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보여드립니다

    입력 : 2017.05.09 03:01

    [코리아나미술관 '더 보이스' 전시]

    위아래 뒤집힌 립싱크 영상부터 인터넷 댓글로 만든 노래까지
    소리를 시각적 예술로 표현 "시각보다 청각이 진실에 근접"

    같은 사람의 두 가지 표정이 마임처럼 우스꽝스럽다. 한쪽은 뭔가를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났으나 입이 열리지 않는다. 다른 한쪽은 정반대다. 한번 열린 입이 다물어지질 않아 손으로 머리와 턱을 누르며 안간힘 쓴다. 권력과 목소리의 관계, 여전히 미완(未完)인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상인데, 그 방식이 코믹해 웃음부터 난다.

    'Promise Me'라는 제목의 영상을 만든 미카일 카리키스는 소리를 '사회와 사물을 읽는 도구'로 보는 그리스 출신 작가다. 3년 전엔 제주 해녀 영상을 찍어 화제를 모았다. 눈에 '보이는' 풍경보다는 세찬 바람 소리, 철썩이는 파도 소리, 배의 엔진 소리, 물질하고 올라온 해녀들이 "호오~" 하고 뿜어내는 숨비소리(숨소리)를 극대화해 해녀의 삶을 해석했다. 그는 "숨소리만으로도 해녀의 물질이 면도날로 아주 날카롭게 가른, 삶과 죽음의 경계선 이쪽과 저쪽을 넘나들어야 하는 일이라고 느껴졌다"고 했다.

    소리를 주제로 한 이색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신사동 코리아나미술관이 7월 1일까지 선보이는 '더 보이스(The Voice)' 전시다. 존 케이지, 브루스 나우만, 김가람 등 소리를 시각예술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온 국내외 작가 12명의 낯설고도 흥미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아이슬란드 작가 라그나 키아르탄슨의 6시간짜리 퍼포먼스 영상 작품인 ‘Song’(노래)의 한 장면. 어떤 줄거리도 없이 오로지 소리에 집중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이다.
    아이슬란드 작가 라그나 키아르탄슨의 6시간짜리 퍼포먼스 영상 작품인 ‘Song’(노래)의 한 장면. 어떤 줄거리도 없이 오로지 소리에 집중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이다. /코리아나미술관

    1999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은 브루스 나우만의 초기 실험 영상인 '립 싱크'(1969)는 인내를 갖고 봐야 하는 작품이다. '립 싱크'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내뱉는 입을 클로즈업해 촬영했다. 영상을 거꾸로 뒤집어놓은 탓에 한참을 보고 듣다 보면 입이 내뱉는 단어가 무엇인지, 입은 진짜 입인지조차 헷갈린다.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는 모두 진실일까?'라는 화두를 던진다.

    존 케이지는 우연히 발생하거나 의도되지 않은 소리 또한 음악이라고 여긴 전위예술가다. 피아노 앞에서 아무런 연주도 하지 않는 '4분 33초'(1952)를 발표해 파장을 일으킨 그는 6년 뒤 '아리아'란 제목의 비정형 악보를 발표했다. 음표는 물론 '안단테' '알레그로' 같은 음악적 부호는 없다. 높낮이를 표시하는 선과 몇가지 색깔,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짧게 제시했을 뿐이다. 연주자마다 서로 다른 음악을 연주하게 하는 이상한 악보가 이번 전시에 나왔다.

    김가람의 '사운드 프로젝트―4로즈(Rose)'도 재미있다. 인터넷 '댓글'들을 노랫말로 만들어 작곡했다. 가상의 걸그룹 '4로즈'가 부르는 노래는 사실 기계 음원으로 만든 목소리다. 메르스 사태, 국정 농단, 블랙리스트 파문 등 온 국민 관심사였던 이슈를 재치 있게 풍자한 소리예술이다. 라그나 키아르탄슨의 6시간짜리 'Song(노래)'은 미국 피츠버그 카네기 뮤지엄에 초대된 10대 세 자매가 앨런 긴스버그의 시를 반복적인 멜로디로 노래하는 영상이다. 서사가 없어 민숭민숭할 법한데, 들을수록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마력을 지녔다. (02)547-9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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