등 총 4종의 몰트 6.1㎏이 들어간다. 몰트 총량은 맥주 도수를 결정한다. 예컨대 6㎏이면 6도짜리 술, 10㎏이면 10도짜리 술이 제조된다.

    ‘비어머신’의 가정용 맥주 키트. 맥주를 일정 온도에서 발효시키는 ‘발효조’ 역할을 한다. ‘맥즙 통조림’, 물, 효모를 붓기만 하면 끝이다. 맥즙을 일일이 뽑을 필요가 없어 맥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확 줄일 수 있다.
    ‘비어머신’의 가정용 맥주 키트. 맥주를 일정 온도에서 발효시키는 ‘발효조’ 역할을 한다. ‘맥즙 통조림’, 물, 효모를 붓기만 하면 끝이다. 맥즙을 일일이 뽑을 필요가 없어 맥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확 줄일 수 있다. /비어머신
    이 몰트를 한데 모아 김장 속 버무리듯 열정적으로 뒤섞은 뒤 분쇄하면 당(糖)을 추출하기 위한 '당화' 작업 준비가 끝난다. 당을 효과적으로 뽑아내는 온도인 68도 물 20L를 분쇄한 몰트에 붓고 한 시간을 기다린다. 삼투합 원리라 몰트가 물 10L를 먹고, 나머지 10L에 당을 뱉어낸다. 이렇게 추출된 10L의 맑은 '맥즙'을 먼저 뽑아낸 후 총량이 25L가 될 때까지 물을 부어 추출을 계속한다. '맥즙 통조림'을 쓰면 이 과정을 생략해도 된다.

    효모가 들어 있어야만 진짜 '생(生)맥주'

    추출이 끝나면 한 시간 동안 맥즙을 끓이면서 20분 간격으로 세 종류의 홉을 넣는다. 홉(hop)은 뽕나뭇과의 넝쿨식물로 맥주 특유의 향과 쓴맛을 준다. 맥즙 내 단백질을 침전시켜 술을 맑게 하고, 살균 효과로 저장 기간도 늘려준다. 첫 20분은 '쓴맛'을 내는 홉, 다음은 '풍미'를 내는 홉, 다음은 '아로마향'을 더하는 홉을 넣는다. 팔팔 끓여 약 20L로 줄어든 이 맥즙을 효모가 활동하기 좋은 25도 이하로 빠르게 식혀준다. 이때 최초 알코올 도수인 'O.G(original gravity)'를 체크해둔다.

    마지막으로 효모(이스트) 10g을 넣고 20도 상온에서 약 일주일간 발효한다.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완전 밀폐해준다. 미생물인 효모가 맥즙 안의 당을 먹으면서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만든다. 발효가 끝나면 최종 알코올 도수인 'F.G(final gravity)'를 체크한다. '(O.G―F.G)X1.3'을 하면 수제 맥주의 도수가 나온다. 이날 만든 '세종'은 O.G가 1.060, F.G가 1.010으로 6.5도짜리 술로 완성됐다. 이제 페트병에 설탕 8g을 넣고 발효가 끝난 맥주를 넣어 20도 상온에서 일주일간 더 보관한다. 효모가 설탕을 먹으면서 천연 탄산을 더 만들어낸다. 냉장고로 들어간 이 맥주의 유통기한은 약 1년이다.

    보름간 기다려 시음해보니 호프집에서 마시던 '생(生)맥주'는 전부 가짜 같았다. 구 대표는 "시중 호프에서 주로 마시는 대기업 생맥주는 보관 온도에 민감한 효모를 대부분 뺐기 때문에 진짜 생맥주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 수제 맥주엔 구수하면서도 향긋한 풍미 끝에 효모가 주는 특유의 시큼함이 남아 있었다. 볼이 넓은 맥주잔 위로 향기가 방향제처럼 피어올랐다. '소맥'이 생각나지 않는 맛이었다.

    맥즙에 홉을 넣을 땐 쓴맛·풍미·아로마향 순서로

    수제맥주 제조 과정


    ① 몰트 고르기
    취향에 맞게 ‘몰트’를 골라 섞고 분쇄한다. 예컨대 몰트 총량이 5㎏이면 5도짜리 맥주, 10㎏이면 10도짜리 맥주가 나온다.

    ② 당화 및 여과
    분쇄한 몰트에 68℃ 물 20L를 넣고 골고루 섞는다. 물이 몰트 사이사이로 침투해 단맛 성분을 빼낸다. 삼투합 과정이다. 몰트가 물 10L를 먹고, 나머지 10L에 단맛 성분을 뱉어내는 원리. 이렇게 걸러진 ‘맥즙’이 총 25L가 될 때까지 ‘물 보충’과 ‘맥즙 추출’을 계속해준다. ‘통조림 몰트’를 사용하면 (1)과 (2)를 생략할 수 있다.

    ③ 끓이기 및 홉 넣기
    1시간 동안 맥즙을 팔팔 끓여준다. 20분 간격으로 세 종류 ‘홉’을 넣어준다. ‘쓴맛’을 내는 홉, ‘풍미’를 내는 홉, ‘아로마향’을 더하는 홉 순서로 넣는다.

    ④ 식히기
    다 끓인 맥즙은 일부가 기화돼 약 20L로 줄어든다. 이 맥즙을 효모가 활동하기 좋은 25℃ 이하로 빠르게 식혀준다. 최초 알코올 도수인 ‘O.G(original gravity)’를 체크해둔다.

    ⑤ 발효
    효모(이스트) 10g을 넣고 20℃ 상온에서 약 일주일간 발효한다. 발효가 끝나면 최종 알코올 도수인 ‘F.G(final gravity)’를 체크한다. ‘(O.G―F.G)X1.3’을 하면 수제맥주의 알코올 도수가 나온다.

    ⑥ 병입
    설탕 8g이 들어간 병에 발효가 끝난 맥주를 담아 20℃ 상온에서 일주일간 보관한다. 효모가 설탕을 먹으면서 천연 탄산이 형성돼 맥주가 완성된다. 이제 냉장고에 넣어 시원하게 마시면 된다. 유통기한은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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