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글로벌 중견·중소기업 强國 되려면

  • 송의달 조선비즈 대표

    입력 : 2017.05.16 03:07

    송의달 조선비즈 대표
    송의달 조선비즈 대표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의 양축인 재벌 개혁과 중소·벤처기업 육성은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명약(名藥)'이 될 수 있을까. 대답부터 얘기하자면 정부가 각종 지원과 혜택을 중소·벤처기업에 새로 쏟아부어도 가시적 성과 창출은 매우 힘들어 보인다.

    무엇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지원은 최선두권에 있다. 정부의 의지나 정책이 부족해서 이들이 성장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방증이다. 국내 총사업체(354만개·2015년)의 9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이미 전체 근로자의 88%를 고용하고 있다. 정부는 중기·벤처를 키워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겠다지만, 생산성 격차로 평균 임금이 대기업의 50~60%인 곳에 구직자가 몰릴지 의문이다.

    세계적 중견·중소기업 강국인 독일·일본은 어떨까. 두 나라에는 중소기업만을 위한 특혜성 지원 정책이 거의 없고 대기업 종사자 비중(독일 37%, 일본 24%)은 한국(12%)보다 2~3배 높다. 이는 업력 100~200년의 장수(長壽)기업 천국(天國)인 양국에서 어느 날 갑자기 대기업 창업이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이 아니다.

    /조선일보 DB
    오히려 소규모 영세 상공인이 중소·중견을 거쳐 대기업으로 올라가는 성장의 사다리가 넓고 튼실한 덕분이 크다. 기업은 시장에서 생존에, 정부는 인력·기술·자금 제공과 '공정한 심판자' 역할에 충실한 결과다.

    요컨대 새 정부가 꿈꾸는 '중소·중견기업 전성시대'를 열려면, 이들이 대기업으로 맘껏 클 수 있는 숨통을 활짝 열어주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국내 산업계에선 중소가 중견기업으로, 중견이 대기업으로 커질 때마다 세제 감면·대출 우대 같은 혜택은 급감하고 규제가 눈덩이처럼 늘어난다.

    그러다 보니 실적이 좋아도 인력 충원을 제한하고 회사를 쪼개 중소·중견기업에 남으려는 '피터 팬 현상'이 극성을 부린다. 1980년대 이후 세워진 기업 가운데 대기업이 된 곳은 네이버·하림 정도뿐이다.

    고율(高率)의 상속세도 치명적인 독(毒)이다. 현재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최대 주주 주식에 대한 할증까지 더하면 최고 65%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26.3%)의 2배가 넘고 세계적으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일례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을 상속받을 경우 6조원이 넘는 상속세를 내야 한다. 이 부회장이 보유 지분을 모두 팔아도 역부족이다. 크고 작은 기업을 운영하는 기업가들이 사업 내내 상속·증여세 걱정을 해야 한다면, '기업가 정신' 위축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일감 몰아주기 같은 편법을 쓰지 않고 현행법을 준수한다면 2~3대(代)만 지나면 창업자가 세운 회사는 모두 공기업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기업 경영을 잘해서 덩치를 키울수록 규제 사슬에 꽁꽁 묶이고 경영권은커녕 소득세까지 납부한 개인 재산 상속까지 원천적으로 막히는 구조에서 중소기업 지원책을 아무리 내놓은들 국민 세금만 낭비하며 헛수고에 그칠 공산이 높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더 공고화된 '대기업=악(惡), 중소기업=선(善)'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경제 현장에선 반대로 작동하는 것을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눈감고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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