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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섭 '졸혼'을 보며 등골 서늘한 남자들, 끼니 직접 차려먹을 준비해야 하나

  • 글/구성 : 뉴스콘텐츠팀 이수진

    입력 : 2017.05.11 14:33 | 수정 : 2017.05.11 14:41

    '졸혼', '휴혼', '해혼'?… 일단 '이혼'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10년도 더 전에 생겨난 말이 뒤늦게 한국에서 유행 중이다. 바로 '졸혼(卒婚)'이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막 독립해 살기 시작한 배우 백일섭이 사실은 '졸혼'했다고 고백하면서 우리나라는 이 단어를 거의 처음 접하였다. 그리고 이 생소한 단어의 의미를 계속 궁금해하고 있는 것 같다.

    '졸혼'이란 부부가 법적 혼인관계는 유지하나 생활은 따로 떨어져 독립적으로 하는 걸 뜻한다고 한다. '황혼 이혼'이 급증하고 있다는 뉴스들만 듣다가 '졸혼'이란 단어를 들으니 생경하면서도 일단은 신선하다. '졸혼'이 이슈가 되니 '휴혼(休婚)'이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졸혼'이 결혼생활을 아예 졸업한 것이라면 '휴혼'은 잠시 쉬는 것이다. 별거하는 것과 비슷하다. '해혼(解婚)'이라는 단어도 있단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여 있던 부부의 관계를 풀어내는 것이다. '따로 또 같이'. 한 집에 살지만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인정하고 간섭하지 않는다.

    출처 : 조선일보 DB

    부부라는 관계의 가치에 의문을 품다

    뜻이 미세하게 다른 이 많은 단어들은 결국 한 가지를 가리킨다. 노년에 이르러 부부라는 관계의 가치에 의심을 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백년해로할 각오로 수십년을 함께 살았지만 결국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었으니 그 허무함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 한 가지 더 유의미한 상황은 이혼이든 졸혼이든 결혼생활을 끝내고 싶어하는 쪽은 남자보다는 여자쪽 비율이 더 높다는 것이다. 뉴스를 통해 본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여자쪽에서 '황혼이혼'이나 '졸혼' 등에 대해 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을 수치로 보여준다. 가부장적 사회분위기에 상대적으로 더 억눌렸던 아내들이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뒤늦게라도 홀로서기를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백일섭의 독립이 어떤 경위로 이뤄졌는지는 개인적인 가정사인지라 필자가 알 도리는 없다. 그런데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 2'에 합류한 백일섭의 '혼삶'을 엿보다 보면 어느 정도 짐작되지 않은 건 아니다. 평생 일군 커다란 집을 아내(혹은 아들)에게 줘버리고 작은 빌라로 거처를 옮겨야 했던 백일섭에게 어떤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KBS2 '살림하는 남자들 2' 중 한 장면

    "(밥 안차려져있으면)목구멍에 불덩이가 일어나고 그랬어요"

    집안 일을 전혀 한 적 없다는 백일섭이 난생 처음 밥을 차려 먹고 빨래를 하고 청소기를 돌린다. 아들 기저귀를 간 기억이 없어서 손주 기저귀를 가는 게 낯설다. 처자식에게 살가운 말 한 마디 할 줄 몰랐고 사탕봉지 한번 사다 준 일이 없었다 한다. 안살림을 들여다보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아내에게나 자식에게 살가운 아버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유는 "돈 벌어다 주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살림하는 남편을 보여주는 '살림하는 남자들'은 시청자들의 반응이 미미했던 시즌 1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얼마 전 '졸혼'을 선언하다시피 한 백일섭을 간판으로 시즌 2를 선보였다. 인기 높은 원로배우의 이색적인 '독거 라이프'는 확실히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어느 원로스타의 싱글라이프를 엿보는 것 이상의 또다른 기분을 느낀다. 그곳에는 왕년에 한가락 했던 유명한 스타가 아닌, 은퇴 후 가정 주변을 배회하는 쓸쓸한 아버지가 있는 것이다.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 중 한 장면

    '졸혼'한 백일섭을 보며 남성들은 등골이 서늘할 수도 있다

    일개 예능 프로그램 소감치고 지나치게 애상적인 감상일 수도 있으나, '졸혼'이라는 이슈와 그에 따라붙는 현대 부부관계의 위기감을 미디어를 통해 체감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감상이다. 그리고 그 쓸쓸한 아버지는 당장 내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하다.

    백일섭의 졸혼 라이프는 결혼한 남성들이 훗날 맞게 될 황혼 즈음의 삶에 대해서 일종의 '경각심'을 갖게 한다. 백일섭의 뒤늦은 독립은, '돈 벌어다 주는 것'으로 가장의 역할을 다 했다고 믿었던 우리의 아버지들이 은퇴 후 '삼식이(집에서 세 끼를 꼬박꼬박 찾아 먹는 사람)'라고 조롱 받으며 홀로 집을 지키는 모습과 겹치기 때문이다.

    수십년 월급 받아 갖다 바치려면 주말마저 반납해가며 회사에 충성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믿었던 노년의 남성들은 뒤늦은 후회를 한다. 아내는 물론 자녀와의 관계도 거의 단절된 상태였다는 걸 일을 그만둔 후에야 깨닫게 된다. '나의 헌신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늘그막에 후회만 밀려온다. 이 모습은 '살림하는 남자들' 속 백일섭의 '졸혼' 후 삶에서 비교적 실감나게 다가온다. 현재 한창 현역으로 일하는 남성들은, 백일섭의 삶을 엿보면서 얼마간 등골이 서늘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젊은 시절의 백일섭과 어린 아들

    '혼밥'의 애처로움

    혼자 사는 윤여정이 혼자 밥을 먹기 싫어서 포장된 유동식을 마시다시피 한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은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혼자 사는 삶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아무래도 매 끼니를 챙기는 일이다. 밥 한상 깔끔하게 차려내 그럴듯하게 한끼를 만끽할 수 있는 법을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말벗 없는 식사가 맛이 날 리가 있겠는가.

    백일섭의 끼니는 며느리가 정기적으로 냉장고에 채워 넣는 밑반찬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반찬이란 게 스팸 통조림을 따서 한 숟가락 가득 떠 먹는 것, 또는 물과 김치와 고기를 한 냄비에 '때려 넣어' 만든 김치찌개 정도다. 그의 밥상은 어딘가 모르게 궁색한 느낌이 있다.

    KBS2 '살림하는 남자들 2' 중 한 장면

    남자들은 결정을 해야 한다. 노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지금부터라도 집안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아내와 아이들과의 소통의 끈을 어떻게든 붙잡아서 성공적인 가족의 '대통합'을 비교적 끝까지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혼자 살든, 혼자 집을 보든, 외로움을 능히 이겨내고 따뜻하고 온전한 한 끼 정도는 혼자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법을 지금부터라도 배울 것인가.

    어느 쪽이든 죽어라 일만 하는 삶의 끄트머리에는 가족의 형태가 상당히 무너져버릴 수 있음을 항상 염두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리고 이러한 염두와 우려는 개인에게 전적으로 맡길 수 없다는 것도 이제는 못지 않게 중요해졌다. 갓 바뀐 대통령이 만들어갈 새로운 시스템에서는 '졸혼' 당할 수도 있는 미래의 삶에 불안해 할 남자들에게 요리 공부라도 할 시간을 벌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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