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입력 : 2017.05.15 03:09

    "배워야 할 모범적 민주주의" 외신들 이번 대선 칭찬하지만 "군중의 정의" 등 부정 평가도
    87년 직선제 이후 민주화 30년… 형식 발전만큼 내용은 못 따라가
    새 정부 빈 곳 채워 명품 만들길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지난주 예정을 앞당겨 선거를 치르고 새 정부를 출범시킨 국민은 느긋하다. 급히 치른 선거였지만 게임의 룰은 공정했고 후보들도 과히 나쁘지 않았다. 꼭 30년 만이다. 대통령 직선제에서 탄핵까지 국민의 집단적 경험의 폭이 확장된 것이. 청년으로 성장한 우리의 젊은 민주주의는 이렇게 힘이 좋다. 이제 국민은 지도자를 뽑을 수도, 그만두게 할 수도 있다. 이만하면 국민의 '민주주의 효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고 할 만하다.

    외국도 우리의 이런 모습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이번 선거에 대해 "한국이 세계에 민주주의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보여줬다"라는 제목의 분석 기사를 내보냈다. 이보다 앞서 촛불 시위를 본 독일 언론은 "세계 민주주의를 수입했던 한국이 이제 원산지 민주주의보다 더 모범적인 민주주의를 보여준다 (…) 이제 미국이나 유럽이 한국에서 배워야 한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번 19대 대통령 선거가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선거였다는 건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검찰과 국회가 못한 일을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고 국민이 나서서 해결의 물꼬를 터주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그만큼 기존의 정치권과 국가기관의 역할이 미흡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쁜 국민이 매번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설 수는 없다.

    2016년 11월 24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이틀 앞두고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한 모녀가 벽면에 설치된 민주주의 관련 대형 플래카드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조선일보 DB
    이쯤 해서 다시 외신으로 눈을 돌려보자. 미국의 포린폴리시는 한국의 의회를 '차기 대통령들이 서로 밀치고 폼 잡는(jostle & posture)' 곳 정도로 묘사하고 있다. 국민은 종종 '군중(mob)' 혹은 '대중(mass)'으로 지칭되었고, 성경에 나오는 '성난 신(wrathful God)', 민심은 '짐승(beast)'에 비유되기도 했다.

    민주주의(democracy)라는 단어가 깔끔하게 쓰인 것도 아니다. '군중의 정의(mob justice)' '집단 의지(collective will)' '군중 지배(mob rule)'라는 단어가 민주주의와 뒤섞여 사용돼 경계가 흐릿했다. 포린폴리시는 또 미국이라면 2년 넘게 걸릴 대통령 탄핵이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며 '법에 기반한 민주주의 차원(law-based version of democracy)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고 표현했다. 아틀랜틱 잡지는 한국을 '격렬하게 민주적(fiercely democratic)' 국가로, 포린폴리시는 '아시아의 가장 직접(most-direct) 민주주의 국가'로 표현했다. '한국적 민주주의'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이런저런 수식어를 떼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뿐인가. 미국의 프리덤 하우스는 우리나라 언론의 자유를 '부분적 자유(partly free)'로 분류하고 있으며,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발행하는 민주주의 백서는 우리나라를 '결함 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 범주에 넣고 있다. 촛불의 뜨거움과 태극기의 격렬함이 이뤄낸 눈부신 성과에도 불구하고 밖에서 보는 우리 민주주의는 아직 뭔가 부족하다.

    민주주의 30년, 이제는 성찰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그동안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정작 그게 무엇이었는지 지금쯤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 때로는 군사독재의 반대급부로, 때로는 운동권의 투쟁 논리로, 때로는 좌우 이념 논쟁의 도구로 이리저리 사용되어 왔지만, 정작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부족했을지 모른다. 민주주의가 진보와 동의어가 아니듯, 어떤 체제나 단체의 포장지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청산해야 할 적폐란 여야, 좌우를 막론하고 민주주의라는 가치에 무지한 정치인들이다. 의회 패권을 위해 자유를 버리고 비민주를 불러들이는 정치인들이 자유 민주선거를 통해 등장하고 연명하는 아이러니야말로 적폐의 극치일지 모른다.

    형식과 절차상의 민주주의는 상당히 진전을 이뤘지만 내용물로서의 민주주의가 더 무르익어야 할 분야는 사회 도처에 있다. 투쟁과 저항보다 토론과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며, 소수는 다수를 인정하고, 다수는 소수를 포용하는 문화가 더 성숙해져야 한다. 언론은 더 자유로워야 하고 독립적이어야 한다. 관료 집단은 더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 재벌의 자본 집중 못지않게 거대 노조의 기득권도 지양돼야 한다. 정당 내 지도부의 독점 구조, 시민운동의 몰락, 선동적 포퓰리즘, 의회 독주와 검찰의 독재, 철학 부재의 정치인들,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완전체 민주주의(full democracy)'로 가지 못하게 발목 잡는 것들이다.

    자유 민주주의는 우리나라의 혁명적 건국이념이며 미완(未完)의 정치 이념이다. 새로 출범한 정부가 그 미완의 빈 곳을 채워 민주주의를 대한민국 명품으로 가꿔주기를 바란다. 새 정부가 지향하는 '나라다운 나라'가 성숙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지향하는 것이었으면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새로 출범한 정부에 대해 김대중-노무현을 잇는다는 뜻에서 '제3기 민주정부'라는 이름을 붙였다. 대를 이어 민주주의를 고민해 온 '제3기 민주정부'에 거는 마땅한 기대이며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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