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中 관영매체들이 쏟아낸 '문재인 일가의 흥남철수'

      입력 : 2017.05.14 06:58

      박승준의 차이나 워치

      “새로 한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문재인은 1953년 1월 24일 한국 동남부의 경상남도 거제도 출생이다. 하지만 문재인의 부친과 그 조상들은 조선(북한) 경내의 함경남도 흥남에 살던 사람들이다. 원래 조선 사람이어야 할 문재인이 어떻게 해서 한국의 대통령이 됐을까. 여기서 우리는 60여년 전의 조선전쟁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항미원조(抗美援朝·‘조선을 도와 미국에 대항하다’라는 뜻으로 중국의 한국전쟁에 대한 공식 표현)전쟁 사상 중국지원군이 최초로 거두었던 미군 섬멸 작전 성공의 장진호전투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5월 10일 중국의 관영매체들은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3일 사이에 벌어진 한·미군과 중국군 간의 장진호전투와 흥남철수에 관해 온·오프라인 기사들을 쏟아냈다. ‘문재인 일가는 전쟁으로 조선을 탈출한 사람들… 가난한 집 아들이 한국의 대통령이 되다…’ ‘끝없는 시체들의 행렬… 반세기 전의 광란의 부산행…’ ‘영화 국제시장…’ ‘한국인들이 본 장진호전투의 기억…’. 기사에는 이런 제목들이 달렸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을 계기로 중국 관영매체들은 중국 측이 기록한 장진호전투의 상황과 흥남철수 상황을 공개했다. 다음은 중국 측 시각으로 본 장진호전투와 흥남철수 상황이다.

      흥남철수 photo 월드피스자유연합

      ‘1950년 11월 27일 흰 눈이 뒤덮인 개마고원 위를 북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중국인민지원군 제9병단(兵團)이 장진호 일대에 포진해 있던 미군 제10군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단행했다. 이 병단에는 중국군 제20군단, 26군단, 27군단 소속 12개 사단 15만명이 배속돼 있었다. 장진호 부근에서 벌어진 17일간의 격전 끝에 중국과 조선 합동군은 미군 제10군과 한국군 연합부대를 흥남 부근으로 밀어붙일 수 있었고, 한·미 연합군은 장진호에서 120㎞ 거리에 있는 흥남항에 교두보를 만들고 해상철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 극동해군은 300여척의 함정을 흥남 앞바다에 집결시켰다. 미군 제10군의 철수를 지원하기 위해 미군은 흥남항 주변에 육·해·공 입체 화망(火網)을 만들어 병사들의 승선을 엄호했다. 당시 흥남항에는 식품과 비누, 식용유, 커피, 주스 등이 400m 길이로 산적해 있었다. 미군 병사들과 항구 노동자들은 하루 종일 샌드위치와 돼지고기캔, 과일주스를 먹는 모습이 보고됐다. 한쪽에서는 조선 부녀자들이 50파운드(약 25㎏)와 100파운드(약 50㎏)짜리 푸대에 든 쌀과 밀가루를 어깨나 머리에 이고 운반하는 모습이었다. 12월 23일까지 흥남부두에서는 미군 10만5000명과 피란민 9만1000명, 차량 1만7500대, 화물 35만t이 배에 실려 한국 남부 부산으로 해상 대철수를 했다.’

      장진호전투에서 미군이 중국군에 패배한 이유에 대해 중국 매체들은 북풍이 몰고 온 영하 30도 이하의 강추위가 중요한 원인이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미 언론인 데이비드 핼버스탬(Halberstam)이 2007년에 출간한 ‘가장 추웠던 겨울, 미국과 한국 전쟁(The Coldest Winter; America and Korean War)’과 미군의 한국전쟁 기록 영상물들에 따르면, 당시 장진호 부근에는 역사상 기록적인 영하 41도의 추위가 몰아쳤다. 이로 인해 탱크와 기관총, 대포 등 미군이 우위를 차지하는 장비들의 윤활유가 얼어붙어 가동이 제대로 되지 않는 바람에 미군들은 이른바 ‘흥남으로 철수작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당시 장진호에서 흥남에 이르는 120㎞ 철수로 길 옆에는 미군 동사자들의 시신이 가득해 ‘죽음의 도로’로 불리었다”고 전했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문재인 일가가 흥남 철수선을 타고 부산으로 피란한 데 대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두 가지 제도에 대한 인식이 있었던 것은 아닌 듯하고, 일반 백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가능한 멀리 전쟁터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어쨌든 살아남을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문재인 일가의 탈출도 그런 시대 배경 아래서 보통 백성들이 보여준 모습의 하나일 뿐이며, 조선전쟁은 조선민족 전체의 비극이었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1950년 12월 흥남 철수선을 타고 부산으로 온 문재인 부모는 그로부터 1년2개월 만인 1953년 1월 24일 거제도에서 장남 문재인을 출산했다. 두 살 위 누나와 두 여동생, 남동생 등 다섯 자녀의 피란민 가정은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1950년 12월 24일 2척의 순양함과 7척의 구축함, 3척의 미사일 발사함으로 구성된 미군은 모두 3만4000발의 포탄과 1만2800기의 미사일을 흥남항에 퍼붓고 500개의 1000파운드급 폭약을 폭발시켜 흥남항 미군과 피란민들의 철수를 엄호했다. 그날 흥남항 곳곳에서는 시커먼 버섯구름이 솟아올랐다. 미군의 의도는 중국군이 흥남항에서 어떤 것도 활용할 수 없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중국 관영매체들은 기록했다.

      그런 난리통에 흥남 철수선을 타고 거제도로 온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는 장남 문재인에게 흥남철수 때의 그 모진 추위와 미군 함정 위에서 겪은 일들을 반복해서 들려주었을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의 어떤 피란민들보다도 흥남항과 장진호 일원의 그 혹독하게 추웠던 겨울의 기억은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로 시작하는 노래를 들으면 더 절절했을 것이다. 그런 흥남철수의 쓰라린 기억을 들으며 자란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한반도의 분단과 한국전쟁의 쓰라린 기억이 누구보다도 절절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 대통령이 한반도의 핵위기 해소와 평화로운 남북관계 구축를 위해 의미 있는 진전을 임기 중에 이룰 것으로 기대해 본다.

      장진호전투에서 중국군에 쓰라린 패배를 당한 미국은 67년 만인 지난 5월 4일 미 버지니아주 콴티코 해군기지에서 장진호전투 기념비를 제막했다. 미군의 입장에서는 장진호전투가 ‘중국군의 포위망을 뚫고 무사히 흥남에 도착해서 10만에 가까운 피란민들을 한반도 남쪽으로 이동시킨 성공적인 전투’였던 것으로 미군 전쟁사에 기록돼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재인 신임 대통령의 부모가 겪었을 그해 겨울 흥남부두의 혹독한 추위와 피란생활의 고달픔이 다시는 한반도에서 재현되지 않도록 문 대통령이 잘해나갈 것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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