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요즘 중국인들 별로 없대"… 한국행 티켓 끊는 VVIP 관광객들

    입력 : 2017.05.13 03:02

    유커 빈 자리 채우는 '큰손 관광객'… 여유 즐기며 럭셔리 여행

    3박4일에 1억원 펑펑
    명동·강남서 호화 여행… 모피·보석 등 쓸어담고 고궁·사찰서 미식 체험
    호텔 등선 밀착 서비스

    "유커 줄어 한가해 좋아"
    제주·강원·부산 등 내국인·동남아인 몰려
    전통적인 명소도 가지만 새로 뜨는 곳 찾아다녀

    뻔한 한류 마케팅은 찬밥
    중국인 단체 의존하던 식당·상점은 파리 날려
    "각국서 오는 손님 위한 시설·서비스 확충해야"

    #1. 지난달 말 아랍에미리트에서 온 사업가 A씨는 3박 4일 동안 서울에 머물면서 1억원이 넘는 돈을 쓰고 갔다. 채식주의자인 그는 전용 요리사와 비서를 함께 데리고 와서 서울 도심 최고급 호텔의 스위트룸에 투숙했고 명동·삼청동·한남동·청담동을 오가면서 최고급 스파를 즐기고 쇼핑을 했다. 도자기·모피·나전칠기·보석·고가구·화장품과 홍삼을 특히 많이 샀다. 평소 일등석을 타고 다니는 그는 항공편으로 짐을 부칠 때도 무게 제한을 받지 않는다. 호텔에서는 그가 서울에서 산 물건들을 부치기 위해 15인승 버스를 따로 불러야 했다. 호텔 측은 "A씨가 이번에 한국에 온 게 두 번째인데 '예전보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빠져 거리가 여유로워졌다'면서 오히려 좋아하더라"고 귀띔했다.

    #2. 한국을 처음 방문한 싱가포르 출신 미국인 B씨는 지난 4월 한 달가량을 줄곧 제주도에서 보냈다. 특급 호텔과 초호화 타운하우스를 오가며 묵었고 전용 기사가 딸린 최고급 렌터카로 섬 곳곳을 누볐다. 제주도 특산물을 활용한다는 퓨전 프렌치 레스토랑, 제주산 식재료만 쓴다는 일식당 등을 돌며 미식을 즐겼고 우도 주변에서는 스킨스쿠버를 했다. 전용 열기구를 빌려 오름 경치도 구경했다. B씨의 제주 휴가 일정을 짜줬다는 C여행사는 "제주도가 한동안 지나치게 관광객으로 북적거렸던 탓에 VVIP 고객들을 데리고 오기엔 적절치 않다는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요즘 단체 관광객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큰손 고객을 선뜻 모시게 됐다"고 했다.

    유커의 빈 자리 채우는 큰손 관광객 일러스트
    일러스트 이철원 기자
    중국이 최근 '사드 배치'를 구실로 관광객 통제 조치에 들어가면서 우리나라를 오가던 중국인 '유커(游客·단체 관광객을 이르는 말)'가 사라진 것이 사실이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우리나라를 찾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 숫자는 작년 4월보다 63.6%나 감소했다. 그러나 호텔·관광업계에선 요즘 "단체 중국인이 빠진 자리를 다른 나라 VVIP 손님들이 채우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깃발 관광객'이 서울 도심을 비롯한 우리나라 관광 명소에서 줄어들면서 오히려 그 한가함을 즐기려는 '큰손 고객'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내국인 관광객, 일본인·대만인·중동 관광객 숫자도 덩달아 서서히 늘어나는 추세다.

    유커의 빈 자리 채우는 '큰손 관광객'

    서울 광화문 5성급 호텔 포시즌스 서울은 오는 27~28일 한 명당 1억5500만원씩을 내고 여행하는 VVIP 외국인 관광객 50여 명을 데리고 이른바 '서울 미식 투어'를 진행한다. 포시즌스호텔 측이 고객을 위해 전용기를 제공하고 도쿄·파리 등 세계 9개 도시를 돌며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맛보도록 하는 '컬리너리 디스커버리(Culinary discovery) 투어'의 첫 도시로 서울을 고른 것이다. 이 '갑부 고객들'의 서울 나들이 일정에는 한국관광공사가 창덕궁 운영 시간 이후 이들만을 따로 초대해 궁 안에서 다과와 전통음악을 즐기도록 하는 '창덕궁 산책', 요리사 이종국의 성북동 자택에서 즐기는 저녁 한정식, 북한산 진관사에서 배우는 '사찰 음식 준비법'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포시즌스 서울 측은 "VVIP 고객들에게 서울은 다른 나라의 대도시보다 신선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이들이 다녀갈 첫 미식 도시로 서울을 고른 이유"라고 했다.

    서울 신세계면세점에선 최근 이곳 면세점 퍼스널 쇼퍼 서비스를 이용해 매장을 돌았던 한 중국인 '싼커(散客·개별 관광객)' 고객의 거취가 연일 화제였다. 그는 입국부터 출국까지 1대1 서비스를 받으면서 쇼핑을 즐겼고 1억원짜리 '로저드뷔' 시계를 보자마자 선뜻 구입해 갔다. 안주연 신세계면세점 홍보팀장은 "최근 들어 서울은 한적한 프라이빗 쇼핑이 가능한 도시라는 인식이 새롭게 퍼진 듯하다. '로저드뷔' '반클리프 아펠 브라이덜 컬렉션'처럼 한정판 제품을 살 수 있는 매장이 자꾸 생겨나는 것도 이들이 찾는 이유로 꼽힌다"고 했다.

    2~3년 전만 해도 이 VVIP 고객들은 대부분 중국이나 대만 출신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일본·태국·싱가포르 같은 아시아 지역부터 미주와 중동 지역까지 국적이 다양해지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 4월 한 달 동안 아시아·중동 지역 관광객은 전년 대비 11.6%가 늘었다. VVIP 고객 의전 전문 여행사인 '코스모진'의 신창식 매니저는 "중동 지역에서 오는 손님이 30% 정도 되고 미국·호주·북유럽에서도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이들이 서울에 오면 들르는 장소도 광화문·명동 같은 고전적인 지역을 벗어나 이태원 경리단길, 망원동과 성수동까지 다양해지는 추세다. 신 매니저는 "요즘 VIP들은 스마트폰으로 지도 검색을 자유자재로 하고 인스타그램 맛집도 잘 찾아낸다"면서 "최근 한 아랍 고객은 서울 곳곳의 독특한 카페만 찾아 20여 곳을 돌고 갔다"고 했다. 비무장지대(DMZ)를 가보고 싶어하는 VVIP 외국인도 제법 된다. 한국의 근현대사가 응축된 장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구글의 에릭 슈밋 회장, 유튜브 창업자 스티브 첸, 노벨 평화상 수상자 로버트 굴드 등이 한국을 떠나기 전 빼놓지 않고 들른 곳도 바로 DMZ였다.

    그들을 위한 밀착 서비스도 덩달아 활발해지고 있다. 서울 웨스틴조선은 VVIP 외국인 고객이 오면 베개나 이불, 목욕 가운과 슬리퍼 등에 이름 이니셜을 새겨주는 'PTOC(personal touch of Chosun)' 서비스를 강화했다. 최상위 고객의 경우 이 한 사람을 위해 준비하는 개인용품만 약 230만원어치라는 설명이다. 서울의 또 다른 특급호텔은 '개인 셰프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호텔 매니저 김모씨는 "메뉴판에 없는 음식도 주문을 받으면 바로 만들어주는 서비스"라고 했다. 이 VVIP 고객들은 리무진이나 밴을 타고 움직이기 때문에 서울의 길거리 음식을 제대로 먹어볼 기회가 없는데, 이 때문에 오히려 종종 호떡이나 떡꼬치 같은 음식을 해 달라는 요청이 갑자기 들어올 때가 많다는 것이다. 김씨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한 손님은 매일 밤 야채 군만두와 팥빙수를 주문해 먹었다"고 했다.

    제주·강원·부산, 관광객 오히려 늘었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빠져나간 이후 내국인 관광도 오히려 활기를 띠는 분위기다. 11일 제주관광협회에 따르면 최근 징검다리 연휴(4월 29일~5월 7일) 동안 제주도를 방문한 관광객은 41만6325명이었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는데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관광객 숫자는 오히려 2.3%가 늘어난 것이다. 이 중 내국인 관광객은 38만7427명이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15.7%가 증가했다. 연휴 기간 내내 제주도 프라이빗 빌라에서 머물며 쉬다 왔다는 패션 마케팅 회사 대표 배승윤(46)씨는 "지난 2년 동안은 제주도에는 가볼 생각조차 안 했는데 올해 오랜만에 다시 찾은 것"이라고 했다. 재작년 제주 한담·애월 지역과 한동리 지역에서 유니폼을 맞춰 입고 우르르 걸어가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 인파에 놀라 그동안 발길을 끊었었는데, 최근 중국인 유커가 줄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다시 찾았다는 것이다. 배씨는 "지금이 오히려 제주 여행하기엔 더 좋은 것 같다"고 했다.

    강원도에는 요즘 동남아 관광객이 몰리는 추세다. 지난 석 달 동안 강원도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의 24.8%는 태국, 25.4%는 말레이시아에서 온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배우 이영애가 출연한 드라마 '사임당'의 주 촬영지인 평창과 강릉 일대가 동남아 팬들로 북적인다. 춘천 남이섬도 인기다.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로 알려진 이곳은 작년에도 말레이시아와 태국 관광객 14만명,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관광객 10만명이 찾았다. 신세계면세점이 최근 남이섬에 '신세계 연인길'을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부산도 외국인 관광객이 최근 들어 더 늘어난 지역으로 꼽힌다. 부산시에 따르면 지난 3월 부산에 온 외국인 관광객은 23만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5.1% 늘었다. 일본·대만·태국·베트남·싱가포르 등에서 많이 찾아온다. 송정 해수욕장·광안리 해수욕장 같은 명소도 인기지만 최근엔 베이하운드호텔·레지던스 엘가·수국마을 같은 숨은 장소를 찾는 이도 많다. 전세기와 크루즈를 타고 부산에 오는 외국인 관광객도 대거 늘었다. 부산항만공사 측은 "올해 부산을 찾는 크루즈 외국인 관광객이 25만명 정도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뻔한 한류 열풍 기댄 곳은 발길 끊겨

    기존 중국인 단체 관광객만을 상대로 해온 곳은 그러나 여전히 고전 중이다. 한류 팬을 겨냥한 서울 명동 스타애비뉴는 최근 관광객의 발길이 끊겨 한산하다. 서울 시내 곳곳의 팔색 삼겹살과 마늘 토스트·오향족발 가게, 중국인들을 주로 상대해온 약국과 편의점, 화장품 가게, 제주 바오젠거리 등에는 '매장 임대' '휴업' 같은 안내문이 나붙었다. 명동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신모(48)씨는 "작년까지 중국어를 하는 직원만 셋이나 필요할 정도로 손님이 많았는데 요즘엔 하루 다섯 명도 안 찾아온다"고 했다. 이기종 경희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중국인 관광객에게만 의존해온 기존 방식을 재빨리 바꾸고, 여러 나라에서 오는 관광객을 위한 편의 시설과 서비스를 확충하지 않으면 계속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면서 "정부가 이들의 업종 전환을 돕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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