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비정규직 0' 말처럼 쉽다면 '비정규직 금지법' 왜 못 만드나

조선일보
입력 2017.05.15 03:11

문재인 대통령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 방침에 따라 첫 적용 대상인 인천공항공사가 8월부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각 분야에서 '우리도 정규직으로 해달라'는 요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문제가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 중 하나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그러나 비정규직은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어 생겨난 것이다. 그 사정을 해소하지 않고 무조건 비정규직을 없애면 문제는 다른 출구를 찾아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중엔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차별받는 착취 사례도 있다. 그러나 청소·사무 보조처럼 비핵심 업무를 외주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세계 모든 나라에 비정규직이 있는 것이다. 모두가 정규직이면 최선이겠지만 기업이 그 부담을 감당할 수가 없다. 만약 '비정규직 제로'가 말처럼 쉽게 될 일이었다면 역대 대통령들이 왜 하지 않았겠나. 아예 비정규직 자체를 불법화하는 법을 왜 만들지 않았겠나.

강압적인 방식으로 비정규직 해법을 밀어붙일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재정 부담이다. 공기업 중에는 인천공항처럼 경영 여건이 좋은 곳도 있지만 3분의 2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곳들까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려면 결국 늘어나는 인건비를 국민 세금으로 채워줄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문제 때문에 국민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하고, 기존 세금도 더 급한 곳을 두고 이쪽으로 돌려야 한다면 국민에게 이 사실을 먼저 밝혀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같은 일을 하면서 차별받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다음으로 비정규직 전체의 처우를 개선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곳에선 정규직의 양보가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해 35개 공기업 전체의 평균 연봉은 7900만원에 달했다. 이런 고임금·낭비·비효율 구조는 놓아둔 채 비정규직만 없애라면 견뎌낼 공기업은 하나도 없다. 그냥 부실화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공기업들은 신규 채용도 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비극은 '산타클로스 대통령'이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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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정규직으로"… 봇물 터진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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