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 59권으로 살아있는 역사책 썼지요"

조선일보
  • 유석재 기자
    입력 2017.05.12 03:04

    ['살며 지켜본 대한민국 70년사' 펴낸 이상우 前 한림대 총장]

    초등학생 때부터 써온 일기 모아 직접 겪은 사건들 현대사에 녹여
    "압축성장 70년… 부국강병 이뤄내"

    1948년 봄, 서울 봉래국민학교 3학년 학생 이상우는 등굣길에 처음 보는 입간판 앞에서 어리둥절했다. '국회의원 입후보 김도연.' 학교에 가서 담임교사에게 도대체 그게 뭐냐고 물어봤다. 교사는 당황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알아보고 내일 가르쳐 줄게…." 첫 투표인 5·10 선거 당시 한국 국민은 민주정치의 기본인 선거나 의회에 대해 무지한 상태였다. 대한민국은 이토록 진공(眞空)의 상태에서 맨주먹으로 출발한 나라였던 것이다.

    한림대 총장을 지낸 정치학자 이상우(79) 신아시아연구소장의 새 저서 '살며 지켜본 대한민국 70년사: 반산(盤山)일기 1945-2015'(기파랑)는, 역사서치고는 상당히 특이하다. 현대사와 개인의 자서전이 결합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광복의 감격이 새 질서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뀌는 상황을 서술하며 함흥에서 갓 월남한 자신의 체험을 녹여낸다. "산에서 도토리를 주워 식량에 보탰고, 배급받은 백두산 담배를 들고 나가 길에서 팔았다. 학교에선 종이와 연필이 없어 필기를 할 수 없었고, 대부분의 집이 온 가족이 일해야 하루 두 끼 정도 먹고 살 수 있었다…."

    "하도 답답해서 썼지요." 이 소장은 책을 낸 이유에 대해 "어린 학생들이 배우는 현대사 책이 너무나 정치 일변도여서 피상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그 시대를 살면서 겪은 고통, 희망, 고민, 성취감이 보태져야 피가 흐르는 생명체와 같은 기록이 되는 것이지요."

    이상우 신아시아연구소장은 “대한민국의 70년은 짧은 기간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뤄낸 위대한 역사였지만,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시민’은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상우 신아시아연구소장은 “대한민국의 70년은 짧은 기간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뤄낸 위대한 역사였지만,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시민’은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고 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써 온 59권의 방대한 일기가 책의 기본 사료(史料)가 됐다. 6·25 때 집이 폭격당해 큰형이 희생당하는 참혹한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 4·19 때 학생 대표로 시경국장 앞에 나섰으며, 5·16 때는 신참 신문기자로 취재하다 혁명군에 잡혀간 이야기들이 책 속에 피와 살처럼 녹아들어 있다.

    그는 "내가 살며 봐 온 지난 70년은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가 다섯 번의 혁명적 사변(광복, 6·25, 5·16, 유신, 6·29)을 겪으며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쏟은 끝에 부국강병의 꿈을 이뤄낸 역사"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의 두 보수 정권에 대해서는 "실패한 보수 회귀 10년"이라고 평가했다. 이명박 정부에 실망한 국민은 더 분명한 보수 정권을 기대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대중동원 투쟁에 대응하지 못하고 미숙한 정책을 거듭하다 무력하게 허물어졌다는 것이다. 탄핵 정국에서 여당이 앞에 나서서 정부를 지키려 하지 않을 정도로 정당정치가 붕괴됐다.

    "정치가 복잡해진 시대 환경을 따라오지 못하고 불통과 고립을 자초했지요. 세상은 이미 전문화됐는데 혼자서 정치를 하겠다니 실패할 수밖에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보수의 가치를 제대로 지키는 원로 그룹의 조언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였다면 이 지경까지 되진 않았을 텐데…." 그는 막 출범한 새 정부의 당면 과제에 대해 "공공성을 인식하고 자기 행위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진정한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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