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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정통추리극을 만들어낸 정성, 그리고 나른한 악당 한명…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

  • 글/구성 : 뉴스콘텐츠팀 이수진

    입력 : 2017.05.09 01:04

    영화는 '잘린 손가락' 하나를 법정 한가운데에 놓고서부터 시작한다. 거대 석조저택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현장에는 사체를 태운 흔적과 더불어 흔하디 흔한 A형의 핏자국, 그리고 문제의 손가락 하나만 남겨져 있었다. 이 살인사건의 범인은 누구일까. 아니, 이 사건이 살인사건이 맞긴 한가. 갓 해방된 1948년 여름, 경성의 한 법정에서는 이른바 '시체 없는 살인사건' 공판이 한창이었다.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 메인예고편

    62년 전 미국의 추리소설은 어떻게 지금 한국과 만났을까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빌 S. 밸린저의 추리소설 '이와 손톱'을 영화화했다. 1955년에 쓰여진 '이와 손톱'은 20세기 미국 최고의 서스펜스라는 찬사를 들었다던 작품이다. 이 유명한 추리소설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 이역만리 한국에서 영화로 다시 만들어졌다. 원작과 영화의 만남이 사실 매우 어색하다. '기담'을 만든 정식 감독과 '이웃사람'을 만든 김휘 감독이 만나 이 어색한 조합을 어떻게 풀어냈을 지 강한 호기심이 일어난다.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의 최승만(고수)

    결과적으로, 추리극과 법정극이 맞물려 차곡 차곡 쌓인 영화의 이야기는 원작의 서스펜스를 계승하고 있는가라고 누가 묻는다면 안타깝게도 '아니다'라고 답해야 할 듯하다. 당시 제아무리 파격적인 결말로 업계를 술렁이게 했을 지라도, 원작은 발표된 지 60년 이상이 훌쩍 지난버렸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추리극이라는 장르는 관객 혹은 독자를 더 잘 속이기 위해 더 교묘해지고 난해해졌으며 기발해졌다. '이와 손톱'의 전설적인 서스펜스 역시 내성이 생길대로 생겨버린 현재의 관객들에게는 무뎌졌기 마련이다.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의 남도진(김주혁)

    구구절절한 사연을 잊게 할 반전, 관객의 뒤통수 칠까

    영화는, 중반쯤에야 비로소 얼굴을 볼 수 있는 남도진(김주혁)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이전까지는 마술사 최승만(고수)이 복수의 화신이 되기까지의 스토리가 다소 통속적으로 그려져, 인내심 없는 관객은 지루함을 참을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승만의 순애보적 사연을 잘 견뎌내면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추리극다운 몇 가지의 반전을 선보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야심차게 선보인 이 반전들은 대부분 예측이 가능하다. 추리극이라면 응당 있음직한 꽤 전형적인 형태의 반전들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해자와 피해자를 헷갈리게 하는 것이나, 사랑했던 연인의 숨겨진 비밀, 그리고 사라진 시체의 비밀 같은 것들 것 꽤 익숙한 이야기다.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관객들의 뒤통수를 치는 타격의 세기가 추리극으로서는 미약하다. 정통 추리극을 표방하는 영화로서 치명적인 약점이다.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 중 법정에서

    서양의 정통 추리극을 한국에서 그럴듯하게 재현한 정성

    그렇다면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추리영화로서 무용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 영화는 나름 한국영화에서 독보적인 가치를 갖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가치는 이미 이야기한 단점에서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탐정물', 혹은 '추리물' 하면 언뜻 떠오르는 것은 대개 두 가지다. '셜록 홈즈'와 '아가사 크리스티' 정도. 영화라는 장르로 시선을 돌리면 '히치콕' 정도가 떠오른다. 종합하면 지극히 '서양적'인 장르다. 정장 갖춰 입은 신사들이, 오직 순수한 추리력만으로 점잖게 범인을 골라내는 모습이 당장 떠오르는 것이다.

    한국 영화에서 추리극은 어떤 것이 있었나. 쉽게 떠올려지지 않는다. 애써 기억해내면 '조선명탐정'이나 '탐정 : 더 비기닝', 그리고 최근의 '임금님의 사건수첩' 정도다. 그런데 이들 영화에서 서양적인 정통 추리극의 느낌은 찾기 힘들다. 사실상 우리나라 영화에서 '히치콕'스러운 잔상은 희미할 뿐이다. 그런데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제목부터 시작해서 추리극에 굉장히 걸맞는 결말까지, 거의 한국 최초의 정통 추리극으로 만들어졌다.

    서양식 정통 추리극의 외양을 재현하려는 갖은 장치들

    한 편의 온전한 추리극을 위해 영화는 굉장히 공을 들인다. 물론 반전들이 예측 가능하다는 약점이 있지만 그 반전들의 내용 자체는 추리극이라는 장르에 걸맞기도 하거니와 추리극의 전형성을 완성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제시대라는 배경도 일정 부분 추리극적인 분위기에 기여한다. 1940년대의 경성을 배경으로 하면서 등장인물들은 깔끔한 정장을 차려 입고, 서양식 건물에서 산다. 그뿐 아니다. 법정이라는 공간과 마술쇼가 펼쳐지는 레스토랑, 그리고 남도진이 사는 석조저택은 연극의 무대로 손쉽게 치환되고, 인물들이 하는 대사도 무척이나 연극적이다. 이 연극적인 톤 역시 추리극이라는 장르적 특징을 위해 기여하는 바 크다.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 촬영중

    마지막으로 남도진이라는 캐릭터를 맡은 김주혁의 연기를 빼놓으면 안될 듯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찰떡같이 어울리는 정장을 쫙 갖춰 입고 무심하고 나른하게 대사를 뱉는 김주혁은, 꽤 색다른 악역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로맨스 영화에서 빛을 발했던 깔끔한 훈남 김주혁이 최근 두 번의 악역을 훌륭하게 소화하면서 조금은 달라진 평가를 막 받기 시작한 것이다.

    특유의 노곤한 목소리와 고요한 연기톤을 무기로 무자비한 사이코패스 남도진을 선보인 김주혁은 정통추리극을 위해 여러모로 정성을 들인 이 영화에서 은근히 도드라진다. 남도진이라는 캐릭터는 '석조저택 살인사건' 한 영화로만 쓰이기에 아까운 악역이다.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의 남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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