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무인도에 표류한다면… 의사는 얼마나 쓸모 있을까

  • 송태호 송내과의원 원장·의학박사

    입력 : 2017.05.13 03:02

    [송태호의 의사도 사람]

    시설과 인력 갖춘 병원아니면 의사라도 할 수 있는일 제한적
    누구나 올바른 위치에 있어야 각자의 일 올바로 할 수 있어

    친구들과의 자리에서 갑자기 무인도에 표류하거나 인류에 큰일이 생겨 몇 사람 안 남은 경우 누가 과연 생존에 가장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잡담을 한 적이 있다. 의외로 많은 친구가 의사를 중요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 생각은 다르다. 충분한 시설과 약품이 없을 때도 과연 의사가 생존에 도움이 될까. 심장이 갑자기 멈춘 일행을 심폐소생술로 살려낸다고 치자. 후속 치료가 없으면 잠시의 생명 연장일 뿐이다. 일행 중 복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어 의사가 맹장염으로 진단했다고 해도 치료할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상처가 나서 꿰매야 할 경우에도 실과 바늘이 없다면 허망한 일이다. 설령 가시와 넝쿨로 상처를 꿰맸다 할지라도 2차 감염을 막을 방법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신경외과의가 과거로 가서 누룩곰팡이로 페니실린을 만들어 여러 사람을 살린다는 줄거리의 드라마가 있었다. 단언컨대 나는 누룩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생존에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농부나 목수일 것이라고 말했다. 할리우드 영화 '마션'에서도 화성에 홀로 남겨진 존재는 식물학자였다.


    어느 일요일 교회에 갔는데 갑자기 교인 중 누군가 아프다며 나를 찾았다. 환자는 예배에서 중요한 일을 담당하는 이였기에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60대 남자로 평소 고혈압이 있어 약을 복용 중이었지만 비교적 건강했는데 갑자기 명치가 아프고 식은땀이 난다고 했다. 청진기도 없이 빈손으로 교회에 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허리띠를 풀고 맥박 수를 체크하며 교회에 비치돼 있던 혈압계로 혈압을 재는 것이었다. 혈압이 정상인 것을 확인한 뒤 아프다는 부위를 진찰했다. 아마도 급성 위경련인 것 같았지만 고혈압 병력이 있으므로 심장 문제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심전도 검사를 한다면 속이 시원할 텐데 그럴 수도 없고 바로 응급실로 가자고 하기에도 증상이 애매했다. 내가 평소에 약이나 주사를 지니고 다니는 것도 아니어서 환자에게 "별일 아닌 것 같지만 통증이 계속되면 응급실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같은 교회에 다니던 한의사가 등장했다. 한의사는 익숙하게 맥을 짚고 품에서 침을 꺼냈다. 더 이상 내가 자리를 지킬 이유가 없었다. 이런 경우에도 의사의 지식이나 기술은 아무 쓸모가 없는 셈이다.

    맨몸인 의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매우 적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의사로서의 일을 하려면 시설과 인력이 필요하다. 어찌 의사뿐이겠는가? 자동차 회사에 다닌다는 이유로 고장 난 차를 봐달라는 부탁을 받았었다는 친구 말을 들으며, 우리가 남의 일을 너무 단정적으로 간단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가 발전하고 복잡해질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다른 사람들의 수고 기반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잊고 사는 것 같다. 내과의사로서 나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곳은 시설과 인력이 갖춰진 병원이다. 누구나 자신의 올바른 위치에 있어야 각자의 일을 올바로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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