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보고 싶은 것만 본 결과

    입력 : 2017.05.15 03:04

    문현웅 디지털뉴스본부 기자
    문현웅 디지털뉴스본부 기자
    "내 주변에서는 모두 A를 지지하는데, B 지지율이 높게 나왔다. 이해할 수 없다."

    이번 제19대 대통령선거 때 이런 생각 하셨던 분이 적잖을 것이다. 말 섞는 사람이 대개 한 동네 사람이던 옛 시절이면 몰라도, 앉은 자리에서 온누리 만민의 뜻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인터넷 시대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인터넷 여론도 다 C 후보 편인데, 투표 결과는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유권자뿐 아니라 후보들 캠프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한다. 어떤 측은 "SNS에 우리 후보 관련 코멘트가 많으니 득표율이 대박 날 것"이라 점쳤고, 다른 쪽은 "구글 트렌드가 앞서니 우리가 막판 몰표를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보고 싶은 것만 본 결과다. 대부분 소셜미디어의 친구 맺기부터 '편한 사람'을 고르는 과정이 시작된다. 그러면 SNS나 개인화된 인터넷 서비스는 '당신 취향에 맞는' 뉴스를 선별해준다. 여러분과 인터넷상 행동 패턴이 비슷했던 다른 사용자가 즐겨 보는 콘텐츠를 골라내 화면 상단에 노출하거나 '추천글' 등으로 보여주는 식이다. 아귀찜 집에 가면 아이들 먹으라고 돈가스를 튀겨 주는 곳이 있다. 아이는 이를 먹고 자기가 외식한 집이 돈가스 전문점인 줄 안다. 이른바 '알고리즘'의 함정은 이런 식으로 발생한다.

    위안스카이. /조선일보 DB
    입맛에 맞는 정보만 받는 사람이 바른 판단을 내리긴 어렵다. 1915년, 중화민국 초대 대총통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중화제국 초대 황제 등극을 선언했다. 그는 즐겨 보던 신문 '순천시보'에 "위안스카이의 황제 즉위가 하늘의 뜻에 부합한다"는 내용의 글이 연일 올라오는 것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 한다. 그러나 이 신문은 가짜였다. 차기 황제 자리를 노리던 장남 위안커딩(袁克定)이 아버지가 보는 신문 하나만을 가짜로 만들어 진상하는 속임수를 쓴 것이었다. 위안스카이는 뒤늦게 이를 알아채고 격노했지만, 이미 열강과 중국 민중은 그가 여론을 무시하고 멋대로 황제가 됐다 여기고 등을 돌린 상태였다. 결국 위안스카이는 즉위 88일 만에 물러났다. 그가 신문을 두어 개만 더 보았더라도 이런 사태까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독일엔 '빌레펠트 음모론(Bielefeld Conspiracy)'이라는 농담이 있다. "우리는 빌레펠트에서 온 사람을 본 적도 없고, 빌레펠트에 다녀온 경험도 없으니, 그런 도시는 세상에 없는 거다"는 내용이다. 물론 빌레펠트는 인구 34만명의 소도시로 실존한다. '내가 모르면 없는 거다'라는 생각은 인간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다.

    우리는 '정보의 바다'를 '우물물'로 만들어놓고, 그걸 바다라고 우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작 여기에만 발을 담그고서 여론에 통달했다 믿는 이는, 우물 바닥에 누워 우주를 논하는 개구리와 다를 바 없다. 비위에 거슬리는 소리, 내 생각과 다른 말도, 매체도 폭넓게 찾아 듣고 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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